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진짜 부처는 자신의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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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진짜 부처는 자신의 내부에 있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부처를 만나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어떠한 말도 없이
실존하고 있는
텅 빈 참나(절대적 고요와 침묵)를 발견하는 일,
부처를 만나
부처에 계합하면
언어와 행동이
부처와 어우러진 삶을 살아간다
경經을 거침없이 끌어오고
조사선祖師禪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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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 조사선祖師禪/ 조사관祖師關이라도고 하고,
/ 선문답禪問答이라도고 합니다.
/ 선각先覺(조사祖師)들이 쳐놓은 관문으로서
/ 조사선은 깨쳐야 바르게 알 수 있는 공안公案(화두話頭)입니다.
* 화두話頭/ 선가禪家(깨침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화두라는 말은
/ 세간법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말머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 깨쳐야 바르게 알 수 있는 공안公案(조사선, 조사관)입니다.
/ 깨치게 되면 알게 됩니다,
/ 세상 모든 만물은 화두(공안公案)가 다 될 수 있습니다.
* 조사선祖師禪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게 된다
/ 법륜法輪을 마음대로 굴린다는 뜻입니다.
* 경經/ 경이란 인간의 본래 성품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경의 모든 말은 인간의 본래 성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언어에 뜻을 담아 부처의 언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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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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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세상의 온갖 스승들을 찾아 길을 나선 선재동자善才童子의 구도기가 실려 있다.
부처와 나한뿐만 아니라
거지와 창녀에게까지 삶의 진실을 구하던 그에게 마침내 진리의 보살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자신이 처음 길을 떠났던 바로 그 자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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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도 비슷한 모티브가 있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이야기.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난 사람이 세상의 온갖 풍파와 신산辛酸을 겪은 다음,
지치고 쇠잔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자기 집 뜰 나뭇가지 위에서 금빛으로 울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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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탄무誕无 는 말한다.
진리(부처)는 아주 가까이 있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자신의 뼛속에도 부처가 존재하고 있다.
뼛속까지 훑고 지나가고 있다.
선가禪家의 선각先刻들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자신으로부터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깨치기 어렵다? (只爲分明極 蒜令所得遲)
세상에(인간에게) 어째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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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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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春(심춘)/ 이름 모를 비구니가 지은 오도송悟道頌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破壟頭雲 진일심춘불견춘 망혜답파농두운
歸來偶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귀래우과매화하 춘재지두이십분
날이 저물도록 봄을 찾아 헤매었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 구름만 밟고 다녔네.
지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 가지에 위에 한껏 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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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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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도인道人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내가 부처가 되어야 부처는 아름답다
부처는 본래 나 자신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므로
결국, 이 말은 내가,
내가 되었을 때 아름답다는 말.
보는 나와 보이는 부처는 분리될 수 없다
뼛속까지 존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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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인道人 산속에 숨어 살아가고, 큰 도인道人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 작은 은자隱者 산속에 숨어 살아가고, 큰 은자隱者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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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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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는 내 사람/
깨치면
부처는 내 사람,
깨치지 못하면
부처는 내 사람이 아니다
* 본문의 노래가 매끄럽지 않아 흐름을 막는 언어를 날리고 교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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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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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래 성품을 기능성 측면에서는 불성佛性이라 하고,
그 활동의 측면에서는 부처라 하며,
그 특성은 반야般若이며,
그 경지는 법계法界 혹은 열반涅槃이며,
인격의 측면에서는 불타佛陀, 진인眞人, 여래如來 등으로 불린다.
이 모두는 똑같은 인간의 본래 성품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이 말고도 불리는 이름이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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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선님의 댓글

정신이 맑아지는, 귀한 말씀..
가슴에 깊이 담아 갑니다
이제, 곧 추석 (달력에 그렇게 써 있음)
가족. 친지와 함께
즐겁고 뜻 깊은 한가위 되소서
탄무 시인님,
탄무誕无님의 댓글

안녕하십니까?
아주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