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6] 너의 8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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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8월에 / 안희선
사원(寺院)의 마지막 종소리가
구원의 징표를 허공에 뿌리는 시각
정처없는 시간은 고독하게 흘러가고,
땅 위에 뜨겁게 달구어진 소음(騷音)은
각진 세상의 목소리로 남았다
달콤한 향수(鄕愁)는 하늘 살짝 가린
하이얀 구름 속에 머물다가
숨죽이는 짧은 휴식을 남긴 채 한가롭게 떠가고,
너의 삶이 세상에 쳐놓은 무수한 협로(挾路)는
가느다란 생존의 핏줄이어서 너무 창백하구나
햇살이 작열하는 8월의 강변에도
눈이 충혈된 비둘기떼는 먹이를 찾고 있어,
슬프고도 황홀하게 잊혀진 이승의 마지막
신음소리를 구,구,구 또렷이 발음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가슴에 그리는 꿈은 최고의 기도(祈禱)
최초의 불행을 이제는 희열(喜悅)로 바꾼
어떤 총명한 의식(意識)이
반쯤 벌어진 석류의 얼굴을 하고 있어,
너는 그 진한 유혹의 색(色)에 붉게 취하고
이윽고 세상을 손 안에 담고 조물락거리다가
문득 자신의 쇠락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부유물 가득히 흐르는 강이 되네
그렇게 강이 되어, 출렁이는 영혼의 바다로 흘러가네
바다 위에 듬성 떠있는 푸른 섬들은 너의 발길을 유혹하고
수평선 끝에서 손짓하는, 한 때는 용감한 신(神)이었던,
사자(獅子)머리를 한 하늘의 품 안에 수줍은 구름처럼
안기려 하는 너의 몸짓이 한없이 되풀이 되네
아, 그러나 방만(倣慢)한 애무는
희미한 성가(聖歌)의 보잘 것없는 진동에 불과한 것을
차라리, 아무도 알지 못할 비밀로 소박한 추락(墜落)을
너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는 편이 한결 솔직한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은 언제나 파멸하기 쉽게, 앞으로만 가는 습성이어서
희망이 뒤에서 혹은 옆에서 몰래 스쳐가는 소리는
정말 알아듣기 힘든 처지인 것을
하지만, 세상에는 간혹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파수(把守)서는 이도 있어서
오늘도 어디에선가 불타는 정열로 행복과 입을 맞춘다는데,
신(神)도 부러워 할 진한 색깔의 뜨거운 입맞춤을
그 사람과 밤새도록 나누는 게 차라리 낫지 아니한가
너의 초라한 곳에서 얄밉게 부추기는 희망이,
너를 깔보지 않도록
댓글목록
노정혜님의 댓글

높은 시 향기에 머물다가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 필하소서
안희선님의 댓글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이 그러더군요
이 세상에 갠지스 강처럼 더러운 강은 없을 거라고
(화장을 한 시신의 잔해, 생활쓰레기 등 각종 오물로 뒤범벅이 된 강 - 심한 악취와 함께 너무 더럽다는)
그런데, 인도인들은 구정물 같은 저 강을 세상에서 가장 성 聖스런 강으로 신앙하고
보다 나은 내세의 삶을 위해 기꺼이 몸을 담굽니다
그렇게, 희망이란 처절하도록 얄미운 것입니다
고통스럽고 초라한 현생의 삶을 끊임없이 부추기니까요
저 이미지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이 있어서..
끄적여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인데, 귀한 걸음으로 자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노정혜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