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의 갈대 > 창작시

갈 때의 갈대

- 흔들리다 -

이영균

우듬지 잣송이는 마냥 청청한 게 아니네

무르익으면 떨어지네

흰 돌산 아래 우뚝 선 청솔 우듬지 잣송이

그냥 달린 게 아니네

뿌리와 나무의 공력 덕분이네

와중에 쉽게 햇살과 미풍만 있었겠나

폭풍과 폭염은 괜한 거였겠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또한 괜한 거였겠나

꽃이 되고 열매 되고 단풍 되는 동안

모진 풍파 다 겪고서야

세상 다 얻은 듯 화려한 거네

하지만, 그도 잠시

때 되면 사심 없이 떨어지는 게 세상사 아니겠나

무릇 결실이 알찬 것들은 때 되면

저절로 고개 숙이는 법

백설이 천지를 덮고서야 홀로 서럽게 떨어지면

그때는 제아무리 결실 실하다 해도

찾는 발길 없어 한스러울 터

때늦어 후회 말고 낟알 한 홉이라도

적선 베풀 수 있을 때 떨어져 나누세

솔가지 푸르다고

잣송이 마냥 청청한 게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