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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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마음은 분별分別을 먹고 살이 찐다
조사祖師(선각先覺)들은
화두話頭를 뚫지 않고서는
부처와 만날 수 없다, 극언極言한다
부처를 만나려면
조사祖師가 세워놓은 관문을 뚫어야 한다(參禪須透祖師關)
화두가 조사관祖師關.(조사선祖師禪)
간화선看話禪으로 화두를 박살 내면
공空에 떨어지므로 여래如來를 만날 수 있다
여래를 만나면 조사祖師의 선문답禪問答에
부처 삶아 조사助詞들을 구워내어
조사祖師들을 받아친다
삼백육십 혼신의 뼈마디와
팔만 사천 혼신의 털구멍과
온몸의 의식을 모두 끌어모아
꼬나 든 화두 하나에
집중되도록 쏟아부었다
수련修鍊 깊은
어느 날 갑자기(돈오돈수頓悟頓修ㅡ 단박에)
지진이 일어났다
허공이 뚫렸다
땅도 뚫렸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뚫렸다
마음의 먹이가 공에 장악掌握됐다
내적인 헉헉댐이 끝났다
외적으로
허둥대던 속수무책도 끝났다
문 없는 문無門關,
빗장을 벗겨 내고
석가와 어깨를 나란히
달마와 손잡고
이들이 보았던 것을 보고
이들이 들었던 것을 듣는다
그래서,
그리고,
그러나,
하늘을 놀래주고 땅을 울리며
부처가 막아서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막아서면 조사를 죽인다
그야말로 죽이는
부처표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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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부처의 본체本體 공空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조사祖師(선각先覺)의 질문(선문禪問)을
맞받아칠 수 있는 여래선如來禪입니다.
부처의 본체 공은 여래선입니다.
공은 친다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때린다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허공이 무너져도 공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처의 본체 공을 몸으로 삼았음을 뜻합니다.
*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 부처의 본체/ 공空, 무無, 허虛.
* 죽이는/ 죽인다는 것은 육신의 죽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죽이는 이 말에는 끝내준다, 기가 차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 이걸 알고 이러한 뜻도 함께 담아 선시禪詩를 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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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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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브라만 학자에게 스승이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이냐?”
학자는 지식(문자와 외부정보)에서 배운 대로 대답했다.
“그것은 최고의 실재, 세계를 형성하고 전변시키고 있는 영원의 브라만입니다.”
스승은 그의 머리를 잡아다가 물통 속에 처박아 넣었다.
캑캑거리며 발버둥치던 그를 꺼내 놓고 다시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이냐?”
“예, 그것은 숨 쉴 공기입니다.”
그렇다.
인간의 허식과 군살을 다 떨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
*
*
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숨 쉴 공기조차 아직 삶과 죽음의 근본 속살이 아니다.
이조차 떨어내고
마지막 숨 쉴 공기조차 방하放下하고 나면(목숨줄 끊어지면)
무엇이 남을까?
그곳엔 부처의 본체, 공만이 살아 숨 쉰다.
/관자재觀自在, 스스로 보고 있는 자/를 뜻한다.
스스로 보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누군가 말없이 얼굴 없는 얼굴로 보고 있다.
고요를 먹으며 누군가 침묵으로 듣고 있다.
그래 그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부처다.
인간의 본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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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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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절의 깃발을 울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승려는 깃발이 펄럭인다 하고,
또 한 승려는 바람이 펄럭인다 했다.
둘이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육조(육조 혜능대사)가 말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것도, 깃발이 펄럭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희 마음이 펄럭일 뿐이다.”
두 승려는 이 말에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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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개가 말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것도, 깃발이 펄럭이는 것도,
또한 마음이 펄럭이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서 육조의 뜻을 볼 것인가?”
“만약 여기서 절실한 파지가 있다면 알게 될 것이다.
두 승려가 철을 팔아 금을 얻으려 하고,
육조가 참을성 없이 끼어들어 결국 한바탕 코미디가 벌어지고 말았다.”
송頌하여 가로되,
“바람과 깃발, 마음의 펄럭임은 한 줄로 엮여 있다.
다만, 알지니 입을 열면 덜컥 낭패당하고 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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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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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부처의 본체, 공 위에, 공의 품 안에서, 공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상相(유형의 모양, 무형의 생각, 관념, 느낌)들이 펄럭인다.
바람도, 깃발도, 마음도 모두 공의 품 안에서 펄럭인다.
삼라만상의 모든 만물은 이 공을 빠져나갈 수 없다.
바람도 깃발도 마음도 펄럭이지 않는 곳,
바로 부처의 자리다.
부처의 본체, 공이다.
직접 보는 것만큼 가장 큰 믿음이 없다.
부처와 직접 계합契合하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믿음은 없다
깨친 세계는 오직 깨친 자만이 교감할 수 있다.
/
'관關!'
/
/ 이 관이라는 선문은 현 13대 조계종 대종정 진제 대선사께서
/ 말후구末後句(마지막 물음, 마지막 관문)에 쓰는 조사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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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 살아 도망칠 수 없고, 죽어 숨을 수 없습니다.
/ 관棺! (한자의 음과 훈은 다르지만, 여래를 상징하는 말로 관關과 같은 뜻이다.)
이 관關!은 조사관이지만
여래如來의 본체를 가리키고 있다.
여래선如來禪은 여래선如來禪으로 답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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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선님의 댓글

대체로, (불가의) 선시 禪詩라 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하늘 높은 화두인 것 같아,
저 같은 무지랭이 중생은 접근하기가 무척 어려운 느낌인데
올려주신 시편들은 현실의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순환적 원형의
살아있는 깨침의 목소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말씀에서 불도라는 게 하늘 높은 데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일상적 삶이 곧, 수도임을 알게됩니다
- 즉, 깨침의 길을 간다는 게 꼭이 머리깍고 근엄한 천쪼가리를 걸쳐야만 되는 건 아니란 거
요즘은 승복도 비싸기만 한 것이어서..
한벌에 수백만원짜리 장삼가사를 걸친 스님네들로 부터는
들을 수 없었던, 여적무차 如寂無差 경지명일 境智明一의 산 말씀입니다
시인님께서 늘 제 건강을 걱정해 주시지만,
저 역시 시인님의 건강하심을 먼 곳에서 항상 기원합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탄무誕无님의 댓글

안녕하십니까?
제 몸과 마음에 걸어두고 계신 분께서 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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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침의 길을 간다는 게 꼭 머리 깍고 근엄한 천 쪼가리를 걸쳐야만 되는 건 아니란 거/
이 말씀 천 번 만 번 옳습니다.
여래如來의 작용을 가리키는 좋은 법문 댓글에 달아주셨습니다.
/ 여적무차 如寂無差 경지명일 境智明一 /
옳고 옳고, 옳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쉽게 쓰겠습니다.
몹시 애쓰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부처의 살림살이 공으로 많이 내어 드리겠습니다.
자리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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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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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해가 저물어 밥을 지으려고 보니 솥 가마에 불씨가 없었다.
등불을 들고 십 리 밖 이웃에 불을 구하러 갔다.
이웃은 불씨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사람아, 들고 있는 등불을 두고 어째 이리 먼 길을 왔는가.”
등잔이 곧 불인 줄 알았더라면
불을 구하러 온 지금쯤 식구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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