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 이제 그만 제발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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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 이제 그만 제발 죽어라
출구가 없는 무력감,
혹은 검은 꽃이 가득한 인생의 정원에서
볼 수 없는 눈과, 말할 수 없는 입과,
느낄 수 없는 마음은
우울한 바다 위에 단단한 줄로 그악스레 묶인
서글픈 부표(浮漂)를 닮았다
육신으로부터 너무 동 떨어진 어떤 정신의 배경에는
언제나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삶이,
맑고 깨끗한 무감각을 도둑처럼 꿈꾸고 있다
한 생각을 끌어가자면, 모든 물질적인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영혼에 있어 얼마나 달콤한 희열인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폐허는 얼마나 성(聖)스러운 장소인가
대상(對象)이 없는 사랑은 그 자체로 얼마나 정갈하고 아름다운가
욕망이 입을 다문 자리에
짧았던 순수함의 호소가 자리한다는 것은
얼마나 충만한 일인가
세상의 덧없음을 탓하는 것보다, 무망(無望)한 자기 자신을
더 일찍 발견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죽음에서 떨어져 나오는 빛없는 하늘 아래,
검은 망또에 감싸여 떠나간 시(詩)의 장소에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지우고 싶다
아, 가득 차오르는 깊은 밤 속에서
누군가 지나가며, 제발
이런 나를 보지 않기를.
- 안희선
<사족 Note>
사실, 시보다두 정작 죽어야 할 물건은 따로 있겠다
눈 한개 먼채로 운전을 하고 다니는데,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보행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하는데..
Registry Office가 알면 큰 일이다 (알면, 면허취소 감이다)
며칠 전, 운전 중에 앞차의 뒷창에
" I'm a sunday driver , so all sense of responsibility is yours" 란 표식에
문득, 웃음을.. "그래, 니 말이 맞어" 하면서 말이다
답답하고 무책임한 졸시도 그 모두 내 탓이다
왠 애먼 시보고 죽으라 하는가
참, 낯짝도 두껍다
댓글목록
풀하우스님의 댓글

시여,이제 그만 제발 죽어라/
라고 글을 올리면 또 시가 됩니다요..ㅎㅎ
시인이 시를 죽이지 않으면 부처가 안됩니다요..
생각이 살아서 참샘에 물나오듯이 나옵니다요
시인들은 부처 되기를 포기해야합니다..
생각을 끊어야 부처가 되는데..
부처는 고요와 침묵을 먹고 산답니다..
안시인님,잘 보고 갑니다 항상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글 축에도 못끼는, 넋두리에 불과한 글인데..
귀한 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안하시고 건필하소서
풀하우스 김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