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詩엔 공空의 때時가 무한정 **( 댓글란에는 수행일기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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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시禪詩엔 공空의 때時가 무한정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죽으라 공부하여 때時를 불렸다
이때는 바야흐로 시절인연時節因緣,
글을 쓴다는 표현이 일반적 언어지만
나는 선열禪悅 향香 가득한
선시禪詩(오도송悟道頌)를 즐기기에 글을 민다
밀다 보면 공부하려고 달려드는
서슬 퍼런 눈 푸른 납자인연衲子因緣 만나겠지
살아서 만나야 할 사람 반드시 만나겠지
두타행頭陀行을 하며
불 하나 없이 공부하느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동상에 걸렸다
동상이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핏길를 막았다
이것이 굳는 어혈瘀血로 변했다
마비가 오는 중풍(마목痲木)을 발병發病케 했다
바늘 수 백 개 가 찔러 대는 고통이 있었지만
공부하다 생긴 병이므로 영광스럽다
값지다
공부의 재료가 된
병에서 또 배웠다
병이 깊지 않았다면
화두話頭를 그리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화두에 더 미친 듯 달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 획 한 획 그리고, 그리고, 그리다
보리菩提 여문 시절을 만났다
병에는 공空을 달여 마시며 약으로 쓰고,
보리菩提로 때時를 민 묵은 업業은
거품 없는 부처의 본체本體, 공으로 가샌다
직접적인 체험만이 훈습薰習을 보리菩提로 가샐 수 있다
깨침을 제단祭壇으로(바탕으로) 하는 선시를
모든 부처 앞(前)에 올린다
가장 수승殊勝한 공덕장功德藏
.)
.)
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
2005년도 동대구역에서 팔공산까지 걸어갈 때 수행기입니다.
걸어가면 굉장히 먼 길,
며칠 굶어 배고픈 나에게는 더 멀다.
6시간에서 7시간이 소요된다.
밤 9시 넘어 걷기 시작하여 새벽 3시 40분에 당도했다.
걸어가면서 화두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또박또박 그렸다.
두타행은 안전한 도피처며, 한가한 길이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내 업보는 용광로의 끓어오르는
쇳물이 되어 전신全身에 부어졌다.
이 쇳물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눈물 많은 아내였다.
그리고 평생 아버지 권위에 눌려 살아온 어머니였고,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유년기의 습濕부터 지금까지
나의 업業 모조리였다.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신열의 고통을 느꼈다.
굶주려 땅이 일렁일렁하는, 원양어선을 타던 뱃사람이
육지에 첫발을 디디면 반드시 하는 육지 멀리를 하였다.
이 와중에도 속세의 유혹은 머릿속으로부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텐트 하나 달랑 쳐 놓은 곳,
그곳도 집이라고 찾아가는데
그동안 지었던 업은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며
산꼭대기까지 따라왔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
''''''''''''''''''..******************
수행일기 올려드립니다.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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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경영했던 사업이 망하고,
자살에 견줄만한 충격이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산속으로 숨어드는 것 말고는 갈 데가 없다.
야반도주였다.
아양교 다리 밑에서 자며 이틀간 배회했다.
팔공산으로 완전 몸을 숨기기 전에는
사업할 때 가끔 차를 몰고 가 주차장에 세워놓고
저수지 한두 바퀴를 돌며 산책 다니던 봉무공원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여차하면 목을 매달 동아줄과 몸 하나에 딱 하나 들고 나온 텐트를 가지고
팔공산으로 들어가 팔공산에 몸을 맡겼다. 팔공산에 의지했다.
귀 떨어진 동전 한 닢 없다
굶주림부터 배워야 하는 공부가 시작됐다.
겨울이면 주워온 목장갑 4켤레, 양말 3켤레 껴 신고,
7년간 시신을 거두어주는 사람이 없어 유골만 남은 그 시신이 덮고 있던,
폐가의 이불 3채를 가져와 덮었다.
빵모자도 눌러쓰고 전투화도 신었다.
화두를 우벼지고 잠이 들지 않아야 얼어 죽지 않고 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온도는 도심보다 5도에서 6도 더 내려갔다.
체감온도는 8도에서 15도 차이가 난다.
100 고지마다 산속 온도는 숲의 냉기가 더해져 1도씩 내려간다.
마음과 체감온도는 더 내려가 있었다.
몸이 스스로 부르르 떨며 뼛속까지 바람이 들어왔다. 찡했다, 저릿저릿했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보다 못한, 나 자신으로부터도 외면당하며 초라한 처지가 된 지금,
매 순간순간 죽음 앞에 서서 괴로워하며 이렇게 울부짖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울부짖는 이놈 도대체 누구인가?
산속이며 도랑 옆이라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냉기는 육신을 잡아먹고 남을 기세다.
여름은 짧았다.
한 이틀 가을인가 싶으면 바로 겨울이다.
산속 겨울은 시월 초부터 시작되어 빨랐다.
불 하나 없이 텐트 하나에 의지한 산속, 수은주는 6월 초까지 낮게 떨어져 올라옴이 늦다.
지독한 가뭄을 만난 듯 손과 발은 갈라지고 텄다.
입술과 손바닥은 파랗게 변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면서 가려웠다.
오돌오돌 떨었다.
추위를 이기기에 부족한 것은 마을로 내려가 품을 팔아 더했다.
훅지를 어깨에 걸쳐 메고 소가 되어 밭을 갈며, 화두는 절대 놓치지 않으려 정신을 다 했다.
얻어오는 것은 쌀 한 되와 안 먹듯 아껴 먹으면 삼사일 먹을 수 있는 먹거리다.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쌀은 물에 불려 생식을 했다.
쌀을 물에 불리지 않고 그냥 생식하면 치아가 약하든, 약하지 않든 이빨은 무너진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이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은 탈이 났다.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워 일주일씩 굶어야 할 때는 도랑을 누비며 덜 상한 음식을 찾았다.
떠내려가는 배춧잎, 파잎, 무잎, 양파껍질 등을 주워 먹었다.
필요로 하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 있었다.
아카시아 잎으로 손이 갔다. 도토리 나뭇잎을 따서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퍼석했다, 씹으면 종이다. 밬스로 된 마분지다. 솔잎도 씹었다. 송구도 갉았다.
잘 넘어가지 않았다. 피티병에 담아 떠놓은 개울물과 함께 삼켰다.
소금기의 짠 눈물이 간이 되어 같이 넘어갔다
근근이 목숨을 부지한 채 급속도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불을 붙였다. 불이 붙었다. 불이 번졌다.
간화선看話禪에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화두話頭가 자발로 발현되는 경지, 득력得力도 맛보았다
울부짖는 나,
법당으로 뛰어가 자비도량참법을 10편(10번) 하며 9권과 10권에서
법당이 떠나가라 대성통곡하는 나,
공양간 밥도 얻어먹고, 참회하기 위해 하루 2번 동봉 갓바위에 올라 삼천 배를 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형태를 하고 있는,
서봉 삼성암지三省庵址 마애약사여래입상으로도 달려갔다.
두타행頭陀行에서 7만 배를 넘으면서 무릎에 고름이 찼다. 쩔룩거렸다.
갓바위에서 내려와 변기 앞에 서서 볼일 보던 다리가 수캐 좆 떨듯이 그냥 후들후들 떨렸다.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막 흔들렸다, 제어가 되지 않았다.
오줌을 튀기며 바닥에 사정없이 막 갈기며 조준이 안 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놈 도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소리 소문을 듣고 알았는지,
생식과 걸식으로 두타행을 하고 있던 2년 차에, 수행 지로 팔십 여섯의 비구니 스님이 찾아왔다.
흰 봉투 안에 황금빛 속지 접힌 곳에 검은 글씨가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곱게 싸서 내게 건네준, 처음 받아 든 법명法名은 덕산德山이다.
이 절 저 절 다니며 얻어먹고, 마을에 품을 팔아 목숨을 연명延命하고 있었기에
점심 한 끼는 걷어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며 노老 비구니는 부인사로 나를 땡겼다.
공부됨을 알고 노 비구니(부인사 회주의 속가 인연에서는 친언니였음)는 연락해 놓을 테니
지금 생존해 계신, 제 13대 조계종 종정(속가로 견주면 대통령)에 추대된,
대선지식 진제 대선사를 찾아가라며
부인사 주지(지금은 회주가 되었다)와 총무원장이 함께 몇 번에 걸쳐 나를 몰아붙이며 종용했다.
마음이 거기가 있지 않은 나에게 따로 찬밥 한 덩이 챙겨주던 것을 노 비구니는 당장에 끊었다.
어떤 트집이든 만들어 트집을 잡으며 따라오라고 먹는 것으로 다그치며 돌려세우려 했다.
찬밥 한 덩이 얻어오면 얼지 않게 하기 위해 비닐에 싸 품에 품었다.
이것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빌어먹지 않았다.
밥 한술 그냥 얻어오지 않았다.
알아서 기었다.
5시 30분이면 도량을 쓸고 대웅전을 다듬고, 지장전을 청소하며, 산신각을 털어냈다.
폐문 시작되는 5시 30분에 대웅전을 다듬고, 지장전을 청소하며, 산신각을 털어냈다.
시집살이, 시집살이, 아서라. 말 마라.
시어머니 시집살이, 며느리 시집살이,
올케 시집살이, 남편 시집살이, 자식 시집살이,,,,,,,,,,,,
땡전 한 푼 없이 이 절, 저 절 얻어먹고 빌어먹은 절 시집살이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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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출가에 목적을 두지 않았고,
나에 대한 의문이 절박하게 발심이 되지 않아 신심이 부족하다는 큰 이유가 내게 있었다.
그래서 해인사와 진제 대선사를 찾아가지 못하겠다고
대신 내 의중을 전해주기를 바라며 청원(비구니) 스님께 글로 적어 드렸다.
나중에 청원(비구니)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인사 주지와 진제 대선사는 막역莫逆한 사이였다.
부인사 주지(지금의 회주가 되기 전에는 주지였음)의 추천서 한 장이면
품계를 바로 받고 방부를 들일 수 있다.
밖에서 칼바람과 자며 떨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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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대 대종정(조계종의 제일 큰 어른, 조계종 제일 큰 스승)을 역임하고,
현재 제14대 대종정으로 계신 진제 대선사 찾아가라 해도 안 되고,
조계총림 해인사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으려는 이러한 모습을 안 보는 듯 보고 있던,
사시 맞이를 석 달 동안 같이 했던 청원 스님은,
사시 맞이는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몸을 빌려야 갈 수 있는 부처의 길이기에
내겐 하루 한 끼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간곡懇曲한 예배(사시 맞이)다.
먹을 것을 노 비구니와 다른 스님 몰래 챙겨주며 크나큰 힘이 되어준 청원은
/덕산께서는 형식과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나 봅니다./ 하였다.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모양과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형식과 틀이 사람을 가두고,
깨침을 힘들고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웅전 앞뜰에 돋아난 잡초를 함께 제거하며
한마디 말도 하지 않던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 청원 스님, 세월이 오래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 때는 공부 많이 하셔서
/ 장(조실이나 선원장, 방장이 되란 뜻,
/ 조실과 방장은 최소한 한 소식은 해야 한다.) 정도는 되어 계십시오./라고 했다.
/ 스님께서는 출가수행자라 저를 찾기 어려운 조건이 될 수 있지만,
/ 어디에 가 있던 시절이 되면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겼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4년간 입을 굳게 걸어 잠근, 기필코 밝히고 말겠다.
목숨도 가져가라!!
죽어도 화두만 들 테니, 화두만 철저히 챙길 테니,
이 처절한 묵언默言 수행修行으로 말미암아
깨치고도 처음엔 말문이 터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혼났다.
(2008년도에 연인사 주지, 출가사문出家沙門 도창道窓으로부터 탄무는 확철대오 한 인가印可를 받았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체한 듯 속에서 뱅뱅 돌았다.
혹, 말문이 열리면 버벅거렸다.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일상적 말이 나오기까지는 다시 2년간 혹독하게 애를 끓였다.(애를 먹었다.)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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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찌 관음觀音을 안 간看하랴 /
문자와 언어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던 절름발이가 부처와 짝이 되었다
업의 응어리를 완전히 소멸한 때는
다보와 석가가 마중 나온 영락瓔珞 봄이었지
저녁이면 밤나무에 그리움,
사무치면 피안의 향초
감로甘露에 집지執贄해
침묵을 먹고 사는
부처 얼굴과 마주한다
미움도 없고
그리움도 없는 텅 빈 자리
너무나 고요한데,
관음觀音을 내 어이 안 간看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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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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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내리는 그리움>--
가랑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생생한 너의 모습이 봄이었음을 안다
일기예보 때문에 비가 오게 되는지
온다던 비는 어김없이 내리고
빗방울이 유리창에 울먹이더니
눈물만 한 크기로 떨어진다
머물지 못할 것들은
커지면 슬픔이 되는지
미처 씻어내지 못한 기억들이
허공에 떠있다
덩달아 주르륵 흘러내린다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것은
물방울이 아니라
견디기를 포기한 그리움
떨어지는 게
꼭 무게 때문만은 아니더라
흐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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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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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 불佛태우리 /
밤하늘 달을 품으려
두 눈 질끈 감아버리듯
밀려서 간다
밀리게 간다
길 밀며 가리라
바람 밀며 가리라
밀리든 밀든 가리라
가게끔 하리라
다 타버린 까만 밥 한 덩이
못 얻어먹을지언정
이 몸 내면에 실존하는
커다란 한 사람,
붓다 벗 삼아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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