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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리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1건 조회 1,390회 작성일 16-03-16 12:57

본문

 

어느 날 우리가

 

    비가 억수 같다거나 눈이 너무 많이 온다거나 바람이 거세다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헤어지곤 했다 우산을 받으면서도 고맙다, 고맙다, 는 말을 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생소한 이야기로 그간의 사연들을 내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겠다 '시인의 마음엔 경계가 없어 맘속에 무색의 백합들이 수없이 피어나기도 했다' 라고 그녀에게 말해준 다음에 소심한 나는 '백합을 꺾어 내 꽃병에 꽂아 둘 수가 없었다' 라고 일기장을 마감한다 그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만날 때부터 헤어지기로 약속한 것처럼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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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잡초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잡초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느날 우리가 만날때부터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묵직한 무언가가 담겨있을것 같은
현상학 시인님의 노래가 애잔하게 들립니다
모든 시는 지워지고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이경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경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감성 폭발하시는 듯...
아흉 이 폭발과 폭팔, 작열과 작렬은 워찌도 이리 헷갈리는가...
bgm은 초딩, 아니 국민핵교 때 신물나게 듣던 노래네요. ㅎㅎㅎ

예시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예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으잉?

/만날 때부터 헤어지기로 약속한 것처럼 /

그럼 약속 지켜야겠네요. ㅋ.ㅋ. 암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감상 잘 했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현탁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만날 때부터 헤어지기로 약속한 것처럼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마음이었다......
이 문구 하나로 전 압사합니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녹조 /  김복희

바나나 망고 파파야 순서대로 놓으며
그게 우리가 가는 곳이야 중얼거린다 바나나 망고 파파야
그런 과일들을 먹는 동안에는 어떤 슬픔도
없을 것 같고

내 나라의 말로
너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갔다 나도 내가 원하는 곳에 있다
신문을 샀는데

천둥

신문에 쓰여 있는 글자들과 비슷하다 현지인처럼
신문을 겨드랑이에 끼고 천천히 걷는다

외투가 다 해질 때까지 하늘이 끝나지 않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너는 가 주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가서
천둥이 친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로 뒤를 돌아보았고
너는 그냥 놀랐다는 뜻이라고 과일 껍질을 버리며 절벽 같다고도 했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백지의 척후병 / 김복희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
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
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
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
낮이
맨발로 흰색 슬리퍼를 끌면서 지나가고
뱀이 정수리부터 허물을 벗는다
구름은 발가락을 다 잘라냈을 겁니다
전쟁은 전쟁인거죠

그는 무너진 방설림 근처에 하숙하고
우리 집의 겨울을 측량하고 다른 집으로 간다
우리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나누었던가
폭발음이 들렸던가
팔꿈치로 배로 기어가 빙하를 밀고 가는 정수리
허물이 차갑게 빛난다 눈 밑에서 포복하던 생물들이 문을 찧는다
인질들이 일어선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바지 / 김이듬

물건을 떼서 돌아온 네가
자작나무로 만든 책갈피를 꺼내며 러시아 광활한 숲을 이야기 할 때
손님들은 망가뜨리지 않고 나무의 색깔을 고르고 냄새를 맡았다
자고 갈 거라는 사람을 훔쳐보며
난 책을 읽고 있었다​
바닷물에 젖은 적이 있고 실용성이라곤 전혀 없는 아빠는 제작년에 장가가셨다
누가 내 팔을 꼬집었다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신은 여자가 춤추는 대목이었다
살며시 주방 레이스 커튼 뒤 쪽문을 열고 나를 데려갔다
누가 누구를 질투했던 걸까
나는 검은 모래 해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원문과 전혀 다른 번역판의 병적으로 활기찬 구절이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었다
물살은 나에게로 자작자작 뻗쳐왔다
여러 겹의 파도에 싸여 있던 광폭한 물고기가 내게 스며들었다
누가 누구에게 이바지할 수 있었을까
여자와 둘이 살았을 때 매일 밤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다
나의 식구, 동료, 말벗, 엄마라는 역겨운 이름으로 늘 빈약한 저녁식사 후 책 속의 수프 그릇을 핥았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내가
같이 늙어갈 수 없는 네가
서리 내린 자작나무 숲 긴 의자에서 머리를 빗겨주었다
깊숙이 빗을 꽂았다 숲이 사라졌다
방문객들은 정치(定置)한 이바지를 나눠먹고 축배를 제안했을 것이다
넌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나를 책이 있는 방에 가두어놓았다
그러곤 깜빡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는 듯 감격적으로
나를 꺼내 끌어안았다 일러바치지 않을게
최대한 여리게 보이려고 나는 조금 웃었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방의 전개 / 윤종욱

밤새 발밑에는 좁은 사막이 쌓였어요
새벽은 불투명하게 돌아왔고 매일매일 더 늙은 모습으로 우리는 입이 말라 버린 나무
조금씩 빠르게 허물어지는 어둠처럼 우리는 잎이 진 사람
침묵을 정확하게 발음해 보세요
턱 끝까지 숨이 막힐 만큼 우리가 창문이 없는 방이었을 때 내일을 열어 볼 수는 없었어요

우리가 방에서 갈라져 나온 뒤에 우리는 식탁의 높이에 맞춰 앉았어요
모래를 모두 쓸어 낸 몸으로 표백된 셔츠를 입고 찻잔의 깊이와 끓는 물의 부피를 재며 우리는 눈대중으로도 알고 있었어요
어둠이 얕은 곳에서는 언제 눈을 떠야 하는지를 어디에 눈을 둬야 하는지 말이에요
시계는 벽을 등지고 있었는데

시계는 무엇이든 가리키려 하고 우리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요
사막의 발단을 출발하여 가느다란 아가미가 발생하기까지 우리는 진화하는 걸까요
밖은 왜 여전히 어두운 거예요
우리의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 보세요
분주한 아침이 지나고 나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포란의 계절 / 김미나


  흔들리는 집을 짓는 것들은 날개들뿐이다. 새들의 건축법에는
 면적을 재는 기준이 직선에 있다고 나와 있다. 직선은 흔들리는
 골재를 갖고 있다. 문 없는 입, 계단 없는 집, 지붕이 없는 집, 없
 는 게 너무 많아 그 집을 탐하는 것들도 별로 없다.

  미루나무에 빈집 몇 채 얹혀 있다. 층층을 골라 다세대 주택 같
 다. 포란의 계절에만 공중의 집에 전세를 드는 새들, 알들이 아랫
 목처럼 따뜻할 것 같다. 아궁이에선 초록의 연가가 피어 오르고
 어둠을 끌어다 덮으면 아랫목에서 날개가 파닥일 것 같다.

  공중 집을 보면 새들의 작고 뾰족한 부리가 생각난다. 날개에
 붙어 있는 공중의 주소, 셀 수 없는 바람의 잔가지들이 엉켜 있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엔 개의치 않는다. 양 날개에 바람을 차고
 나뭇가지를 나르던 가설의 건축

 쌀쌀한 날씨에 군불처럼 둥지에 앉아 있는 새들.

  불안한 울음이 가득한 포란의 집.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뭇가지
 를 옮겨 다닌다. 직선의 면적에 면적에 둥근 방, 문고리가 없다.
  어제 소란한 공중은 새들의 소유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수들 /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과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마의 딸 / 손유미

장마는 당신
참 예쁜 당신의 이름


내가 낳았을 리 없는 장마의 딸,
너마 오면 예보에도 없던 장마가 시작 돼.
이불이 마르질 않잖니
축축한 불행 위에서 자는 건 이제 지겹구나

흥건한 웅덩이를 보고 질색하는 나의 마미
이 배꼽이 당신과 닮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나

장마는 내 의도가 아니에요

내 말은 듣지도 않는 나의 마미,
변(辨)을 하자면
나는 건조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태생이 질척질척이지만 배꼽은 잊고
쩍쩍 갈라진 틈으로 살고 싶었어요
발밑 사탕처럼

반짝,
밟히다
깨지고
부서져
알룩달룩한 설탕가루로 날아가는

그런 건조함을 매일 상상했습니다

(오늘은 얼굴이 내일은 이름이
나의 마미, 마침내 당신은 처녀로 돌아가는 거에요)

장맛비가 요란한 오늘, 우리
주니어의 역사를 새로 쓸까요?

이십년 전 번개가 내 배로 옮겨 붙던
그날을 기억해요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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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 황성희

  천리동 서울여관. 수배자들의 낯선 얼굴이 촘촘히 박힌 벽. 파란 셀로판지로 별을 만들어 붙인 안내실 창문. 둥글게 닳은 여자. 혼자세요? 갈라진 뒤꿈치로 운동화를 꺾어 신고 안내한 205호. 목욕탕도있어요. 크기가 짝짝이인 검은 슬리퍼. 휴지통 바닥 꾸덕꾸덕 말라붙은 휴지. 털이 엉켜 새까만 하수구. 더올사람진짜없죠? 문짝이 떨어져나간 장식장 위로 텔레비젼. 둥근 여자는 선불을 받자 생긴건이래도잘잠겨요 돌아서 나갔지만. 손잡이는 부서져 있었다. 아득한 그 언젠가처럼.

  전등갓 속 가무스름 갇혀 죽은 날벌레들. 내일을믿은게사실인가요. 벽지의 얼룩은 여전히 나비처럼. 누가먼저손을잡았죠? 옷장의 서랍은 위아래가 서로 어긋난 채. 그때거울속에서무슨소리를봤나요. 나는 분명 현재 속에 있었지만 우린한집에서썩기로했습니다 속삭이던 그는 깜쪽같이 사라졌다. 가방 속에는 온종일 쥐고 다니던 낡은 눈동자 한 쌍. 지겹게 울리는 전화기 속에서는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이불을 들춰 바싹 마른 음모 몇 개를 털어낸다. 창밖으로 두런두런 녹지 못할 밤이 점점 내려 쌓인다. 얼굴 어딘가에서 물기가 번져나온다. 잔인한 설득처럼 시계는 멈추지 않고 나는 나를 조금씩 다른 곳으로 흘러보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나간 시간 속을 뒤지는 것 말고는.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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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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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밀착형 블랙홀 / 황성희

러닝머신 위에서 달린다.
길인 척 하는 길이 제자리를 빙빙 돌며
시시각각 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원점 위에서 달리는 척을 하고 있는데
간은 째깍째깍 지나가고
신기하게도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창문 밖으로 햇살이 흘러넘친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날씨가 참 좋네요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다.

어젯밤 남편은 내 이마에 시계를 던졌다.
영원히 텅 빈 과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당신이 무슨 짓을 한 지 알아요?”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이마에서 흐르는 피에 안도하며

피 흘리는 형식이 증명하는 내용에 안도하며

그래도 비명을 멈추진 않았다.
그 정도의 리액션은 있어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신명나기에
각자의 블랙홀에서 우리 둘
어색하지 않기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척
허공으로 사라지는 남편을
아무렇지도 않게 배웅했다.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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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 때까지만 너의 이야기
일회용 밴드를 떼자 치사한 어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기적인 상처
자세가 좀 바뀌었지만
제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쓸쓸하단 말은 자유롭다는 말로 대신하기에 좋았다
흐흐흐
고무풍선을 불 때도 뭐 우린 놓치는 걸 포함하니까
어디서 다시 만나더라도 네가 날 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 말은 밴드를 붙였다 떼는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
이기적인 밴드
그래도 나는 계속 피할 것이므로
밴드 이후는 비교적 조용했다
우린 불행을 더 잘 믿었고
돌이켜보면 할 말이 많았던 때가, 제일 슬펐던 때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몇 개의 그늘이 저물며 지나가고
어떤 경우라도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물로 꾸덕꾸덕해진 모서리가 몇 차례 피부를 그었던 기억도
피해 갔다
그때마다 밴드가 덮어주었으므로
너는 너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차창으로 온 4월의 눈발처럼
미움도 야위어 가는 날
죽었던 봄이, 일회용 봄이 저기 또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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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기 봄 / 최승화

약속을 했잖아 여보
지키지 못할 어제가 상처처럼 몸을 떠났다
너무해 여보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봄
만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 다시 봄이구나
외롭다고 하거나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었구나
흑흑흑
울음도 거짓이었구나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도 날라가고 없구나 봄
어디서 만나더라도 이제 봄이라고 말해줘
너무해 여보 여기 봄
어쨌건 우리는 행복했다고 말해줘
우린 너무 내일을 걱정했을지도 몰라 봄
돌아보면 너를 만난 내가 잘못히야 봄
아슬하게 피해 가는 계절이 있어서 다행이야 봄
옻나무 긁힌 상처에서 아직 진물이 난다
여보 여기 봄
나는 나를
너를 너를 지키기에도 힘들었나 봐 봄
오래갈 줄알았어 여보 여기 봄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봄
여보 여기 봄
선물이야 꽃
너는 나의 꽃이야 봄
여보 여기 봄

현상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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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는 젖을 물어본 기억이 있다 / 김민철

병아리는 텃밭의 흙을
젖가슴으로 생각한다
흙을 쪼며 부력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둥지에서 부화한 것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공중과 익숙해지는데
병아리는 자꾸만 땅과 친해진다
흙먼지가 좋아서 몸속에
무거운 모래주머니까지 차고 다닐 즈음
병아리는 엄마가 아닌
흙 속에 동굴을 뚫는
벌레와 뿌리를 즐겁게 좇아가고
별과 구름의
위도와 경도보다는
머릿속에 흙 알갱이 지도를
그리며 무럭무럭 큰다
노란 털이 갈색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병아리는 흙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는다
늙은 농부가
밭고랑을 만든 곡괭이질과
쑥쑥 크는 청양고추의 매운 냄새와
햇살을 포근하게 감싸는 검은 거름이
오색 비빔밥처럼 섞여 있는 흙,
병아리에게
흙은 엄마 품이어서
날갯짓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것
닭이 되어도 버릴 수 없는 습관
죽을 때까지
젖을 떼지 못할 병아리

현상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유 있는 반항

최승화

새는 공중을 집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날아가는 것은 반항
화장실 갔다가 늦은 교실에서 선생님은 내 뺨을 때렸다
책가방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
새들은 날 때 우는 것이다
그날 이후 독학을 했다
날기 위해 몸을 줄여야 했고
머리도 줄여야 했다
먹는 것도 줄이려고 밥이라고 하지 않고 모이라고 했다
새들은 힘겹게 난다
누구는 그것을 갈대의 통증이라고 했지만
천만에 말씀
그들은 육지에 반항하는 것이다
비록 집은 나뭇가지에 얼기절기 지었지만
고시원 쪽방에 사는 친구는 날기 위해 반항한다
날개가 완성되는 날
그가 나는 날은 반항이 성공한 것이리라

매 한 마리
땅을 향해 발톱을 세우고 급전직하하고 있다
오늘 땅 한 마리 죽는다

프레드리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프레드리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펌프의 꿈

이게 뭐지,
화석처럼 굳어있는 게 신기했던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낡은 펌프 손잡이를 움켜쥔다
한때는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 펌프질을 했으리라
아낙네들은 와서 누구 사내는
펌프질을 잘한다네, 못한다네 하고
한참을 히히덕거리다 가고
온종일 동네 어귀에서 놀다 온 아이들은
지들끼리 등목을 하며 으으으 으으으,
새까만 몸을 마구 비틀었으리라
그걸 본 계집애들은 또 까르르르 웃다가
발그레한 얼굴로 돌아갔으리라
저게 죽어서 고철이 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쓸쓸해진다
나라도 마중물이 되어 저 목울대를 타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손을 내밀고 살을 섞고 싶다
그때면 낡은 펌프도
울컥울컥 울음을 토해내다가 말하리라
등목 한번 할래?

프레드리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프레드리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괄호의 나라 /  이현호

유일한 백성이었던 내가 떠나오면서
그곳은 괄호의 나라가 되었다
국경을 넘기 위해 무거운 표정들은 거기 두고
별일 아니라는 듯 휘파람을 구름 위로 던지며 강을 건넜다
이곳에서는 빈 얼굴의 인사가 세련되어서 다행이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표정을 얼굴에서 놓아주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꿈꿨던 날들은 얼마나 우스운지
그곳에 남았더라면 고작 막대기 하나를 뛰어넘고 기뻐했을 텐데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당신은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빨대로 휘휘 컵을 휘젓고 있었고
우리는 조국에서 모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신기해할 것도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
나는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려다가
황급히 그것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서로의 얼굴을 두 손에 담아주는 건 그곳의 인사법이었으니까
당신도 괄호처럼 외롭구나
표정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누군가 두 손에 네 얼굴을 담아주면 좋을 텐데
사람이 볼 수 있는 자기 표정은 눈물뿐이야, 알고 있었지?
이상한 말을 들은 날엔 이상한 꿈을 꾼다
장대높이뛰기로 풀쩍 날아오른 나를 너의 두 손이 받아준다
한없이 퍼져가는 수면이 되어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렸다
괄호의 나라를 가득 채우고 출렁출렁이며
물의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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