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해킹
--------------------------------------------------------------------
시앙보르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길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빠져나온 숨소리는 다시 복귀하지 않습니다
내쉬는 숨에 당신이 빠져나갑니다
독법은 숨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단어와 구두점이 당신을 몰래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가의 어두운 골목에서 코트깃을 세운 표지에
유혹 당하지 마십시오
빨간 손톱이 당신의 살과 잠을 할퀼테니까요
양가죽을 뒤집어쓴 기표와 기의를 조심하세요
차라리 내일의 일당을 따지는 편이 좋습니다
문장의 현란과 여백의 자유에 취하지 마십시오
귀가 때 고등어 한손을 들고가야만
가정의 소박한 자유가 보장됩니다
도를 깨우친 자는 도를 떠들지 않고,
도를 모르는 자 또한 떠들지 않는다더군요
어중이떠중이 나 같은 자가 딱 걸립니다
몰래 훔친 책으로 출입구를 나갔거든요
그렇습니다
책이 게쉬타포라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책장을 넘길 때는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읽기 전, 상대방에게 먼저 읽히지 마십시오
시든 소설이든 산문이든 논문이든 그건 중요합니다
당신이 먼저 당하고나면
당신은 이미 당신이 아니어서
그럴 때는 조용히 책장을 닫고 서가에 꽂은 후
버스를 타지 마시고 집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걷다보면 집을 나간 숨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기억하세요
행복마트에 들러 부탁 받은 걸 잊지 마세요
마요네즈와 올리브유 그리고 카레도 있구요
방울토마토와 딸기도 있답니다
아, 퐁퐁이를 빠뜨리면 아내가 추궁할 수도 있겠네요
상표들이 당신을 먼저 읽지 못하게 주의하세요
아 저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 주세요
당신의 눈길을 읽지 않았습니다, 결코
댓글목록
책벌레09님의 댓글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길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빠져나온 숨소리는 다시 복귀하지 않습니다
내쉬는 숨에 당신이 빠져나갑니다
독법은 숨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해킹' 할까 봐,(? ~^^;) 겁 나서 안 열어봤는데,
제 시에 댓글 달으셔서 답글 주고 갑니다.~ㅎㅎ
제가 우스갯소리가 이렇습니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늘 열정이 넘치는 시인님, 고운 밤 되세요. ^^;
카프카007님의 댓글

기발하면서도 섬뜩한 상상에 놀라면서
여러번 읽게 됩니다
근데 너무 어렵군요!
책 속에 숨어사는 유령이나
화자 안에 있는 가면을 쓴 악마가
경고처럼 들려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우리시대의 문명과 정보화에 대한 비판인지
아리송합니다
제 생각엔 제목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를
하는 거 같아요
어쨌든 풍부한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행복하소서!
맛살이님의 댓글

올리는 글 꼭 찾아가며 읽게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이곳의 시차 때문에 댓글은 못 쓰는 형편입니다
좋은 밤 가지세요.
두무지님의 댓글

기발하고 독특한 시상에
잠시 고개를 숙입니다.
마음에 교훈 같은 글,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에구, 제게 해킹(?) 당하셨군요. 농담입니다. ^^;
복층 이미지로 좀 적어봤습니다.
IT 분야의 해킹 뿐 아니라 매스미디어의 현란한 광고, 매체 등에 자기 주관없이 끌려가는
일부 노마드, 그리고 무턱대고 활자를 좋아하는 저도 포함됩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애플의 모토 "Think different ! " 가 한때 저를 애플빠로 만든 적이 있었지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구에 '해킹' 당했다는, 그래서 상업적으로 제가 털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애플의 모토는 워낙 포괄적이어서 제가 협소하게 해석한 이유도 있겠지요. 뭐 지금도 애플 좋아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스티브잡스보다는 워즈니악과 조너선 아이브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