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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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게,
프랑켄슈타인 스토리
프랑켄슈타인의 아리와
종이를 접으면 구부러진 아리가 보인다. 아리는 간혹 무릎을 모으고 갸름한 등을 떨곤 했다.
벽에 기대면 오후가 걸린 아리가 노크하고 길거리 오후를 창가 이마에 가져와 서성이곤 한다.
작은 서랍처럼 생긴 시가지의 풍경 속으로 걸어가고,
밖으로 나돌던 시간의 태엽들은 빈 소켓의 전구로 아득한,
아리는 작고 아담한 억양의 입김으로 속삭인다.
OST로 도배되는 한 공간, 또 한 구석 그 자리. 환풍기의 팬은 구간 없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닿지 못할 섬까지 검지가 선회하면 미열처럼 간지러운 아리가 이마에 얹히는데
해변을 만지는 파도가 정교한 우연을 헹군다. 아리는 가끔 입속 신선한 해안을 보여주곤 했다.
가글을 하고 난 뒤 해안에서 정교한 우연을 건져낸다.
무릎을 접으면 몽롱해지는 오후를 적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리에게 말한다.
아리의 갸름한 허리의 곡선에서 종이처럼 하얀 소리, OST가 깨끗하게 미끄러진다.
프랑켄슈타인이 바라본 것처럼
한동안 오래도록 시선을 기웠다, 깁는다.
2016.02.21.
프랑켄슈타인
아리가 증발한 오후를 머그잔에서 크림으로 휘핑한다. 아리와 아리가 거품지붕 위에서 꼭지점으로 만난다.
아리와 아리와 아리는 미지근한 카키와 화이트슈트로 데워진다. 아리는 뜨겁고 연체처럼 신비하다.
아리와 아리가 재생되지 않는 골목은 아리가 내다버린다. 오후가 표지판처럼 골목을 안내한다.
아리의 손톱지붕 밑은 날개 잘린 연체가 산다. 아리와 아리는 혼자 타는 담배연기의 아지랑이 같았고, 아리의 연체를 골목에 숨겨놓길 좋아했다.
오후에 불이 켜진 아리에서 식은 거리는 분말처럼 정제가 되어있었다. 아리와 아리가 사물과 공간의 경계에서 손톱과 연체사이 물결을 일으키고, 아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오후 골목길을 지난다.
발자국에 아리가 나오는 길이 끝없이 이어진, 연체를 골목으로 날아오르게.
죽은 듯 고요한 주위가 피부에 기워지다 담배연기처럼 끊어지고,
아리와 아리와 아리사이는 희미하여 먼.
2016.02.21.
오후, 프랑켄슈타인 리바이벌
마리는 아리였을 때, 그러니까 마리는 당신이 기억하는 골목을 배회하고 있을 아리와 아리입니다.
아리와 아리는 아리가 오후에 한 번씩 불시착한 출구입니다.
오후를 벗겨내는 손톱에로 다나가지 못한 빈 자국, 아리가 다녀가고
당신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마리와 걸어간 골목에서 오후가 됩니다.
연체가 날지 못한 바깥으로 구부러지는 시간의 물결사이,
골목의 아리와 아리가 오후에는 미아가 됩니다.
종이처럼 무릎을 접은 갸름한 어깨선에 불시착한 어느 오후라면
잔잔한 물속으로 날지 못했던 아리의 연체를 그만 놓아주고 싶다 생각합니다.
손톱 밑은 연체가 살기에 너무나,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오후는
건조하였으므로.
당신은 마리가 불시착한 연체의 물결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2016.02.23.
시선을 기우다, 기워지는 프랑켄슈타인적인 여각
(여곽이 닳아지면 나가지 못한 여각에로 이어지는 결)
아리가 온전히 기워졌을 오후는, 목이 뜨겁거나 꼬리가 자라났다.
마리는 아리로 와서 깜깜해지도록 어두워진 마디를 드러내고 사라져 가곤 했겠는데
거리 이곳저곳으로 뻗치는 골목이나 길 넝쿨이 되고
천장달린 모든 살등으로 오후가 재수선 되면 박음질 당한 아리의 마리들과 마리로 된 아리가 손끝에서 만져지곤 한다.
손은 가장 어둡고 혼탁한 상자 속에서 오후를 접었다, 프랑켄슈타인과
공중의 가장 고요하고 마른 인중 안 바닥에로 물살을 키는 빈 결로
걸어가고 나른하여진, 르누아르 아리에 기워졌다, 간다.
연체는 그러한 감촉이었다가 스타카토의 담배연기 중을 떠도는데
고혹한 입술의 공중과 나중의 공중이 구겨지는 새, 마디가 되었다.
모기눈금만한 오후가 부어지면 프랑켄슈타인이 연체가 만든 계단에서 시간이 되었다, 물결이 자는 방향으로 공중을 한 웅큼씩 가져와 골목을 보여주는 것은
마리와 아리가 계단에서 무릎을 접어 눈 먼 연체가 되기 때문으로
누군가에게 고요는 시간, 바깥 소리일 수 있다.
유성음을 만지는 아리가 여곽으로 기워지다 기워지는
빈 마디에로,
묘연한 목과 꼬리.
2016.02.24.
프랑켄슈타인 더 비기닝
(마리들의 아리로 오후가 만져지는 시선에서 기워질 때까지)
암흑이면 체온이었을 것이다, 바깥 시간에로 무릎을 접기만 하면 되었다.
또는 물 쇄사는 입꼬리에 바늘이 관통한 마른 비늘이었다.
종적을 감추기까지 여러 골목을 벗겨내는 손톱, 빈
다대포항, 삼천동, 19번국도, 종로1가, 대전역, 팔공산......
설악산 사계를 밟고 싶어 했다, 루트가 눈꼬리 주변을 맴도는 곳에서.
그러한 골목은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침잔 하였다 기워진다.
프랑켄슈타인이 식어가는 방식으로.
담배연기의 꼬리를 따라가면 아리였을지도 모르는 마리들을 만나곤 한다.
어제는 함몰된 꿈결에서 사라졌다 기워지는, 등 푸른 아리의 물결과
공중의 가장 높은 바닥에로 추락하는 아리가 오후의 채널에 있었다.
무릎은 채널이 없고 갈증으로 아프다 기워졌다, 아주 가끔
시간 바깥으로 뜨거워지는 시선이 미아가 되어 골목을 배회한다.
달맞이꽃이 이듬 해 자랐다 깁는,
따사로운 공중을 물고 가는 물금에서 얼핏 연체인 손톱 밑으로.
버들강아지와 강변사이가 잔에 담긴다.
프랑켄슈타인이 아리에서 가져다버린 목이 긴 잔이었겠다.
담배연기처럼 끊어지는 너울을 기우다 만다.
마리들은 너울처럼 번지고 아리는 다시
오후, 프랑켄슈타인에 있다 깁은 꼬리 눈을 뜬다.
사실 입꼬리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2016.02.25.
프랑켄슈타인 레전드
오후가 되면 비늘이 하나씩 벗겨진다. 턴테이블의 레코드가 나사모양으로 화음을 깎아내듯,
이정표들이 가장 먼 소실점에서 끌질을 받으면 한 뼘씩 잠기고
잠기다 아리의 창가에서, 포트가 되는 하이힐을 따라 브라운 부두에 가고
“이보세요.” 가물거리던 연안우체통에 노을이 수거되는 영화를 본다.
활엽수 낙엽만한 손수건에 감싸이면, 벌써 아메리카에서 죽은 탄자니아별이곤 했다.
일렁이는 고요 속으로 눈동자가 번지고 골목의 배수관이 눈물을 받는다.
매니큐어 손톱 밑으로 골목을 받아먹고 자란 연체는 노을을 닮아갔다.
“마시마로를 찾아요.” 귓등을 닮은 뼈들이 잿빛으로 말라가는 담배를 피운다.
고리를 말하면 입속을 헤매는 블랙맘바의 식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눈꼬리가 스위치를 내리면 근사한 샹들리에로 켜지는 골목에 가게 된다.
거리에서 수집한 한 웅큼의 피로가 휘핑된 거품에 떠돌다 감기고
감기다 프랑켄슈타인이 할로윈을 가져와 브론디로 마시며 계절이 바뀌었다.
취할수록 더해가는 샹들리에까지의 갈증으로 빈 거리가 흔들린다.
눈동자 깊이 흔들리는 샹들리에로 웅크린,
프랑켄슈타인은 하나씩 마스크를 건넨다. 지형을 이룬 고분들은 섬처럼 떠돈다.
떠돌다 정오의 자오선과 자정의 회귀선을 넘는 마스크가 그려진 시간이 돌아오고
유적에 대해 말할 때면 손톱 매니큐어를 닮은 해질녘이었다. 노을이 꺼질 듯 흔들려 보이고
“바이크를 타고 멀리 가요.”
물고기들이 벙긋거리며 유마(流馬)라 말해요.
안데스에서 히말라야까지 빙점으로 된 칵테일을 마셔요.
그리고,
입꼬리가 가장 아름다운 선에서.
2016.02.27.
프랑켄슈타인 에코 아리
한 올 한 올, 또 한 올 이어질 때 아리에 가게 된다. 시간은 으깨진 오렌지 과즙 향에서 맴돌고
조그만 지갑 속 네덜란드에서 꺼낸 긴긴 밤의 튤립 한 송이 건네고 싶은 암스테르담을 떠돌았다.
‘멕시코시티’에서 취한 이방인이면 저마다의 언어로 아리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리고 약간 상기된 어눌한 어조로,
“여자는 갈대와 같아.” 영원히 시들지 않는 타일 안 꽃으로 갈대와 흔들리고
페이지에 물린 국경이 오후 5시를 넘어가며 프랑켄슈타인은 마저 암스테르담을 비운다.
네덜란드산 튤립의 품종이라 글자로 썼다가 지운 흔적이 물 얼룩처럼 마른다.
아리의 물관은 아메리카노로 부풀고
부풀다 지중해가 물든 머릿결로 안개를 피워 올리면 안개에서 먼 불빛으로 오렌지가 점등되곤 했다.
캄캄한 아메리카노가 허공에로 길을 밝힌다. 물관처럼 아리로 채워진 오로라가 꺾일 듯
손에서 툰드라의 감촉이 느껴졌다 사라진다. 기억된 오렌지 향으로
“여자는 아메리카노 같아.”
프랑켄슈타인이 툰드라에서 아리를 향해 했었던 말이다.
‘멕시코시티’에 가면 아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고,
조그만 지갑 속 오로라의 꽃말을 꺼내 보여줄지도 모른다.
오렌지 향으로 잠깐 동안 흔들렸다 넘겨진 페이지에,
2016.02.27.
프랑켄슈타인 아다지오
할로윈에 갔다.
컵 속에 잠든 10여년 전의 라떼가 거품을 일으키는 파란 중으로 갔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무수한 가면들에 싸인 밤이 할로윈에서 입가까지 번진 듯
비스듬한 표정의 아지랑이 벽속에 걸려있다, 가면 속에서 사라지는 얼굴들과 호수가 되고
호숫가의 가늘고 긴 목의 고니들은 할로윈에 갔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안개 낀 새벽을 가로지르며 잔잔한 거울을 지치듯
무대 위의 발레리나가 할로윈까지 토킹으로, 커튼 뒤로 사라지는 얼굴들과 콜론이 되고
아리에게도 훗날 콜론처럼 생긴 태아가 할로윈에 갔다.
초음파로 촬영된 흑백영화가 아리에서 상영되며 고요한 바다를 헤엄치듯
고래는 할로윈까지 길을 낸다. 자막으로 사라지는 얼굴들과 어제가 되고
어제는 고래가 되어 할로윈에 가는 꿈에 있다 할로윈에 갔다.
아리의 입김처럼 생긴 고래를 바라보며
길가에 서성이던 프랑켄슈타인을 언뜻 보았는지 모를,
할로윈에 갔다.
얼굴들이 사라지는 파란 같은,
2016.02.29.
프랑켄슈타인 아다지오 II
( 변 신 )
#1
건물사이의 하늘에 오색시위가 환희 휘던 날이었다. 삼각표지판의 토인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처럼 블록에 있고 신호등은 빨갛게 지속되는 화촉으로 시간에 걸렸다. 아리의 무릎이 닿은 정지선까지 번져들다 무릎의 코끼리가 팔랑귀를 흔들며 지축을 흔든 것 같은 오후에로 이어진다. 밀렵꾼이 사냥으로 수집한 여러 종류의 뼛조각 중 짐바브웨 오후의 코끼리는 NGC에 담긴 적 있었다.
사파리에서 무릎을 맞대고 짐바브웨를 닮은 코끼리들과 NGC가 담아간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리 무릎의 코끼리가 사진 속에 쫓기고 있다 펴진다.
짐바브웨 토인이 정지선까지 무릎을 옮겼다, 무지개다리 너머로 번져가는 화촉이 거세지고.
프랑켄슈타인과 아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려 무지개 그려진 미술관에 갔다.
#2
랙을 벗기면 무지개 켜진 소리가 난 듯하다. 짐바브웨까지 멀리서, 화창한 우기에 있다. 무릎들을 몰아가는 토인과 미술관 아리는 귓바퀴를 맴돌다 연기처럼 태워진다. 훗날 정지선까지 옮겨지던 무릎들이 뭉크에 의해 코끼리로 미술관을 갔었다, 혼자 타는 담배연기처럼 마르는.
짐바브웨가 뭉크의 코끼리로 사파리에 간다. 아리는 정지선 앞에서 절규하는 무릎을 펴보이곤 했다.
뭉크는 NGC보다 나이 든 코끼리를 담을 거라고 아리에게 말하던 프랑켄슈타인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 삼각표지판에서 사라진다.
무지개 그려진 미술관이 건물사이로 야위다 리본처럼 풀어진 표지에 실려 갔다.
#3
NGC 홍보용 메인포스터에는 사파리에서나 있음직한 표정의 무릎들이 절규하며 아리가 가져다놓은 리본에 묶여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랙을 벗기듯 뭉크를 만지다가 짐바브웨로 피운 기억을 떠올렸다. 아리가 무지개곡선으로 누운 NGC 포스터에로 걸어가는 토인과 무릎을 맞댄 일억 오천만 년 전의 미술관 바닥에 대하여. 코끼리들은 뭉크를 가장 뜨겁게 사랑한 방식으로 미술관에 돌아와 죽어간다 단 한 번도 슬픈 적 없는 무릎에서 뭉크까지,
아리의 눈가에 번진 짐바브웨에로 프랑켄슈타인이 걸어가는.
20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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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지는 겉 섬모에로 오후 아리의 나라에 간다,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생소한 이름으로 된 국가들은 모조리 오후에서 켜졌다. 레버를 당기면 골목이 떨어지고 대롱에는 가장 한적한 바다자국이 선명한, 손톱 밑 연체를 따라오는 물결에서 어두워졌을 고요한 허공의 층으로만, 표류하던 무릎이 무너져 내리던 . 여기는 바닥에서도 깊은 먼 바깥의 시선이 구부러진
대상에 관하여 이어지는 매개를 연상시키는 촉매촉진의 방식으로 전개할 것
손끝을 예로 들어, 야스나리의 방식이라면, 그러니까 검지는, 지방의 산등성이를 돌아나가는 하나의 선명한 윤곽으로 여자의 젖가슴은 기슭처럼 곡선이 되고 기억된 여자의 유두는 유희가 된다. 이것은 인상이 포개어지는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오히려 화자가 좋아하는 타입의 기억이 선별되어 나타난 경로이면서 동시에 개인취향의 성향으로 분별될 수밖에 없다. 세상 여자들 중에, 일본 여자들 중에, 젊고 탄력적인 몸매를 가졌으며 조그만 얼굴을 가진 많은 여자들 중에, 시마무라는 유두가 예쁜 인상으로 남은 특정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떤 하나의 구획을 설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엇인가를 특정 짓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인상을 가져와 개인적 성향의 잣대로 그것들을 대비하여 사랑하는 방식. 그러니까 시마무라는 유두가 탐스럽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사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마무라는 다시, 체온이나 체취 감촉 따위로 한 번 더 감정을 가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감정에 있어 가공되어진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으로써 해석한다. 특정, 가공, 선택된 인상, 교차대비에 의한 인과성, 이것이 사랑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일생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 중의 이성이나 애인 등에 관하여 개개인이 지향하는 방식으로 대상이 옮겨간다. 대상에 의미는 전체일 수 있고 부분일 수도 있다. 대상은 한정되어 있지 않고, 한정되어 나타나지도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특정의 인상으로써만 대상이 좁혀지고 온전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또는 나는 고전적인 여자를 좋아해, 라고 하였을 때 이것은 특정의 범위를 좁히게 된다. 조금 더 특정이 발전되면 무언가를 직역하거나 대비한다. 이것이 연애의 감정으로 흘렀을 때, 이미지화 대상에게 전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비로소 전이한 대상을 의식하게 된다. 이 의식은 변화무쌍하다. 누구 때문에 누구인가의 성향이 바뀌었다, 또는 개과천선 했다 하듯이 대상이 전가하는 영향아래 주체인 자신까지 변모하게 된다. 이것에는 원천으로써 대상이 의식이 되고 의식은 다시 대상으로 바뀌는 과정일 수 있다. 전가된 것에서 변모를 찾고 변모에서 전입되는 탈자아이거나 자아일 수 있다. 그 가능성의 기울기에서 이 글은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끔 최면이나 마법에 빠지기도 한다. 이것은 감정을 만지는 설계의 구도를 가진다. 여자들의 생리현상을 마법에 빠진다, 로 표현하듯이 또는 자기최면이란 말이 있듯이, 이것의 실체는 감정이 설계당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시에서 이루어지는 단어와 문장사이 부호와 문자는 그러한 매개의 구실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를 읽고 자기안의 의식을 소명해 낸다. 거기 분위기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프랑켄슈타인을 변호하거나 대변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최면에 걸린 주체이면서 바로 당신이란 뜻이다. 연상작용에 의한 흐름에서 전입하거나 전이한다. 또한 변모에 있어 자유롭다. 탈자아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 골목은 이 말을 뒷받침하는 구실로 쓰였다. 프랑켄슈타인이 말하는 연체에 대하여, 특정화된 경로를 통해 변모한 대상일 수 있다. 또는 그러한 의식이 흘러간 거울일 수도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바에 의해 연체가 프랑켄슈타인의 형상을 비추어준다. 기억된 인상과 인상이 변모한 부분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확산된다. 아리가 내집(안으로 응집된)하는 시간은 종이처럼 구길 수 있고, 무릎처럼 접을 수도 있다. 시간은 이로써 유형의 소산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축약)
이러한 방식은 샌드드로잉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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