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悵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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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연(悵然)/
그는 일을 하면서 얻는 스트레스보다
일을 구하기 휘한 스트레스에 지쳐
쇼파에 누워 TV를 본다
햇살이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갈 무렵
초인종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집 앞 작은 가게 옆에
실직한 아버지 구부리고 누워 계신다.
한 손에 꽉 쥐고 있는 막걸리 반병
마치 ‘아침 햇살’ 같다
“아버지 들어가세요”
“싫어,안가
아들이고 딸이고 다 필요 없어.”
아버지 윗도리는 골목을 안방 삼았다.
“넌 왜 나를 닮았어, 죽은 네 엄마를 닮지”
그는 베시시 웃으며
들어 누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자
아버지의 안방이 따라서 일어선다.
“아저씨 들어가세요.”
앞 집 아가씨가 건네는
아침햇살 같은 막걸리 1병을 받아 들고
그는 아버지를 들쳐 업고 집으로 들어간다
술에 취해 잠드신 62세 아버지의 미소는
숙성한 아침햇살이다.
구겨진 오늘이
캄캄한 내일을 부르는 저녁
꽉 막힌 하수구 같은 가슴으로
닫혀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앞마당 은행나무 가지를 휘감던 바람이
창문으로 몰려와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
길 잃은 제비 한 마리 사각의 창을 가른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문득, 추억을 소환하다 보면..
그 정지된 시간 속에 참 많은 창연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 역시, 작고하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러하구요
불민한 자식의 철 없는 소행에
아버지는 그 얼마나 몹시 서운하고 섭섭하셨을까..
오랜 세월 후에 짙은 悔恨만 남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꽃맘, 핑크샤워 시인님,.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핑크샤워님의 댓글

오늘 아침에는 정원에 약을 뿌렸어요
잠시 소홀한 사이에
벌레가 왕성하게 번창하여
국화꽃잎을 다 갉아 먹었더라구요
향소국, 추명국 들이 곱게 피어나길 못했어요
모든 인연은(사람이건 사물이건) 소중하게 관리하여야 한다는 교훈,
이번 참에 새롭게 인식했답니다
시인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안희선님의 댓글

이 시를 읽으며, 제가 지극히 개인적 감회를 느꼈던 건
(시가 말하는 내용과 다소 동떨어진 감이 있더라도)
아버지 살아 생전에 저에게 주셨던 수 많은 근심어린 말씀과
걱정들을 왜 그때엔 불필요한 간섭으로만 여겼던지... 하는
뒤늦은 회한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