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赤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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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赤壁/수류 손성태
지층 위 화석 같은 음표들은 제각기 연대기를 지닌 붉은 유산입니다
소리는 너와 내가 만나는 장소, 허공을 치는 손뼉이 붉게 떨어져 강물을 물들입니다
뎅강, 무참한 개여울이 푸드덕 날아오르다 강물에 꼬꾸라진 소리는 이분음표로 스며있고 ‘너 없인 못살아’라고 한 어제의 십육분음표는 목 베인 채 이리저리 날뛰다 강어귀에 처박힌 외마디 피울음입니다
천둥과 번개, 폭풍우소리는 옥타브 또 한 옥타브 오선지에 검게 쌓여 강물 속 수묵산수화를 새겨 넣습니다
그러한 잠시, 산허리를 거칠게 휘감아 돌았던 강물은 천만년 그저 아래로 아래로만 흐릅니다
속내마저 훌러덩 벗어던진 여인의 보드라운 속살도 씻겨가고 어느덧, 드러누운 장엄한 몰골에 강줄기가 숨을 턱하니 멈추고, 주춤주춤 맑은 빈자리를 내어 줍니다
강물이 출렁이고 산들바람이 벼랑의 등뼈를 간질이고 갈비뼈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나무 풀 돌멩이 바위 계곡 햇빛 구름 물새의 합주가 긴 강을 타고 흐릅니다
사십 리 펼쳐진 병풍, 강물은 피눈물 보태도 말이 없지만 적벽은 한 톨 한 톨 심어놓은 소리의 무덤 스칠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검붉은 묵언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물염勿染의 한 나그네가 무심코 지나가다 아득하게 물들어, 털썩, 주저앉습니다
저 강, 한 점에서 그어 내린 초서草書
적벽, 슬픔이 휘발된 암각화
오늘 또 그 누가 강어귀에서 목멘 채 흐느낍니다 적벽이 또 떨어져 강물을 붉게 적십니다
댓글목록
안세빈님의 댓글

아~~~강원도 어드메즈음
그러니까....조선의 어느 화가의 눈에서
유배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봄을 본듯한 느낌이 들어요!
진경산수화 한 점 공짜로 샀습니다.
잘 계시지요?
따스한 봄 되시길 바라며, 문정완씨가 안부 여쭙네요!^^
좋은 밤 되세요 수류선생님^^
동피랑님의 댓글

적벽가는 이렇게 불러야 한다. 한번씩 오셔서 수류 시인님만의 독특한 창을 들려주시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일 텐데 가족이면 누구나 시를 쓰는데 있어서 예외가 없겠죠.
덕분에 이 새벽 두 눈이 호강하였습니다. 밝은 날 마음도 환하길 바랍니다.
손성태님의 댓글

안세빈 시인님, 모처럼 뵙습니다.^^
올해 풍성한 시를 많이 생산하셔서 좋은 소식 물어다 주시리라 믿습니다.
시꾼님의 활달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따뜻한 안부 고마와요.^^*
동피랑님, 여여하시지요?
군에 있을 때 본 적벽이 떠올라서 노래를 불렀더니만, 과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밤낮으로 시에 정열을 다하시니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올해는 동피랑님의 해이시길 기원드릴게요.^^
허영숙님의 댓글

시가 정말 좋습니다. 시인님
몇 해 전 동인모임에서 화순적벽에 간 적 있지요.
오래 바라보고도 시 한 편 쓰지 못했는데
대단하십니다.
좋은 시 자주 뵙기를 바래요
손성태님의 댓글

허 시인님께서 칭찬을 주시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진정 시인이니
시의 끈을 늘 붙잡고 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바쁘신데도
고우신 발걸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