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가문家門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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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가문을 지킨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경經과 조사선祖師禪이
부처(예수)의 말이라면
깨침은 부처(예수)의 마음,
부처와 계합契合하지 않고
말을 쓰는 것만 알면
태어나기 전 본래 고향과는 만 리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이종어二種語가 있다 생각지 말 것이며,
부처가 침묵과 고요만을 먹고 산다고
말이 없다고도 알지 말라
한사코 마음에 매달렸던
질긴 묵은 훈습이 떨어져 나갔다
거친 망상妄想도 사라졌다
미세망념微細妄念까지
"말을 하면 살고, 말을 못하면 죽는다"
어설프게 질문을 알아듣는 척하거나
어법에 익숙한 분별심分別心이 작동되는 순간,
이 말뜻의 문은 닫힌다
자신이 자신의 본래 성품을 모르면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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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와 예수/ 인간의 본래 성품, 깨침.
/ 깨침의 세계에서는 예수와 석가(부처)를
/ 서로 다른 한 개인으로 지칭할 수 없습니다.
/ 예수와 석가라는 말은 선각先覺(깨침)을 가리킵니다.
* 조사선祖師禪/ 조사관祖師關이라도고 하고,
/ 선문답禪問答이라도고 합니다.
/ 선각先覺(조사祖師)들이 쳐놓은 관문으로서
/ 조사선은 깨쳐야 바르게 알 수 있는 공안公案(화두話頭)입니다.
* 본래 고향/ 부모로부터 나기 전前의 고향으로서
/ 인간의 본래 성품(부처)을 뜻합니다.
* 나/ 선사禪師, 선각先覺, 깨친 자, 부처와 계합한 자.
* 이종어二種語/ 두 종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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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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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이 운문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운문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사도査渡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이번 여름은 어디서 보냈나?”
“호남湖南의 보자사報慈寺에 있었습니다.”
“언제 거길 떠났지?”
“8월 25일입니다.”
“세 차례나 두들겨 팰 걸 참는 것이니 물러가게.”
다음 날 아침, 동산은 운문에게 문안드리며 물었다.
“어제 세 차례나 맞을 짓을 했다는데 대체 제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운문이 말했다.
“그런 식으로 강서와 호남을 돌아다녔더냐, 밥통 같은 놈!”
동산은 이 말에 대오했다.
*
*
혜개는 말했다.
운문은 그때 본분本分의 양식糧食을 주어
동산이 살아날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집안이 적요함을 면했다.
밤새도록 시비의 바다에 빠뜨리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설파해 주자,
동산이 곧 깨쳤지만 그래도 똑똑했다고는 할 수 없다.
자, 어디 물어보자. 동산은 세 차례의 몽둥이를 맞아야만 했을까?
맞아야 했다면 늘어선 그대들도 함께 찜질을 당해야 하고,
혹 그럴 일이 없었다면 운문이 헛소리한 것이 된다.
여기서 사태를 분명히 인지한다면 동산과 더불어 깊은 한숨을 토할 것이다.
송頌하여 가로되,
“사자가 새끼를 가르치는 것이 선가의 교육법.
새끼가 절벽을 기어오르려 하면 발로 차 버린다.
괜스레 날려주는 두 번의 비밀, 첫 번 화살은 약과이고 두 번째가 무섭다.”
=== 다음 날 평역해 글 올릴 때 댓글란에 붙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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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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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지如來地>
숲 속에서는 숲이 안 보여
내 속에서는 내가 안 보여
* 여래지/ 부처의 품속, 본래 성품의 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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