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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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적적한 정적을 호흡하고 있다
한 뼘 남은 저녁이 흔들거리자
전등의 폭력이 싫은 나는
촛불의 희미함에 의지하여 수평선 자락을 눈에 담는다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미지근하면서도 위압적인 파도가 되어 기억을 뒤덮는다
늙어갈수록 혼잣말이 늘어난다기에 입술을 꾹 닫는다
아는 것만을 말하도록 허용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로
기억의 혼란스러움을 채집할 시간, 카메라는 공모의 미소를 지었다
삶의 반복을 불허하는 찰라의 친밀성을 천박한 모략으로 강탈하려 까만 렌즈 캡을 연다
뷰 파인더 속의 사물들은 언제나 제멋대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억마저 배반하려 든다
몇 마리 갈매기 구름이 걸리고
명암이 또렷한 것이 엽서 사진으로 제격일 것 같아
<찰칵>
방아쇠 손가락을 당겼다
침묵은 길게 흘렀고
더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저 엷은 책을 뒤적거린다
바다는 더 이상 낭만의 겉치레를 유지할 수 없다
무심히 굵은 줄기 아래로 둥글게 무게가 실린 목덜미가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의 경계선 가장자리를 거닐고
거대한 해바라기는 노오란 애도에 휩싸여 있다
그 아래 평범하게 작은 꽃무더기는 거대한 비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예전에 그녀처럼 연분홍빛 흰옷을 걸친 채 무기력하게 나를 바라본다
그루터기만 남은 바다
어촌 민박집, 어부의 넓다랗고 커다란 등이 귀뚜라미 파도의 비명소리를 토닥이며
바다의 정적을 호흡한다
곧 짙어지는 어둠의 균열과 함께 하품이 열리고
한 장 어둠은 안뜰을 가로질러 가볍게 날아든다
나는 <안녕하세요> 한 마디
창턱 아래 어둠속에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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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별똥별님의 댓글

시 감상 잘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