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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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친구. 평소 자네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가끔씩 정신이 번쩍 들 때만 자네를 볼 수 있으니 말일세.
거울속의 자네 말고는 온전히 볼 수가 없네.
사실 거울이 아니더라도 늘 자네의 일부를 보고있지만
대개는 난 자네의 존재를 느낄 수 없네.
자네는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보고 듣고 가고 냄새맡지.
그리고 그걸 느끼는 것도 자네가 아닌 바로 나지.
자네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지.
그러니 자네는 허공보다는 흙에서 온 존재가 아닌가 싶네.
자네와는 반대로 난 생각을 할 수 있지.
그 생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도 그릴 수 있는 상상이란 걸 하지.
물론 그것도 자네가 느껴지지 않을 때만 그렇다는 말이지만.
하지만 내가 자네를 떠나면 나도 내가 무엇이 될지는 몰라.
그래서 난 흙에서 보다는 허공에서 살았던 존재인 것 같아.
10년전만 해도 자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와서는 자주 자네를 느끼는 것 같네.
왜 자네는 고통을 느낄 때만 내게 신호를 주쟎나?
혹시라도 손톱아래 작은 가시라도 박히는 날이면
자네는 어린아이마냥 참지 못하고 치료해달라
병원에 데려달라 날 귀챦게 하지 않나 말일세.
그럴 때마다 난 자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지.
이제 자네는 아침저녁으로 나에게 소식을 전하는군.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뭔 된장국에 양주 말아 먹는 흰소리인가 했더니
나이 들어 신경통에 마누라발에 등 밟히고
'애구구~~시원타'소리가 나고서야 옳다구나 싶었네.
난 자네가 아프면 자네의 고통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지.
그건 아마 나와 자네가 너무 오랜 동안 같이 했기 때문일거야.
그 누구도 자네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사람은 없지.
심지어는 어머니나 아버지 보다도.
하지만 난 자네가 곧 나라고는 생각지 않아.
거울에 비춰봐도 자네는 날 볼 수가 없어
오직 나만이 나를 볼 수 있지.
왜 속담에도 있쟎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조심하게 자네가 나를 너무 귀챦게 하면
내가 먼저 자네를 떠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
자네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잠잘 때를 제외하고도
군대시절 열받은 빼치카옆에서 점호를 받다 장작개비처럼 쓰러져
자네의 턱이 깨진 일도 있지 않았나?
또 한번은 몇일간 잠 못자고 이런저런 일로 너무 힘들었을 때는
이발관에서 머리를 깍다 혼절한 일도 있었지.
모두 내가 자네를 잠시 떠났던 때의 일일세.
그렇게 내가 자네를 떠나고 나면
우리가 다시는 만나는 일은 없을 걸세.
자네는 땅으로 돌아가고 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지.
자네를 떠나기만하면 서로 영원히 보지 않아도 된다는거지.
하지만 걱정말게 아직은 내가 자네를 떠날 때는 아닌 것 같으니.
자네가 못생기고 짥막한데다 요즘와서 자주 내게 귀챦게 굴기는 하지만
자네의 밝은 눈과 밝은 귀와 예민한 코와 부지런한 팔다리가 아직은 좋으니 말일세.
그래도 자네의 그 짧은 팔다리와 내세울 것 없는 얼굴 때문에
더 많이 참을 줄 알게 되었고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난 세월이 갈수록 자네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자네는 나를 떠날 마음이 조금씩은 생기는지 요즘와서 점점 더 나를 귀챦게 하는 것 같네..
왜 사람이 떠나기 전에는 주변사람들에게 미운 짓을 많이 한다고 그러쟎나?
정 떼느라고 말일세.
이런 걸 두고 정들자 이별이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나를 미워하지는 마시게나.
우리가 어디 보통인연인가 말일세.
자네와 난 억겁의 세월을 하늘과 땅에서 각각 떨어져 살다
윤회란 이름으로 단지 짧은 한 생만을 같이 살게 된 것이란 말일세.
그리고 염치 없지만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우리가 헤어질 때는 너무 요란스럽지 않았으면 싶네.
그러면 자네나 나나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말일세.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르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그렇게 헤어지면 좋겠네.
오늘밤은 같이 화장실을 가자며 날 깨우지 말고 해 뜰 때까지 푹 잘자게나
안녕.
그리고 자네는 바로 내 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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