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16] 나무의 일생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나무의 일생/
아침저녁으로 이 숲엔 안개가 꼈다
숲에 처음 오는 친구들은
바람이 무수히 길의 흔적을 낸
나의 몸통과 나뭇가지와 손바닥에
크고 작은 웅지를 틀고자 했으며
천년만년 살 것 같았던 나는
내 몸을 열어 그들을 받아 들였다
새들이 내 가지를 위태로워 할 때도
난 몸속이 비워져 가는 줄도 몰랐다
지독히도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쳤으며
내 몸은 맥없이 쓰러져 뒹굴다가
숲속 어느 구석진 곳에 안착했다
안개의 군단이 물러가고
하늘에 태양이 걸릴 무렵에서야
동강난 내 몸뚱어리에서
힘줄 불거진 잎들이
폐지수레를 끄는 노인의 손처럼
쪼글쪼글 바스러지는 걸 보았고
이제는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텅 빈 몸뚱어리 속으로
꽤 긴 정적이 흐르고 난 후에서야
숲의 작은 벗들이 하나 둘 찾아와
내 작은 동굴에 둥지를 틀었다
그것만으로
내 마음의 위안이 되어갈 무렵에
또 다시 홍수가 나의 동굴 안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 버린 날
작은 벗들도 모두 떠나갔으며
더 이상 날 찾는 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우울이 산길을 걷는 시간
이제는 가지도 없고 잎도 없으며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
어느 햇살 좋은 날
바싹 마른 몸통으로 누웠다가
산등성이를 오를 날 선 도끼에게
불쏘시게 깜으로 부서져 볼 일이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이 허망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시를 쓴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 나는 시를 잘 몰라서, 이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최소한 아무런 가림막이 없는 자기자신을
겸허한 영혼이 되어 만나는 일 하나는 건지는 것 같다
(물론, 시조차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도구로 삼는 이들은 제외하고)
시를 읽어보니,
모든 헝클어짐도 나무의 일생에 기대어 바라볼 때는
담담히 술회되는 화자의 고요한 성찰이 되고 있음을..
------------------------------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꽃맘, 핑크샤워 시인님
핑크샤워님의 댓글

시인님 귀한 걸음주시고, 창작에 도움되는 귀한 말씀 놓고 가셨습니다
저야 말로 시를 잘 모르지만
물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듯
시를 지음에 그 사유도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는 것이 좋은 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