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5] 커피향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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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 목화
“정자 할마시
안 나왔네? 그럼 오늘은 내가 타야겠네”
입맛 다신
정숙이 할매
하나씩 따
넣은 커피믹스 종이컵마다
양은 주전자
끓인 물로 반 잔씩 채워 돌린다
씁쓰름한
삶들이 슬금슬금 둘러앉고
조금씩, 한 모금씩에
쉰내 섞여나던
경로당이 어느덧
꽃 진 자리 영근 솜같이 하얀 의치랑
듬성 뽑혀도 악萼같이 남은 빈 이랑
모두 활짝 벙글어
턱 빠진
웃음 밭이다
한 시절
고되게
씨앗고 솜타고
고치말고 물레 돌리고 베뽑고 베날고 베메고 베짜기에 한 길로만
순순히 돌고 돌아온 타래들이 모두
파고를 건너온
화독내를 빌미 삼아
쑤시고 아렸던
통증을 재우고 다독이고 있다
고급 생두를
로스팅하고 그라인딩하고 천연필터에 드리핑해서 마시는 고상한 멋을
남은 생
동안에는 즐길 수 없는 노구들
가미 첨가물이 든 하급 카페인에 기대어 이젠
많이도 신물
났던 나날들을 달달히 풀어내고 있다
모두를 따뜻이
보듬어주고팠던
모두에게
널리 기쁨을 주고팠던
모두의 한
시절
마음에 고운
씨앗을 품었던 그 애착처럼
솜처럼 부푼
안부도 못내 그리운 목화들이 뿜는
아무나 맡을
수 없는 보송보송한 향들이 이미
안팎으로
배인지는 오래다
“내 잔도
나와요?”
살포시 문
열고 들어선 정자 할매, 며느리가 사준 보얀 무명저고리가
밉상스럽지는
않는
댓글목록
한드기님의 댓글

남미 커피(그것도 시장가격을 좌우지하는 것은 일본이라지만)에 많이 길들여진 우리는 정작, 커피의 맛과 문화도 편향되게 즐기는지도
우리에게 문익점의 목화씨 正史처럼 유럽 커피 보급의 엄연한 사료적 진실은 간략히 아래와 같이 “모두에게 널리 기쁨을 주고팠던“, 같은 마음을 가졌던 씨도둑질의 결과라니 참, 묘한 일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
정확한 연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1600년대 들어 커피는 거의 1000년 동안 갇혀 있던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난다. 그 주역은 17세기 이슬람 학자이자 수피로 추앙받는 인도의 바바부단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을 거쳐 귀국하면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 왔다. 바바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 심었다. 그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됐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몬순 말라바 커피는 유럽으로 싣고 가려던 생두를…(중략)…그리하여 탄생된 것이다.
.
김태운.님의 댓글

목화솜 의치가 모카향 커피로 비치는 시향에 잠시 머뭇거립니다만
저도 저들처럼 잔치커피 믹스커피를 좋아하지요...
목화의 내력과 커피내력을 믹서처럼 타서 읽어본 덧글, 역시
감사합니다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더러 접하면서도 잔치커피란 말이 새롭네요.
여기서는 한번도 접해보지 못해서 그리워서 그런가 봅니다.
작년에 한인회 바자회 때도 취지상(?) 판매되던 걸 먹어는 봤지요.
경로당 위문 한번도 안 해봤으며, 어머님 말씀만 듣고 써본 글이라
쑥스합니다만, 격려에
오늘도 머쓱합니다.
고맙습니다.
102889심월님의 댓글

원두 가득찬 커피잔에서 잔잔한 할마씨들의 역사를 꺼냈네요.
시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허구는 공허하게 만들지요.
생활의 때가 묻어있는 시들이 감동을 주는 건 사실이구요.
많이 알아야 시도 써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쓰니까 일기밖에는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넋두리합니다. 왜냐고요? 그냥입니다. 머물다 갑니다. 건안하십시요.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전 심월 대시인님의 시가 아주 좋아요.
허구 다 쥐어짜낸 엑기스 거든요.
늘 지식이 부족함을 탓합니다. 사실이구요.
인도에 살다보니, 몇 년 전에 여기 아라비카종을 한국에 수출해볼까(돈도 빽도 없이, 겁없이)
좀 뛰어다니다가 알게 된 편협된 지식쪼가리 좀 있는게 전붑니다.
방문해주신 마음을
따수한 봉지커피 같이 음미합니다.
감사합니다.
잡초인님의 댓글

저도 한잔 있나요?
저는 조금 밉상입니다만
한드기 시인님의 커피맛은 구수합니다
부록으로 올려놓으신 커피의 역사공부도
잘 하고 갑니다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아!
초인처럼 탄탄하고 강인한 싯구들을 풀어내시는 능력에
시샘이 좀 나니 곱상은 아니시네요.
초인님이 밉상이시면 전 진상입니다. ㅎ
시의 힘처럼 강건하시길요.
고맙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

제가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커피 상품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마시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안 먹는 편입니다.
술보다는 커피를 커피보다는 다양한 차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람이 어디 판박이도 아니고 선택의 자유가 더 중요하겠죠.
어르신들의 삶이 모인 회당에서 김이 오르는 커피, 그윽한 향을 그대로 담아내셨군요.
시인의 정서가 온돌처럼 따뜻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하루 한 두잔 정돕니다.
그것도 일과 관련,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요.
커피 공부 한답시고 한 때 좀 홀짝이던 때도 있었지만요.
약간 그것도 아주 약간
돈 벌자고 살다가 알게 된 정보가 좀 있어서 이리저리 버무린 거에 불과합니다.
목화만 해도 어린 시절 어머니 할머니 연배되시는 어른들로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에 불과하고요.
관찰과 경험이 온전히 배여있지 않는 글이
서정성에서 깊이를 떨어뜨리거나 글감을 왜곡하거나 하기에
이런 글을 쓰고도 그래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왠지 겸연쩍고 조심스럽습니다.
해풍, 남풍을 온전히 맞고서
그 날 것을 그대로 풀어내시는 동피랑님의 시야말로
늘 따뜻한 아랫목입니다.
감사합니다.
활연님의 댓글

따뜻한 서정이 느껴집니다. 커피를 향토색과 버무려 그 맛이
묘연해지는 듯. 이국에 살아도 내면에는 많은 향수가 향기가 살아있는 듯 느껴지네요.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모든 분들이 따뜻하게 받아주시니, 송구 그 자쳅니다. ㅎ
오늘도 사실, 늘상이듯 약속 어기는 놈 있었고, 차도 막히고 그러다가
직원은 말귀 못 알아듣기에, 서툰 영어하던 중 말에 반사적으로 상스런 한국말이 입에서 자꾸 튀어나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정전이고...그래 혼자 짜증내다가...지금 여기 시간으로 새벽에 깨어나 컴터 켜고...이제 ㅋ
사는 게 뭐 다 그렇죠. ㅎ
글이나 시라는 게
제 개인적으로는 뭐 수양이다 이런 맘을 먹다보니
다듬어질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구요...
전공과 그동안 살아온 일이 이공 계통이라 늘 인문학 상식이 신문 기사 쪼가리에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차안에 책만 늘 끼고다닙니다.
늘 주시는 덕담과 안부
감사히 받습니다.
활연님도
늘 좋은 일만 가득 그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저희 어머니는 커피를 밥처럼 드신답니다
한 잔에 믹스 커피 두 개
그거 드시고 나면 배 부르시다고^^
향기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 냄새가 나는 구수한 커피향이 느껴지는 글 읽습니다
한드기님의 댓글의 댓글

그래도 건강하시다면 뭐 대수겠습니까?
저의 비인간적인 모습 안 드러나는 이 시마을에 자꾸 들릴 수 밖에 없지요. 저는 ㅎ
볼 거 다 본 울 마나는 그래서 절 이제 인간적으로 조타마다 합니다.
누추한 글에 구수하다 하시니
말라바 한 잔에 취하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