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만나려면 입술에 거미줄부터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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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나려면 입술에 거미줄부터 쳐라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닦을 수 없는데 닦았다 한다
비울 수 없는데 비웠다 한다
부처는 형상이 없고, 움직임이 전혀 없다
형상 있는 것도 잘 닦고 비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처를 무슨 수로 닦는단 말인가?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전前부터 공空이다
우주가 멸滅한다 해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텅 비어져 있다
이미 비워져 있는 공을
무슨 재주로 또 비운단 말인가?
닦았다 닦았다 하는데
닦은 것은 그대가 아니고 말이겠지,
비웠다 비웠다 하는데
비운 것도 그대가 아니고 말이겠지
닦는다는 말도 오염된 말이고
비웠다는 말도 오염된 말이다
부처에 대한 언어상 훌륭한 말들이
부처와는 아주 많이 다르게 경經에서
방편설方便說로 쓰였음을 알아야 한다
문자는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수단手段이다
조사어록祖師語錄(선가어록禪家語錄)을 읽어도
부처를 보지 않고 읽으면
자신의 본성에 대한 말인데도 도통 모르는 선문답禪問答,
부처와 계합하면 모두 아는 내 말.
부처를 통해 문자를 밝힐 수는 있어도
문자로는 부처를 밝힐 수 없다
이 몸은 가난하나 부처는 가난하지 않다
부처는 부자에게 절대 곁을 내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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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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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空(허虛, 무無)/ 부처의 본체本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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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마음의 풍요, 분별심과 번뇌 망상이 가득한 상태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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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로는 부처를 밝힐 수 없다/ 문자로는 부처를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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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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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石霜은 학인學人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너의 모든 갈망을 버려라.
너 입술에 거미줄이 쳐지게 하라.
너 자신을 깨끗한 비단 조각이 되게 하라.
오직 생각 하나가 영원토록 하라.
그대 자신을 불 꺼진 재, 생명 없는 주검으로 여겨라.
황량한 사당의 먼지 덮인 향로로 생각하라.
석상은 어설픈 긍정이나 삶의 신비를 찬양하지 않는다.
죽어야 살 수 있다!
(육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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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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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곡선사(진제 대선사의 법스승)께서 열반 4일 전에 제방의 조실들을 찾아다니며 물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물었느냐 하면, “임제선사가 하루는 발우를 가지고 탁발을 나갔는데,
한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탁발 왔다고 하니까, 노보살이 나오더니 대문을 열고 임제 도인을 보고는 대뜸
‘염치없는 중이다’ 하고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 임제선사가 ‘탁발하러 왔는데 어째서 한 푼도 주지 않고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고?’ 했더니
대문을 왈칵 닫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임제는 아무 말 없이 절로 돌아와 버렸다
이 대문(大文, 조사선祖師禪)을 가지고 향곡선사가 제방諸房 조실祖室들에게 물었는데
제방 조실들의 대답이 시원하지 못했다.
그래 가지고 해인사 방장 성철선사한테 갔다.
방장 성철선사가 하시는 말씀이
“고인古人들이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한 바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자 향곡선사가 “이 무슨 소리야! 고인은 고인이고, 하라면 하는 거지.”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서야 방장 설철선사의 한 마디가 나오더라는 거였다.
성철선사 경계니까 그 정도가 나왔지, 다른 이들은 아무도 답하질 못해!
향곡선사가 실망하여 절로 돌아올 때
진제선사(현 제13대 조계종 대종정)가 해운정사 마당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향곡선사께서 진제선사를 보자마자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 법문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임제선사가 하루는 발우를 가지고 탁발을 나갔는데,
한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탁발 왔다고 하니까,
노보살이 나오더니 대문을 열고 임제 도인을 보고는 대뜸 ‘염치없는 중이다’ 하고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임제선사가 ‘탁발하러 왔는데 어째서 한 푼도 주지 않고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고 ?’ 했더니
대문을 왈칵 닫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임제 도인은 아무 말 없이 절로 돌아와 버렸다.
그렇다면 네(진제)가 당시에 임제선사였더라면 뭐라 한마디 하겠느냐?” 하고
향곡선사가 마당에 서서 물었다.
들어가서 인사받고 물어도 될 건데 그동안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진제선사가
/ 삼십여 년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 오늘에서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
/ [三十年來弄馬騎러니 今日却被驢子撲입니다]” 하니/
“과연 나의 제자로다!” 하시며 파안대소하셨다.
이게 향곡선사가 임종 4일 전에 진제선사와 나눈 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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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님의 댓글

임제선사가 탁발하는 방법이 잘 못 되었습니다요.
"임제선사가 남의 집에 대문을 두드리고 탁발을 하러 왔다고 말한다"..이게 아주 잘 못 되었습니다요..
얻어먹는 주제에...
노보살은 일반중생의 거지와 동냥을 구하는 방법이 같다고 본 것 입니다.
그래서 몸은 임제선사인데, 마음과 행위는 동냥을 구하는 중생의 거지...
얻어먹는 중생의 거지가 싸가지가 없다고 본 것 입니다.
노보살은 임제선사가 노보살의 대문을 두드리고, 왔다고 말하는 그 순간
선사가 아니고 중생이라고 정확하게 본 것 입니다.
벌써,임제선사가 마음에 상이 일어나고,동냥을 구하는 탐욕을 일어켰다고 본 것 입니다.
즉 아상을 일어켰다고 본 것 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 선사가 아니고 중생이란 게지요...그리고 정확하게 본 것이지요..
노보살이 한 수 더 위네요..
제가 그 노보살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염치없는 중이란 말 들어도 싸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노보살은
그 순간 임제선사가 선사가 아니고, 임제중생이라고 본 것입니다요..
향곡선사도 거 참...평범한 이 문제를 너무 과민반응 했네요...
그것을 또 다른 선방스님한테 묻는다...거참...
선사라면 무아를 득한 도인인데..
오도 온 것이 아니고 가도 간 것이 아닐진데..
착의지발하고 노보살의 대문 밖에서 불취어상 여여부동하고 대문처럼 서 있을 것이지... 거참..
제 같으면 향곡선사의 묻는 답을 이렇게 할래요..
천년이 지난 과거를 만들어서 묻고
제가 현재를 만들어서 답하는 그 망상을 얻어서 어디에 사용할 것 입니까?
그리고 노보살이 임제선사의 그 말과 행위를 본 그 순간 선사가 아니고 임제중생이었습니다.
향곡선사께서는 중생의 말과 행위를 시시비비하고 분별하십니까?
어제 아침에 먹은 밥이 오늘 아침에 똥이 되어 나왔습니다.
제가 볼 땐 성철대선사가 한 수 위입니다
“고인(古人)들이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한 바가 없다.”고 하셨다.
성철대선사의 대스승인 임제대선사를 이러쿵 저러쿵 할려도 좀 그렇고...
특히, 성철대선사를 포함한 역대선사들 또한 분별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위와 같이 말씀을 잘 드린 겁니다...
이런 깊은 뜻도 모르고,
성철대선사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안한다고 보채는 향곡대선사가 좀 그렇네요..
이런 질문에 답하는 진제대선사도 좀 그렇고요..
본문의 글 잘 읽고,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탄무誕无님의 댓글

풀하우스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지요.
글을 올려놓고 교정작업 하다 말고 오후 2시 50분경에 왕진 갔다 왔습니다.
조금 전 밤 9시 40분에 귀가했습니다.
아직 씻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의료기구도 소독해야 합니다.
풀하우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착의지발하고 노보살의 대문 밖에서 불취어상 여여부동하고 대문처럼 서 있을 것이지... ..... /
이 말씀 옳고 옳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앞에 한 말씀과 뒤에 한 말씀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반드시 완치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온 힘을 다하다 와서 오늘 너무 피곤합니다.
진이 다 빠져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뿌듯합니다.
향곡선사를 평하고,
노보살이 왜 염치없는 중이라 했는지?
임제선사를 평하고 나서
진제 대선사께서 말씀하신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평해서 내일 댓글난에 붙여 놓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강히 지내십시오.
자리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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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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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향곡선사는 제자(진제 대선사)를 너무 아낀 나머지 조바심이 주책을 부린 애비같다.
괜히 벌인 한바탕 코미디다.
향곡선사는 그에게 둘도 없는 도반인 성철선사에게 견해를 묻는 방식도 과격했다.
지금에야 절간 일을 돕거나 절에 다니는 신도들을 모두 일컬어 보살菩薩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칼날 같은 선기禪機를 주지住持하고 있는 참공부인을 보살이라 했다.
부처에 버금이 되는 불자를 보살이라 불렀다.
예전에 보살, 그들은 불보살佛菩薩이다.
노보살의 칼날 앞에 임제선사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임제는 깨침의 세계에 갇혀 있다.
깨친 후 일상으로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
죽이고 살림이 자재自在로운 부처의 세계도 존재하지만,
부처의 품 안에 보살의 세계도 존재한다.
그 또한 공이다.
임제 노인은 보살의 진영을 훔치고 요새를 치는 솜씨는 뛰어나나 선사의 풍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임제선사는 노보살을 알아보겠다며 탁발托鉢을 빌미 삼아 대문을 두드렸다.
다짜고짜 대문을 두드리고 탁발을 하겠다는 것은 강제성이 실려 있다.
대문 앞에 서서 염을 치지 않았다, 대문을 두드리는 것은 결례다.
그래, 염치없는 중이 맞다.
염을 치면 열릴 대문은 어련히 열린다.
임제는 정공법이 아닌 위계僞計(거짓 술수)를 써서 보살의 진영을 뺏고 요새를 허물려고 했으니
아무래도 ‘선사의 풍모’라고는 할 수 없다.
임제는 노보살을 간파하러 갔다가 오히려 노보살에게 간파당했다.
노보살은 임제선사의 안목眼目이 건너오는 수작을 벌써 간파했다.
그리고 노보살은 염치없는 중이라며 대문을 꽝 닫아버린 것이 임제의 얌체 짓을 알아본 자리다.
임제의 수작을 되받아친 공력工力(공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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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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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승僧 자字를 쓸 때 사람 인人 자字부터 쓰고,
부처 불佛 자字를 쓸 때도 제일 먼저 쓰는 글자가 사람 인人 자字다.
이것은 사람 도리부터 하라는 것이다.
임제는 사람의 도리를 먼저 해야 했다.
중이라면 중의 도리부터 먼저 하는 것이 중이다.
중이 탁발 갔으면 염을 먼저 해야 한다.
염을 하지 않고 대문을 다짜고짜 두드리는 탁발은 오만불손이다.
그래서 임제선사는 염을 치지 않은, 염치없는 중이다.
대문 앞에 서서 염을 해서 문을 열어주면 말없이 탁발을 받고,
소금을 뿌리면 맞으면 된다.
열어주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탁발해야 한다.
빌어먹는 일(탁발)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탐욕과 집착을 소멸하는 위대한 공부다.
임제선사는 염을 하고 당당하게 탁발을 해야 했다.
중의 음식은 철저히 탁발에 의존해야 한다.
염을 치지 않고 대문부터 두드리는 것은 세간의 풍습에 대해 무례함이다.
세간의 대문은 절간의 목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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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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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대선사께서 스승 향곡선사의 물음에 답한
임제탁발화는 주중빈主中賓 의 도리(세속의 도리, 향하向下의 도리)인데
'임제의 사빈주(臨濟四賓主)’ 가운데
주중주(主中主, 부처의 본체, 향상向上의 진리)의 도리로 대답하였다.
진제 대선사께서도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합니다./
주중빈(향하向下의 도리)일 때는 주중빈(향하向下의 도리)으로 답하는 게 옳다.
스승을 저버릴 수 없어 묻는 질문에
세속의 도리(주중빈 도리)에 주중주의 도리를 억지춘향격으로 밀어 넣은 답이 되었다.
물론, 빈賓과 주主의 상거相距(거리)는 없다.
주主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빈賓이 작동한다.
그러나 여하튼,
진제 대선사의 /삼십년래농마기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 금일각피려자박今日却被驢子撲/이라.
'삼십여 년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 오늘에서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
이 게송偈頌은 여래선如來禪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것을 게송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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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탄무誕无는 또 말한다.
* 삼십년래농마기三十年來弄馬騎/
* 삼십여 년간 말(언어와 문자, 사대 육신)에 노예가 되어 희롱당해 오다가
* 금일각피려자박今日却被驢子撲/
* 오늘에서야 당나귀의 큰 받침을 입었습니다.
* 12간지(십이지신十二支神)에는 당나귀 해(띠)가 '없다.'
* 없음은 부처의 본체다.
* 이 없는 당나귀 해(띠)가 부처의 본체 공空, 무無, 허虛를 가리킨다.
* 진제 대선사께서 답한 당나귀의 큰 받힘을 입었다 함은 부처의 가피를 입었음을 뜻한다.
진제 대선사께서는 당신의 스승을 찬양하고 싶어 마음이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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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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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는 어떤 대상으로 계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문자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부처를 찾는 것은
/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이다.
/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 부처는 논리적으로 알고 모르고에 있지 않다.
/ 안다는 것은 망령妄靈이고 모르면 혼미昏迷,
/ 부처는 체험의 영역이다.
/ 논리적 분석적 인지적으로 접근하면 부처와 점점 멀어진다.
/ 노보살이 그렇다 해도
/ 임제선사가 보살에게 호되게 간파당했다 해도
/ 향곡선사가 제자를 너무 아낀 나머지 주책을 부렸다 해도
/ 진제 대선사께서 향하의 진리에 향상의 일구로 답했다 해도
* 물에 젖지도 않고, 불에 타지도 않는다*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는 낚싯밥이다.
낚싯밥은 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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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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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허虛를 찔렀다 /
내가 내 허虛를 찔렀다
내가 내 허를 찔렀는데
마른하늘에 벼락이 때리고
대지의 초목 군생이 화들짝 놀란,
경천동지驚天動地가 벌어졌다
암중모색暗中摸索에 종지부를 찍고
삼라만상의 모든 허를 찌르고 말았다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에까지,
별의별 신묘불측神妙不測한 능력을 갖춘
삼세三世의 주인이며
사생자부四生(慈父인 부처의 허虛를
모든 만물에게 차별 없이
두루 편재해 있으며
가장 멀리 있는 별에게도 있고,
일찌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예수와 석가가 오기 전부터 뚜렷이 밝았고,
크고, 넓고, 멀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귀신도 엿볼 수 없고,
높고 또 높아 신령神靈하여
천상천하에 짝할 자가 없다
상상과 허구를 탈락시키고
시간과 공간과 마찰 없는 영원을
차별 없이 모자람 없이 그리고,
나고 죽음이 없는 세계와 텅 빈 공을 장착해
대자유인의 장광설長廣舌을 펼친다
여기 둘이 있을 수 없다
하나뿐이다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중도中道이므로
하나마저 없는 텅 빈 그 하나,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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