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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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오후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봄날은 간다> 中
그 날은 매섭게 눈보라가 치는 겨울이었어요. 노점의 어묵조차 사먹기 힘들어서 주머니를 아껴야 했던 날들, 캄캄한 방안에서 꽁꽁 언 몸을 달래주려 서로의 몸을 쓰다듬을 수 있어 충분히 행복했죠. 그녀가 나에게서 기원을 찾기 시작해요. 허리부터 목까지 손으로 쓸어주면 그녀의 상체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기 시작했어요. 봉긋한 왼쪽 가슴에 귀를 맞대어 봄이 뛰는 소리도 들었죠. 자궁을 찾아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 들어갈 때 그녀는 탄성을 내지르며 머리에 봄꽃 면류관을 쓰고 달리는 기차가 되었어요. 삐걱대며 눈보라가 매섭게 치던 밤 비올라의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 왜 간지럽게 귓가에 퍼부었던 고백들이 눈보라와 함께 잠잠해졌는지, 난 왜 가난하단 이유로 오히려 버려야만 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벚꽃들이 스산하게 바닥에 쓸리던 화창한 오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청했죠. 떨어진 봄꽃잎이 숨구멍에 박혀 끅끅댔어요. 달달한 열꽃의 향기가 흘러나와 내 몸이 아득한 간이 정류장이 되었을 때 지난 겨울에 들었던 비올라의 선율이 불현 듯 떠올랐죠. ‘상실’라는 제목을 가진 독주곡.
댓글목록
동하님의 댓글

항해
송유미
- <강아지 나라> 두 여자가 낑낑거리며 강아지에게 운동화를 신긴다.
지하도에서 만원 세일의 신발을 구경한다.
어릴 적 교회당에서 잃어버린 신발은 늘 섬처럼 내 인생을 떠다녔어요. 난 늘 신발을 아끼느라 맨발이었지요. 잠들 때도 가슴에 품고 잠들었지요. 신지 않고 다락방에 모셔두었다가 내 커버린 발을 집어넣을 수 없었지요. 그 신발을 품고 꿈속을 걸어갔지요. 낙타는 내 신발을 부러워했죠. 난 신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죠. 폴리호 태풍이 불던 날이던가요. 자꾸 진흙탕 속에서 미끄러지는 신발 때문에 내 몸이 블랙홀에 빠져들어갔지요. 신발이 없는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 그때 알게 되었죠. 나는 그래도 잠이 들면 신발 속으로 들어가서 꿈을 꾸죠. 엄마의 자궁같이 따뜻하고 비릿한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면 난 꽃으로 피죠. 나비가 날아오르죠. 모두 모두 나비가 되어 하늘로 떠나고 댓돌 위에 검정고무신들만 남았어요. 이제껏 내가 신은 신발은 몇 척이나 될까요. 종로 앞에서 세종로 앞에서 충무로 앞에서 자꾸만 잃어버린 신발을 신어 봐요. 흩어지는 나뭇잎들은 또 얼마나 많은 바람들이 신다가 버렸는지 셀 수도 없고요.
몸의 감옥을 떠다니는 나뭇잎 한 척.
현상학님의 댓글

쬐금 야합니다. 헤~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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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富會님의 댓글

상실이라는 제목을 가진 독주곡....^^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은 많이 패러디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조를 위해, 글을 만들어 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일 것 입니다.
낙원의 오후.....시제 부터....본문 까지....쭉
잘 끌어가신 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 동하님...
건강하고.....좋은 일 많으시길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무언가에 홀려서 쓰긴 했는데 대조는 구성이 잘 되었는지,
표현은 매끄러운지 잘 모르겠네요. 머릿속에 무언가가 박히면
아무것도 못하고 멍해진답니다.
써놓고도 이걸 내가 왜 썼지? 할 때가 많아요.
어쨌든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부회 쌤.
늘 건강하세요
오영록님의 댓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시제가 참 좋으네요.
전개도 좋구요..~~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