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보시(布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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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보시(布施)
이영균
엉거주춤 허리 꺾인 팔순의 노모가
평생 쉴 새 없어
편자 한 벌 갈아보지 못한 그 발로
삼복더위에 깻잎 몇 단과 풋고추 서너 바가지를 펼쳐
장마당 모퉁이에 노점을 펼치신다
까부라지는 허리 점점 더 수수 자루인 오후쯤
그 발에 덧신인 듯 운동화를 끌고
국숫집에 들어서며 값을 묻는데
수굿이 귀동냥하던 젊은 아낙이 값을 대신 치르면서
잘 드시고 가시라며 자리를 뜬다
노모는 제풀에 없으이 여기나 싶어
바람 가르며 가는 아낙의 뒷덜미에 잔뜩
자존심을 퍼붓는데
쫓을 새 없이 사라져
아쉬운 여운만 텅 빈 모퉁이
제 모친 생각하여 국수 값으로 대신
고회(苦懷)한 것이란 주인장의 말
삐꺽거리는 무릎
아픈 건지 시원한 건지
낙담인 듯 흐뭇이 눈시울이 젖는다
평생 보시(供)가 보시(德)로 돌아온 날
품 가지런히 빗어보는 노모
* 이 글은 저의 장모님이 소일거리로
가끔 장터에 노상을 펴시는 중에 생긴 고운 일화입니다.
댓글목록
레르님의 댓글

그 아낙의 마음을 알지요
저도 가끔 장구경을 집사람이랑 가고 하는데
집에서 가꾼 농작물 서너 가지로 판을 펴신 모습들
어릴적엔 느끼지못한 어머님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것도 이젠 손자를 위해서 말이죠....
간만에 찡한 모습을 담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포 시인님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네! 감사합니다.
노모의 거동이 날로 편찮아지시니
마음이 아픕니다.
자식 된 도리로 그 안쓰러운 생을 어루만져 봤습니다.
더위에 더위 주위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