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밭에 꽃이 피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양파 밭에 꽃이 피었다/수류 손성태
품사서 파종한 양파 밭에 꽃이 피었다
희멀건 수꽃이 지천으로 핀 꽃밭
밭고랑 한걸음마다 날아오르는 배추흰나비가 팔락팔락
밭을 헤집는다
나비가 꽃을 피우는지 꽃이 나비가 되는지
양파 밭은 서로 모르고
희롱하는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서방질이다
추대를 뿌리째 뽑아 버리기를 여러 날
밭둑에 찢어져라 하품하는 헤진 검정고무신 한 짝
뿔나듯이 솟고 또 솟아오르는 수꽃
품삯도 안 나올 이놈의 밭, 때마침
부슬비가 내린다 경운기에 시동을 걸고
로타리를 친다 추대가 팍팍 쓰러지고
저놈의 꽃과 나비, 사방으로 흩어지고
속에서 휑한 바람이 지나간다
양파도 잃고 꽃밭도 잃은 빈 밭
마당의 꽃과 나비를 어쩌나
앞으로 어떻게 보나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빗물이 가려주는데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주는 아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고
쑥대밭이 된 양파 밭에는 여전히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댓글목록
이종원님의 댓글

신윤복의 풍속도 중 없을지도 모를 꽃과 나비를 보는 듯 리얼한 풍경입니다
속내에 담긴 심기 또한 은연중 가슴을 압박하는 맛이 있습니다
일석이조를 한번에 해냈지만 왠지 여운이 남는 모습을 더 깊숙히 체험하려고 상상속으로 들어갑니다
늦은 여름, 농토가 있는 풍경속에서 발을 빼고 쉽지 않아 머물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손성태님의 댓글의 댓글

습작시절 농촌의 한 조그마한 분교에 있을 때 경험을 살려
다시 써 본 글입니다.ㅎ ㅎ
오래 묵히고 다시 보니 새롭게 보이더군요.^^
고맙습니다. 이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