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는 개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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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는 개는 눈빛으로
최승화
순천에서 섬진강 휴게소 가는 길
고물 타이어집 개가 나를 향해 짖었다
순하디 순한 개 같았는데 왜?
가까이 가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개가 하종오 시인에게 짖는 것과
나에게 짖는 것은 다르다
하종오 시인은 눈빛이 없고 나는 있기 때문
타이어를 지키라고 있는 개가
나를 향해 짖는 것은 오로지
내 눈빛이 무서워서 그럴 것이다
그런 개들 지금 많다
목줄이 짧아 더 이상은 도망가지 못하고
내가 한 발짝 앞으로 갈 때마다
뒤로 물러서는 다섯 마리 개
가끔 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목이 세도록
신이 있다는 측과 없다는 측에 기대어
무속인처럼
당골래처럼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고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그럼 신은 없나?
아마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개의 생각
헤겔이 그랬다
나는 나다, 라고
내 정신이 신이 될 때 개는 더 이상 나에게 짖지 못한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개를 불렀다
개가 나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짖는 걸까?
아마도 그럴 것 같아서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었다
웃으면서 눈빛을 풀었다
개가 아무 일도 아닌 듯 혀로 내 손등을 핥았다
*하종오 시인의 시 ‘개가 개집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짖었다’를 읽고
댓글목록
최승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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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개집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짖었다
하종오
개가 개집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짖었다
나는 언덕길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개집은 목조주택 앞쪽에 놓여 있었다
개가 저보다 더 큰 사람에게 왜 짖을까
사람들에게 무시당해 억울할 때조차
나는 내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나보다 더 큰 신을 향해 소리치지 못했다
개는 개들에게 무시당해 억울한 걸까
내가 언덕길을 걸어온 이유는
언덕 너머에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아서인데
목조주택 주인은 왜 집을 나갔을까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게 억울하여
자신의 집 지붕 위에 올라가
자신보다 더 큰 신을 향해 소리쳐 보다가
응답이 없어 다른 곳을 찾아갔을까
목조주택은 개집 뒤쪽에 세워져 있었다
개는 주인에게 무시당해 억울한 걸까
목줄에 묶여 있어 뛰쳐나가지 못하는 개에게
나는 손 흔들어 주고 언덕길을 내처 내려갔다
개가 개집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계속 짖었다
—《포지션》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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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1954년 의성 출생. 1975년《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국경 없는 공장』『아시아계 한국인들』『입국자들』『제국(諸國) 또는 帝國』『남북상징어사전』『신북한학』『남북주민보고서』『세계의 시간』『신강화학파』『초저녁』『국경 없는 농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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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님의 댓글

개를 제압하는 눈빛을 가진 사람.
강렬함을 넘어 차라리 순하디순한 저녁 같은…….
별들이야기님의 댓글

시인님은 역시네요
감상 잘하고 갑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

一切唯心造
다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놉니다
헤겔도 마찬가지..ㅋㅋ
글 참 조네요..ㅎㅎ
하고 싶은 말 있는 데 참는다
목구멍까지 올라노는 데...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