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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의 시론(5) -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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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99회 작성일 15-12-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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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

우리 시에서 가장 빈도 높게, 그리고 깊게 하나의 상징적인 체계를 획득하고 있는 사물,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라고 생각된다. 기록된 문헌상의 첫 시가로 꼽히는 옛 시가 「황조가」에서 박남수의 「새」, 또는 「새의 암장」에 이르기까지 그 <새들>의 대표적인 속성인 비상의 이미지는 우리 시를 동사화하는 여러 모습의 움직임들로 우리 곁을 날아다니고 있거나 우리 시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의 한 무늬마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또 한 마리의 새가 우리 시의 하늘을 깊게 날고 있다. 혹은 이 겨울에도 맨발로 우리 곁을 종종거리고 있음을 만난다. 장석남의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 바로 그것이다.

1.
찌르레기떼가 왔다/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검은 새떼들//찌르레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저문 하늘을 업고 제 움음 속을 떠도는/찌르레기떼 속에/환한 봉분이 하나보인다

2.
누군가 찌르레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봄 햇빛 너무 뻑뻑해//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오랜 세월이 지난 후/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찌르레기떼가 가고 마음엔 늘/누군가 쌀을 안친다/아무도 없는데/아궁이 앞이 환하다

<망명>이라는 말이 지닌 농도로 보아 그 표제가 좀 크고 그 때문에 이미지의 누수현상을 빚고는 있지만, 그것은 지금의 척박한 삶으로부터의 적극적인 초월을 현실적인 행위가 있는 말로 자리바꿈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 힘을 새떼들, 찌르레기떼의 움을 속에서 그는 훔쳐 내고 있다. 이 시에서는 물론 그 울음소리가 <쌀 씻어 안치는 소리>, 곧 배고픔(결핍)에 충만을 주는 음성상징으로 처리되어 따뜻하고 밝은 극복의 힘(아무도 없는데/아궁이 앞이 환하다)이 되고 있지만, 이 또한 <여기>에서 <저기>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새>의 원초적인 비상의 이미지에 깊게 닿아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찌르레기떼의 울음 속에서 <환한 봉분>을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주검의 봉분마저 그에겐 <환한> 밝음의 그것이다. 적극적인 만남, 자연과의 화응이 거기에 있다. 모든 상처와 생명의 단절마저 수용하는, 그래서 시는 혁명이다. 시인은 프롤레타리아다. 시는 <환한 봉분>이다.
나도 그렇게 쓴 적이 있다.

<성자 거지 프란치스코가/새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그가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나도 그럴 수 있을까/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뜨락의 작은 나무 하나도 나뭇가지도/한 마리 새를/평안히 앉힐 수 있는/몸으로, 열심히 몸으로!/움직이고 있다>
-「몸시.52-새가 되는 길」부분, 「몸시」, 세계사, 1994.

<새들은 하늘과 땅을 왕래한다 저승의 어머니께오서 다녀가신 날이면 우리 집 새벽 마당에 새들의 발자국이 찍혀져 있다 새들은 어디나 건너다닌다...... 하느님께오선 풀잎들 정갈하게 자라고 풀씨들 까맣게 익는 나라에만 새들을 두신다>
-「새.2」부분, ꡔ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ꡕ, 문학세계사, 1990.

<새>의 2차적인 상징은 극복과 초월을 통한 적극적인 화응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데려가 주는 힘이며 마침내는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무속에서 흔히 만나기도 한다. 높은 솟대 위에 나무로 깎아 앉힌 새들이 그것이다.
우리 시는 비극적인 정황과 인식 속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새들>의 그것을 통해 <원초적인 정기가 조금도 부패되거나 손상되지 않은 최초의 장소와 그 순간>을 꿈꾼다. 이른바 프로이트의 Unheimlich, 드러난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것마저 힘으로 바꾸어 <저기>로 가는 이행 속에 있다. 우리 시의 사상의 <무늬>는 절망의 편이 아니다. <새들>의 날개짓이거나 그들이 척박한 땅 위에 찍는 발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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