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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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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4회 작성일 16-08-31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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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노을


바다 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내 몸에 꽂힌, 수 많은 칼들이
잔뜩 날을 세워 노를 젖는다
내 몸의 피로 물든 바다가
기를 쓰며 하늘로 기어 오른다
내 안에서 출렁이던 그리움도
붉은 신음을 한다
갈매기 울음소리를 닮아간다
아니, 갈매기 울음 소리겠지라며
스스로 환청을 한다
내 몸에 돋아나는 물의 소름들
그래서 이리, 추운 걸까
나 때문에 아팠던, 사랑도
해변에서 하얗게 파도로 솟는다
저래서 사랑은 미련한 거지
제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저 멀리, 눈길이 머무는 바다 위로
희미한 추억이 굳게 닫힌 창문을 연다
오랜 기억들이 그 창문에
거미줄처럼 주렁 걸리고
포박을 끊고 기어나온, 낡은 사람들이
내 피로 물든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그들이 내 안에서 살아 온 질긴 힘으로,
그들 중 몇몇은 나를 금방 앞지른다
참을 성 없는 내 입이 중얼거린다
앓느니, 차라리 죽지
내 위에서 무섭게 붉어가던,
저녁하늘이 혀를 찬다
시퍼렇게 주둥이만 살아 있는 것
빈 말이라도, 반성 좀 하렴
너로 인해 늙어버린 사람들인데,
가엽지도 않니
살아가면서 한 번 쯤은 따뜻하게
스스로 괴롭기도 해야지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것

문득, 건드리만 해도
글썽일 듯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입 안에 마른 침을 삼킨다
온 몸의 피가 바다로 다 흘러
지금, 나는 목이 마르다

붉게 출렁이는 짠물 위에서
한 잔의 생수(生水)가
비로소 그리운 거다


내 몸 안에 뜨거운 피는
이제 하나도 없어,
빈 노을 같은
몸이 되서야


                                   - 안희선





Ever Love - Joe Hisai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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