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없는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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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사의 언어를 통역하던 바람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늙은 나비가 넘어버린 국경을 그리느라
오늘도 애벌레는 수 십 장의 나뭇잎에 뱃속의 허기를 죄다 토했다.
그런 모국어를 가진 적 없어
백주에 혀가 꼬부라져서
딱 한 잔만 더! 하며 점점 외국인이 되어가는데
수 십 억 광년 너머 별들의 말을 통역하겠다며
불빛으로 기운 누더기를 걸치고 어둠이 나를 찾는다
장님에게만 들린다는,
시공과 시공을 잇는 기나긴 떨림을 듣기 위해
제 눈을 찔렀다고 했다.
귓속말을 좋아하는 신들이
입 무거운 돌들에게만 속삭이는 말을 듣기 위해
석녀가 되어가는 여사제들이
아무도 지키지 못할 계명을 새겨 듣느라
징을 맞으며 흘리는 돌가루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온 세상 호수와 강물에서 퉁퉁 불어가는 달의 면발과
온 세상 호수와 강물 위에서 미디움으로 익어가는
붉은 해의 안심을 화해 시키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같은 나라 사람에게 같은 나라 말을 통역하는 통역사가
긴 하품을 하면 산 입에서 살찐 거미가 기어나와
벽과 벽 사이에 만든 무지개빛 현수교가
햇살의 무게에 출렁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입안 가득 꿀을 머금은 꽃의 발성 기관을 가진 적 없어
다리를 건들거리며 껌을 씹던 불온이 넘는 국경을 지키며
입안 가득 침을 머금은 나의 모국어를 뱉으면
방광에 가득찬 부끄러움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며
한 쪽 다리를 치켜든 개들이 지린내나는 지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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