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이 변형되어 연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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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변형되어 연꽃이 된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가난한 사람들 없이 부자는 존재할 수 없다
거지를 도와주고
대단한 일 한 것으로 느낀다면
당신은 당신 영혼을 사악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가 사악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도움은 어떤 조건도 없어야 한다
조건을 만든다면 하나의 짐을 지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주라
그때 그것은 거지에게 주는 것이 아니며,
무언가 장한 일 한 것도 아니며,
친구와 나누는 것이 된다
거지가 친구가 될 때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존재가 된다
진정한 실체는 행위가 아닌 존재,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선善을 행할 수 있다
그러면 붓다를
완전히 놓치게 된다
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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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조주가 말했다.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혜개가 말했다.
/“조주가 답한 곳에서 절실히 보는 바가 있다면/
/앞에는 석가도 없고, 뒤에는 미륵도 없을 것이다.”/
송頌하여 가로되,
말은 일을 실어 펴지 못하고
또 말은 기틀을 던지지 못한다.(言無展事, 語不投機)
말을 받드는 자는 잃고,
구절에 걸리는 자는 헤맨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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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 잣나무(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에 대한
살림살이 내어 드리겠다고 약속해놓고 글을 올리고 난 뒤 이틀 골골거렸습니다.
밤에도 푹푹 찌던 열대야가 지나가는 비 내린 후,
이틀 열대야는 없었습니다.
새벽에 서늘했습니다.
몸이 부실하면 온도(계절) 변화를 잘 따라가지 못해 탈이 나게 됩니다.
약속을 어겼습니다. 몸이 속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식은 뚜렷해
몸은 가랑 가르랑거렸지만,
생생한 부처의 모습이 봄이었음을 압니다.
퇴고해서 부처에 대한 살림살이 댓글난에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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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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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잣나무(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는 선가禪家에서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화두話頭입니다.
유명한 선문답禪問答입니다.
선가에서 사용하는 화두라는 말은 세간법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말머리라는 뜻이 아니라
깨쳐야 바르게 알 수 있는 공안公案입니다.
이러한 선문답을 가리켜 먼저 깨친 선사禪師(선각先覺)가 공부인이 바르게 깨쳤는가를
점검하는 조사관祖師關(조사선祖師禪)이라 합니다.
조사관이란 조사(선각)들이 부처에 대해 선문禪問으로 질문하는 것을 반드시 뚫어야 하는 관문關門입니다.
언어와 문자, 이론과 지식을 초월한 조사들의 관문입니다.
바르게 깨치지 않으면 조사관(모든 선문답)을 절대 뚫을 수 없습니다.
부처를 직접 만나 여래선如來禪과 계합하게 되면 모든 조사관(선문답)은 저절로 뚫립니다.
여래선을 뚫지 못하면 말이 서로 다른, 또 다른 조사관(선문답)은 뚫을 수 없습니다.
선문답禪問答이라는 말은 부처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선문답에 사용된 선禪은 보일 시示에 홑 단單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고요히 홀로 있는 것을 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고요히 홀로 있는 것을 보면서 질문하고 답하라/입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고, 고요히(침묵으로) 홀로 있는 것이 부처입니다.
모든 인간의 본래 성품입니다.
뜰 앞의 잣나무는
/무문관37/, /종용록47/, /선문염송421/,/ 조주록12/, /전등록/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조주백수趙州栢樹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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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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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 잣나무/라고 한 것은
거기에는 /내가/, /나라고 하는 상相(생각, 관념, 느낌)/이 '없습니다.'
이 =====> /// = 없다 = /// <=====입니다.
'없다(무無)'는 선가에서 같은 뜻으로
부처의 본체本體 '텅 빈 공空'으로 사용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空(무無)이지만
잣나무가 모양으로 설 수 있도록 해주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모든 상相은 '텅 빈 공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모양과 상相으로 설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이지만 진공묘유眞空妙有로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공입니다.
공 속에 잣나무의 생로병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하고 물을 때
다른 선사禪師(선각先覺)들은 한 마디로 그냥 /없다(무無)/라고 딱 잘라 내려칠 때도 있습니다.
주장자拄杖子가 있다면 주장자를 번쩍 들 때도 있습니다.
다른 무엇이 앞에 있다면 다른 무엇을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처의 작용을 들어 선문답을 할 때도 있습니다.
부처에 대해 물으면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가리켜서 답하기도 합니다.
선각先覺이 없다고 할 때 없다를 그냥 일반적인 언어, 없다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뜻은 부처의 본체本體를 가리키고 있는 공입니다.
이러한 말에 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에 속아 넘어지고 자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주趙州가 학인學人들과 선승禪僧들을 친견했을 때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한 말과 똑같은 뜻입니다/
언어만 달리하여 부처에 대한 법륜法輪을 자유자재로 굴린 것입니다.
조주는 아주 교활한 늙은이였습니다.(선문답을 아주 잘 사용하는 선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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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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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화두話頭)이란 모양(상相) 있는 것을 통하여
모양과 움직임이 전혀 없는 부처의 본체, 공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선문답은 부처에 대한 질문이며, 부처에 대한 대답입니다.
말은 모두 상相(생각, 관념, 느낌)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상相(생각, 관념, 느낌)에는 분별하고 헤아리며
모양에 머무르고 모양에 매여서,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모양을 가지고 해명하고 해결하려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相도 없는 실존하는 부처를 상相을 가진 말로 나타내서
진짜(진짜 깨친 자)와 가짜(가짜로 깨친 자)를 가려내기 위해(인가印可를 하기 위해)
언어에 부처에 대한 뜻을 새겨, 서너 겹 감싼 선문답(조사관祖師關)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짜들이 판을 치며 부처의 영혼을 팔아 돈을 갈취하는
사기 행각을 벌이기 때문에 선문답(조사관)이 생겨난 것입니다.
말로 하는 설명(선문답, 조사관)은 모두 방편일 뿐입니다
방편(선문답, 조사관)을 화두로 삼아 부처를 만나 계합하는 것은 '공부인의 몫'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한 발심發心입니다.
/자성自性을 확철確徹하게 깨쳐 불佛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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