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6] 비에 비친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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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비친 운동회 / 테우리
새벽을 일깨우는 가을비
문득, 그 속을 추적거리는 그림자다
거진 반세기를 거슬러 오른 요맘때쯤, 우리 학교에도 가을운동회가 열렸었지요
아직도 이 가슴팍에 웅크리고 있는 건, 얼룩진 희비의 쌍곡선이지요
개중 한껏 부풀리던 곡선 하나는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 차롱*에 가득 찬 팥밥이며 큼지막한 갈치구이며, 후식으로 주름진 당신의 흐뭇한 표정과 달콤한 홍시 한 개씩(누나와 동생까지만).
이때마다 나를 울리며 풀썩 주저앉히던 다른 곡선은 50미터 달리기, 눈대중이 도와 맨 앞줄일 땐 가까스로 3등 4등이었지만, 재수 없이 다음 줄로 밀릴 때면 이미 당상으로 맡아놓은 꼴등, 발로 뛸 걸 옹색한 심장이 먼저 달음박질쳤으니, 엇박자의 호흡은 허접한 허파가 도맡았으니, 어쩌다 비라도 한 줄기 얼씬거려주면, 붉어진 눈자위며 방울진 창피의 빛은 함께 흘려버렸지만,
언젠가 대뜸 눈치 챈 대범이 왈,
‘태운아! 너 진짜 울멘?’
주제에 받아친 시침의 존심
‘아니, 눈에 먼지 들어간’
먼 훗날 반창 아이들 귀띔이지만,
어느 낯선 여인의 그림자 하나
눈물 훔치고 있더라는데
기웃기웃 나를 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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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제주도 지역에서 떡이나 빵 등을 담아 두거나 친지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려고 할 때 담아 이용하던 도시락 형태의 대나무 그릇,
‘차롱착’이라고도 불린다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찐한 추억이 묻어나는 글,
함께 옛날로 돌아가 봅니다
가을비 내리는 날,
생각나시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글을 접합니다
늘 고운 시상을 기대해 봅니다
잘보고 갑니다.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가을비는 왠지 옛일을 들추더군요
추적 추적거리며...
가끔씩 되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네요
감사합니다
고현로2님의 댓글

‘태운아! 너 진짜 울멘?’
‘아니, 눈에 먼지 들어간’
제주 방언이나 강원도나 살짝 비슷하군요.
'먼 아가 그걸루 찔찔짜고 그러재야 매런도 읎네, 물패기 마이 까전?' 이러거든요.
강원도 사투리는 약간 촌스러워서 우물우물 감추는 여자애들이 참 귀엽답니다.
휘영청 한가위 되시길....^^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제주사투리가 함경도사투리에도 조금씩 묻어있더군요
이랬수다 저랬수다, 등등
사투리가 사실 옛말들이 변하지 않은 방언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옛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지요
해서 비슷할 겝니다
감사합니다
훤한 달밤 함께 기대하시지요
추영탑님의 댓글

우리도 반 세기도 훨씬 더 이전에
가을 운동회를 했었지요.
비 올까 가슴 졸이던 날들이었는데요.
달리기는 어찌어찌 3등은 했고, 얇은 공책
한 권은 받았지요. ㅎㅎ
근데, 눈물 흘리며 훔쳐보던 어느 낯선
여인이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그 당시엔 그 여인도 소녀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짝사랑하던····
감사합니다. ^^
김태운.님의 댓글

반세기를 거슬러보면 제가 4학년이었지요(7살에 1학년)
여인이지요. 소녀가 아닙니다. 잘못 짚었습니다
더욱이 전 그때 숫기가 부족해서...
감사합니다
香湖님의 댓글

아픈 과거사가 슬몃 고개만 디밀고 지나갔네
아직 살아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생존하신다면 그 여인에게
잘 하십시요
단 한 분 뿐인 분이잖아요.
또 괜한 오지랖 ㅎㅎ
나이를 먹긴 먹었나벼
김태운.님의 댓글

오지랖도 나름이지요
너무 멀리 계십니다
전 이미, 글러버린 놈이지요
헹님 발톱만치도 못한...
여튼 내려주신 말씀
기회가 있다면
저승에서라도
시그린님의 댓글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시고
오가는 길 편안 하시길......
감사합니다.....김태운님!
김태운.님의 댓글

오가는 길이 제주도라 괘않습니다만
어제 지진이 걱정되는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이래저래 곤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