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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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금처럼 반짝였다가 이내 붕 뜨고 그러다 달이 되어 버렸다.
밤마다 되새겨지지만 닿을 수 없는 것과 같아져 버린, 하늘에 버린 꿈이었다.
어찌나 슬프고 원망스러운지
빈 플라스크를 달이 떠 있는 창으로 위치시켜
윤곽에 맺힌 빛을 따라 눈물을 보내
결국 그 안에 갇힌 달의 영기 일정 부분을 익사시키고팠다
달은 내 몫이 되지 못함과 동시 하릴없이 환했으니
그 자체만으로 내가 느껴야 할 여운은 폭력과 교살에 버금갔다.
꿈에 대한 미련은 숨 막혔다, 숨 막혔으니 달을 살해하기로 노력한 건 그만큼 복수심이었다.
하지만 한때 사랑했던 걸 온전히 미워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나는 꿈과 멀어지는 연구를 했다.
더는 써보고 싶은 글을 안 적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다락으로 승천시켰다.
감미로운 노래나 책 따위로 감수성을 사육하게 두지 않았고
빛과 물과 풀이 있는 산수화 풍경 앞에서도 일부러
주기율표를 불경처럼 외우며
세상의 모든 건 내 마음이 흔들릴 필요 없는
무감정한 원소에 지나지 않으리라 보았다.
그러자 구사하는 단어 중에선 많은 게 사라졌다.
낯선 여인을 꽃이라 부를 수 있던 용기와
어쩜 무례하게 온갖 은유를 일삼았던
독자적인 시어를 잃었다.
시어를 잃었다.
업무적으로야 늘 그랬듯 해석의 착오 여지 안 남게 서류 형식을 갖추면 될 뿐이지만
그 기계적인 문장 구조가 일상의 대화까지 적나라하게 스며든 건
복수심의 연구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런데도 너무 이상한 건
나의 꿈은 불가의 영역에 떠 있는 채 현실을 쪼잔한 심리에나 휩싸이게 계속 자극했지만
앞서 말한 연구가 되풀이 될수록 꿈은 오히려 더욱 고귀히 여겨졌단 사실이고
그 증거론 남한테 시름을 말도 안 꺼내고 위로받기도 싫었던 것이다.
너무나 고귀해서 오로지 가질 수 없는 내 것이어야만 한 그런 패러독스를 상기했고
뭔 일 있냐고 오는 노크들도 귀찮아서 문을 잠가
존재가 잠길 때까지 울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차가움에 눈물을 얼려 달로 건너는 아치를 짓고픈 심정으로
오만하게도 며칠 못 가 다시 시어를 찾고자 다량의 글 속을 헤맸다.
이뤄질 수 없는 현상의 나열, 독자적인 시어를 찾고팠다.
이 차가움에 눈물을 얼려 달로 건너는 아치를 짓고픈
그런 꿈의 시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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