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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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오후
이영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병실의 오후
실눈을 뜨니 햇살이 힘겹게 뜯어지며
창밖 아스라이 비출 뿐
틀에 납작해진 산
하늘 찌르던 당당함을 접은 채 갇혀있다
손에 잡힐 듯 뿌옇게 잠겨오는 들녘
푸른 발자국들의 날이 어둡게 가라앉는다
안개비 스미어 커진 슬픈 빗소리
흰 슬픔의 뿌리
복받쳐 물결에 잠긴다
구부러져 끌고 잡아당겨 무릎을 괴며 계단을 오르고
아직 할 일을 접고 흙 저벅한 하루 밥상에 허리 펴는 허기져 누추한 할미꽃
처마 끝 낙수 바늘귀에 실을 적시면 창호지에 눈물 적시는 빗발
무딘 손 찔려 흐느끼는 불빛, 십여 페이지 봄날 어여삐 마주하였던 봄빛
어루만져 끝 페이지 병상으로 돌아가 깊이 또 빠져드는 수십 길 수심
키다리 그림자 어른거리던 때쯤 느닷없이 닥친 비운의 시작
헤어나려 발버둥 쳐도 역부족인 일 구부러진 허리 위 덮친 구부러진 그 일
울음에 목이 쉬어도 끝이 없고
끌린 발자국의 혀뿌리 늘어져
푸른 초원 묘연한 날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아버릴 수 없는 실낱같이
늘어진 채 빗속에서 푸른
능수의 오후
* 젊은 아들의 병상을 지키는 노모을 보며
댓글목록
정유찬님의 댓글

젊은 아들의 병상을 지키는
노모의 마음이 물결처럼 전해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이영균 시인님..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네! 감사합니다. 정유찬 시인님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시길 바라면서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