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運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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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運輸)/
시간이 멈추며 낭하에서 건져 올린 물음
‘널 둘러싼 시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벗들이 분주히 삶을 꿰어 일가를 이룰 때
그는 음지 식물처럼 어둡고 습한 곳에서
그만의 원칙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갔다
되풀이 되는 삶의 방식 하에서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 일 따윈 없었으므로
그의 삶은 하루 일상에 도돌이표를 찍는
매우 단순한 일차방정식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벗들은 추억의 노트를 부풀리려 노력했고
그는 종이 한 장의 여백으로 만족하였다
그건 벗들로부터 멀어지는 이유가 되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삶의 터전이 싫어서
몇 번이나 삶의 장소를 옮겨도 보았지만
아집과 완강한 고독이 그의 속성이어서
변화 없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던 중
군홧발이 뜰망으로 그를 채집하였을 때
그에게 양지식물이 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단번에 양지식물로 전환했다
그 이후로
매일 다른 사건이 그의 일상을 점령했고
이전과 달리 세월은 빠르게 뒷걸음쳐갔다
벗들은 이러한 그를 펼쳐보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 보여 줄 그럴싸한 스토리가 없다
그의 지난 시간들이 낡은 탁자에 새겨진다
“넌 그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다.” 라고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마침, 나는 나의 삶을 어디로 끌어가고 (운수하고)있는가?를 생각하던 차에..
이 시를 대하니 (개인적으로) 느낌이 더 각별해지네요
저 같은 거야 그럴싸한 스토리는 차치하고,
이제 폐차의 수순을 밟고있다 보니
화자가 말하는 <그>가 은근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의 지난 시간들이 세월의 탁자에
그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새긴다니..
생각하면, 인생을 엮어가는 우리 모두는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 많은 괴리와 단절, 그리고 임기응변적인 전환을
변증법적으로 겪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 성인 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튼, 내가 나를 실어나르는 運輸의 삶에서
운전면허 취소를 받는 일은 없으면 한답니다
(뭐, 면허정지야 이따금 받는다고 하더라도)
잘 감상하고 갑니다
꽃맘. 핑크샤워 시인님,
핑크샤워님의 댓글

시인님의 삶은 많은 추억으로 풍성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그"의 삶은 너무 건조해서 쓸쓸하기조차 하거든요
운이좋아 생각지도 않은 입지를 세워
지금은 충실한 삶을 살아가지만서도
현실의 생활에 만족을 못느끼는 속성이 "그"에게 있어서
늘 불만을 시한폭탄처럼 달고 다니거든요-(웃음)
고운 걸음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