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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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근처
하나둘
삼넷오…… 꽃나무에 멎은
별별입니다
달곰한 귀엣말이 스치고
별똥이 무시로 이마를 그어대다
이러구러 자물뱀 따라 흘러갔지요
밀어를 쌓던 뒤꼍은
시나브로 불이 꺼졌습니다
달팽이 헹구던 날은
돌담에 벗어 놓은 허물같이 공허해졌습니다
새하얀 목덜미에 물불 퍼부은 산허리를
물새가 옮기더군요
꽃길 물어 항해했고
꽃 우는 소리에 정박했으므로
볕 드는 쪽을 골라 버선코를 내밀었습니다
밤바다에 뜬 통통배를 기루다
찰박거리는 흘수선만 흘기며
그냥 왔습니다
갖은소리와의 불화는 죄다 죄 되어
치렛말이라도 할라치면
목구멍에서 흰 거미가 흘러나오는군요
절굿공이는 별떡을 빻아대지만
꽃말 누빈 채금에 하냥다짐하고 이마에 차오른 꽃불
끄려 무롸가야겠습니다
별스럽게 사무치는 봄밤입니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머리 흰 물 강가에서
송찬호
봄날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머리 흰
강물을 빗질하는 늙은 버드나무를 보았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밀고 당기며
강물은 나직나직이 노래를 불렀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는 바지를
징징 걷고 얕은 강물로 걸어 들어갔네
봄날 노래 소리 나직나직이
내 발등을 간질이며 지나갔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
김태운.님의 댓글

끄려 무롸가야겠습니다///
ㅎㅎ, 첨엔 뭔가싶었네요
배꽃차인 듯,
아마도 별맛이거나 봄맛이거나
사무치는 봄향입니다
활연님의 댓글

본말은 무르와가다, 인데 (아랫사람이)윗사람 앞에서 물러가다.
그런 뜻이라 하더군요. 무르와가다의 준말이 무롸가다=물러가다,
배꽃차와는 무관하고요, 겨울을 벗으려
봄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촛불
송찬호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
나는 어두운 계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
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 쥔 손 안에 촛불이 켜졌다
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
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
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
`
김태운.님의 댓글

ㅎㅎ, 전 '끓여 먹으러가겠습니다'로 읽어버렸네요
갱상도 스퇄로 그래도 되겠다싶어
이건 순전히 독자의 생각
오독의 권한이랄까
감사합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오독은 오독오독 씹어서 버려야 할 듯합니다. ㅎ
별이니 꽃이니 그것들은 다 엑스트라일 뿐이고,
직방으로 이해되는 글들은 설명문이나 논설문에서
찾기 쉽고 시는 다소 엉뚱한 지점에 있겠지요.
읽는 건 누구나 자유다, 시에서 얻는 것이 다 다르듯이.
일부러 우리말 몇을 불러보았지요.
우리말이 낯설다면, 요즘은 검색어로 쉽게 찾으니까요.
저도 갱상도지만, 갱상도는 음악이 읎고
성격만 급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배꽃차 한 잔 바치겠습니다.
채송화님의 댓글

한참을 네이버 검색하면서 재미나게 읽습니다. 그러고보니 배꽃이 꼭 별처럼 생겼네요.
천역덕스럽기도 하거니와 다소곳한 부분들이 세침하게 다가오는 배꽃 근처, 입니다.
특히, 바닷가 옆 배꽃은 더욱 그러합니다. 송찬호씨도 짧은 글들이 많나봅니다. 덤으로
읽었습니다. 시대의 낭만파 활, 형님...참 대단하십니다. 배꽃 무렵, 이라고 써보기도
했는데 저는 어째 논문같아져서 송찬호 흉내는 잘 못내겠더라구요. 즐거운 주말입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이 글을 수필로 쓴다면, 멋 모를 적 지금보다 한참 먼 시절의
연애 사건을 다룬 것일지도 모르지요. 이미지와 사건들을
병치했지만, 그냥 그림으로 읽어도 좋겠다 하지요.
바닷가에 배밭이 있다면 참 서러울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바닷속으로
몸 던지는 꽃.
송찬호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글을 쓰기도 하는데, 글이 깊지요.
순간을 잡아채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
~ 무렵, 흔한 말투로 이것은 김경주가 다 해먹었다!
간밤에 센티한 서정을 다루었는데, 요즘은 그로테스크를 좀 버리는 중.
시에서는 가벼운 주제가 무거운 주제를 이긴다, 혼자 생각입니다.
멋진 휴일 잡수시고.
이면수화님의 댓글

기다림
하나로
생업을 삼는
거미의
눈빛처럼
사무치는
봄밤입니다.
활연님의 댓글

봄밤을 쓴 글들은 참 많지요.
시인들은 어쩔 수 없이 봄밤에 닿고 싶어하니까,
시를 쓰는 것도 꽃 피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내 지고
썩은 꽃이 되더라도, 세상에 꽃무늬를 놓고 싶어하겠지요.
화사한 주말 즐기시길 바래요. 고맙습니다.
꽃은 얼굴로 받고, 땅에 누워 술을 마신다, 상당히 시적인
닉입니다.
동피랑님의 댓글

'배꽃'은 배꼽 같기도 하고 배나무 꽃 같기도 하고 그 참 어감이 대감입니다.
설탕 한 숟가락도 안 넣고 이렇게 달콤하게 끓인 단물이 마데인 활연이군요.
벌컥벌컥 마시고 오늘은 해지기 전까지 여기서 놀기로 작정했습니다.
좋은 분들이 계시니 엉덩이가 안 떨어집니다.
활연님의 댓글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는데요,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 노래중 막내가 불렸다는 노래에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이러한 대목이 있는데요, 厚顔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문장 중 일부도 시에 들어 있었지요.
지나간 시간들을 다 아름답게 착색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무엇인가를 헤아린다는 건, 서글픈 참회를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가벼운 관념일 것입니다. 상실이나 부재는
서러움이지만, 과거 또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고 아리게 한 흔적들은 아닌가,
한때라도 사랑했다면 아플 것이다.
그러니까 꽃이란 잃어버린 어떤 날의
슬픔을 환기하고 등을 켰다가 이내 꺼지는데 그런 아쉽고 서러운 날을 호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피가 참 큰 글이었는데, 뭔가 개인적인 소리는
다 거둬냈지요. 그야말로 배꽃 핀 어느 한 지점을 상상해도 좋겠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싶어서.
배꽃과 배꼽을 연결하는 상상력은 동피랑님께서 유장하게 엮으실 것이다, 기대.
오늘도 열공 중이신가, 봅니다. 저도 시는 버리고 공부에 열중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봄바다 불어오는 따땃한 날 되십시오. 곁에 이미 화사하게 꽃핀 분에게도 안부.
시엘06님의 댓글

와~~(죄송합니다. 감탄사를 꼭 사용해야겠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운 부활입니다!
운율마다 고유의 정서가 살포시 묻어 아련하듯, 정감이 가듯,
그렇다고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지를 여는
진보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소리내어 몇 번 읽어봅니다.
봄밤이 와 있네요. ^^
활연님의 댓글

읽어서 소리가 그럴듯하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전 김기택 시인은 시를 가져가면 우선 읽게 하더군요.
시는 눈으로 읽지만, 소리와 어울리기도 하니까.
어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는 하룻밤 재우며
퇴고를 한 것인데, 금방 막 쓴 것과는 조금 차이가 나지요.
아무래도 시간을 두고 고쳤으니까,
모르는 우리말이 참 많은데 가끔 써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는 어쩔 수 없이 모국어니까요.
편한 밤 되십시오.
시로여는세상님의 댓글

향긋한 동양화 한 폭 잘 감상했습니다.
버선코를 내밀었습니다...저도 모르게 그만 정신이 혼미하여
살짝 설레다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