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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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기술(技術) / 안희선
우리 모두 그 언젠가는,
각자의 묘비 뒤에 쓸쓸히 눕겠지만
겨울을 향해 누워버린 애잔한 가을처럼
하얀 서리 묻은 외로운 낙엽처럼
기억을 모두 털어내고 표류하는 시간처럼
오직 적막한 기다림으로 텅 빈 가슴처럼
마지막 풀잎소리에 기울이는 허황된 귀처럼
모든 건 공허하기에, 입으로 미망(迷妄)의 시를 부르며
나는 서서히 나에게 스스로 부드러운 사망을 권유하는데,
또 다른 낯선 사람이 어느덧 내가 되어
먼 소망의 눈짓으로 미련한 사랑을 한다
몸 안에 숨가쁘게 헐떡이는 예리한 심장
그 뜻을 모르는 나는 아직도,
세상을 모질게 살아내는 삐에로의 숙명(宿命)만 생각한다
아, 죽음보다 창백한 영혼에 못박힌 삶 하나 부여잡고
줄기차게 언제나 내 줄을 끊어버리곤 했던 절망 같은 것,
그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이번엔 기어코 아주 오랜 잠을 잘 준비를 해야겠다
그 누가 제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을,
댓글목록
최승화님의 댓글

써 놓고 안시인님 뒷짐을 보니 여기도 죽음이 있네요.
절망,은 접으시고 희망으로 가득하시길...
안희선님의 댓글

절망은 접고, 희망으로 가득하라구요?
존경하는 시인님마저 그런 어법을 쓰실 줄이야..
(하지만, 그 얼마나 무난한 문법인지요)
" 절망하기 위해 시를 쓴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
절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詩를 쓴다
절망이여
그 허망(虛妄)의 꽃이여
이 차가운 세상에 비나 흠씬 내려라
다시는 꿈꾸지 않게
꿈꾸지 않게...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