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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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그들
나는 시시포스를 좋아한다 타나토스에게 족쇄
를 채워 한동안 아무도 죽지 못하게 한 그는 도돌
이표를 완성한 표본이니까
시시한 포스는 흔하지만 까뮈가 말했듯 부조리
의 왕이었으니까
이카로스를 좋아한다 바다와 하늘 중간을 날다
그만 불타는 날개를 좋아한다
이카로스 행성을 좋아한다 0.8km 작은 돌덩이
일 것이나 태양의 혀를 맛보는 저돌을 좋아한다
실비아 플라스를 좋아한다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때문이 아니라 적당히 죽는 모의 자
살을 기획했으나
진짜 죽게 된 시행착오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연
적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복* 이전에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시대와 권위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증오로 흐려지지 않"는 "신의 눈"을 가
졌기 때문이다
*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이성복, <그해 가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95)
* " " 부분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 「아빠」「거울」에서 부분 발췌.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아빠
실비아 플라스
당신은 하지마, 당신은 하지마
이제는, 검정 구두가 아니야
나는 그걸 삼십 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지.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재채기도 못하면서.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지.
당신은 내가 그러기 전에 죽었지.
대리석처럼 무겁고, 신으로 가득 찬 자루,
샌프란시코의 물개처럼 크고
잿빛 발가락 하나가 달린 무시무시한 조각상
아름다운 노셋 앞바다로
강낭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곶처럼 거대한,
나는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를 하곤 했지.
오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굴림대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 마을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마을의 이름은 평범하지.
내 폴란드 친구는
비슷한 이름이 열두 개 아니 그보다 많이 있다고 말하지.
그래서 나는 결코 당신이 어디에 발을 내딛는지.
뿌리를 내리는지 말할 수 없고,
당신에게 말을 걸 수도 없지.
혀가 턱 안에 박혀서 꼼짝도 않지.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 안에 박혀 있지.
나, 나, 나, 나,
나는 말을 할 수 없지.
나는 모든 독일인은 아빠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음란한 언어
유대인처럼 나를 실어 나르는
기차, 기차
다하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가는 유대인.
나는 유대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지.
나는 유대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티롤의 눈, 비엔나의 깨끗한 맥주도
아주 순수하거나 진짜라고 할 수 없지.
내 집시 혈통과 기이한 운명과
내 타로카드 점괘, 내 타로카드 점괘를 보면
나는 약간은 유대인이지.
나는 항상 당신을 두려워했지.
독일 공군과 난해한 언어를 지닌 당신을.
말끔한 구렛나룻과
아리안 족 혈통의 밝고 파란 눈동자를,
장갑차 조종사, 장갑차 조종사, 오 당신.
신이 아니라 나치의 만자가
아주 까맣게 덮고 있어서 하늘이 뚫고 나올 수 없었지.
모든 여성은 파시스트를 숭배하지.
얼굴에 있는 장화 자국과 당신처럼
잔인한 사람의 잔인한 잔인한 심장을.
아빠, 내 사진 속에서,
당신은 칠판 앞에 서있지.
발이 아니라 턱게 움푹 팬 절개가 있지만
그것 때문에 덜 악마적인 건 아니지, 아니지
덜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내 예쁜 붉은 심장을 두 개로 찢어놓은 악마.
그들이 아빠를 땅에 묻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지.
스무 살 때 나는 죽으려 했고
당신에게 다시, 다시, 다시 돌아가려 했지.
뼈라도 되돌아가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들은 나를 자루에서 끄집어내어
접착제로 붙여놓았지.
그리고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지.
나는 당신의 모델을 만들었지.
악마의 표정으로 고문 형틀을 좋아하는
검정 옷을 입은 남자.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아빠. 이제 완전히 끝났지.
검은 전화기는 뿌리째 뽑혀서,
목소리가 기어 나오질 못하지.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지.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일 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사실을 말하자면, 칠년동안
아빠, 이젠 돌아누워도 돼요.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지.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
활연님의 댓글

거울
실비아 플라스
나는 은빛이며 정확하다. 나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을 보든지 나는 즉시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사랑이나 증오로 흐려지지 않는다.
나는 잔인하지 않다, 단지 솔직할 뿐이다,
네 귀퉁이를 갖고 있는 작은 신(神)의 눈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반대쪽에 있는 벽을 보고 명상에 잠긴다.
그건 분홍색이며, 얼굴이 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기 때문에
내 심장의 일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깜박인다.
얼굴과 어둠이 우리를 자꾸 자꾸 분리시킨다.
이제 나는 호수다, 한 여인이 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내 한계까지 찾아보고 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저 거짓말쟁이들, 촛불이나 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녀의 등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그녀는 눈물과 안절부절 못하는 손짓으로 나에게 보상해 준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는 왔다가는 간다.
매일 아침 어둠을 대치하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내 속에서 젊은 소녀를 익사시키고, 그리고 내 속에서 늙은 여인이
매일 매일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같이.
`
채송화님의 댓글

요즘 시인들의 상상력을 따라가기란 참말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불쑥불쑥 이미지가 변주되면서 힌트만 살짝 살짝 주고 넘어가는 기법들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어차피 그것이 대세라면 익히는 방법 이외에는 없는 듯 합니다. 내 색을 찾아 내 목소리를 내기에도 이젠 나이가 너무 많이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세미(중간)정도의 상상 또는 변주로 이 시대의 유행을 따라갈 수 있으려나 걱정도 많이 되고 그럽니다. 어느 신인상 공모가 떴는데...기존의 당선작들을 며칠 읽었더니 빙빙 돕니다. 에이 뭐, 그냥 내 맘대로 상상하고 그 상상의 고리를 따라 마구 연습이나 해야 하겠습니다. 즐거운 외출 되시길...
활연님의 댓글

요즘 좋다는 젊은 시를 읽으면 깜깜해지기도 하더군요. 유행에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시가 이렇게 저렇게 구곡산장을 누비니까,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도.
감각이 탁월하고 출중하니까 곧 좋은 소식 있으리라...
홀로 된 형수가 계시는데 칠순이라네요. 엄니 같은 존재, 그러나 참 무심해서
찾아뵈려고, 멋진 휴일 지으시길.
동피랑님의 댓글

두 분께서는 개울에 갇혀 있다 잡힌 추어탕 글보다는, 흐름을 읽고 큰 바다까지 가서 비로소 제 몸이 시가 되는 뱀장어를 지향하시네요.
옆 볼 띠 있다보면 저도 흉내는 내겠지요.
앙증맞은 채송화님은 쾌유하시고, 이제 활기를 찾고 계신 활연님은 덕 하나 쌓으러 가시네요.
사과 한 개 먹고 장작에 윗가지 하나 올려야겠습니다.
주말 계속 산뜻하게 밀어붙이세요.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피랑님은 진득하고 곡진한 진술로 이미 시의 묘미를 보여주고 계신바,
시 한 편도 중요하지만, 한 권을 기획하야,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하시길.
삼십 대 시인의 경향들이 있다면, 또한 연륜이라는 척도로 버티는 힘도
있으니까, 시가 세련된 깊이를 갖춘다면야 유행이란, 오히려 독,
저는 등단에 목매지는 않지만, 한 권을 제대로 묶자! 짱구를 돌리고
있지요. 십 년 안에 한두 권, 으쌰~
동피랑님의 댓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미국)
- 스미스 대학 장학생으로 수석 졸업
- 영국 켐브리지 대학교 풀브라이트 장학생
-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 아이 둘 낳음
- 소설 유리 그릇(The bell jar 1963)
- 1950년대 여성 억압적 풍조에 저항
- 남편과 별거로 런던 어느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겨울을 남
- 아프고 고립된 채 절망 속에 부엌에서 가스로 자살
- 죽은 후 2년 뒤 1965년 시집 아리엘(Ariel) 출간
- 초기 그녀의 시는 깔끔한 정통시
- 후기 그녀의 시는 페미니스트적인 고통과 울분의 시
- <아빠 Daddy>나 <지원자 The Application>에서 그녀의 성향이 잘 나타나 있다
* 저작권 관계로 요점만 추려 적었습니다.
고현로님의 댓글의 댓글

하하하 저도 개를 데리고 들판으로 가서 '흘러가는 구름'과 '질척한 논에서 날아오르는 오리떼', '비쩍 마른 몸으로도 끝내 바람을 쓰다듬는 갈대'의 소견을 적으려 했는데 어마무시하게 겁나는 활연님의 시 때문에 실비아 플라스의 일생만 열독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활연님이 아주 다방면으로 학습을 시켜주시는 통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덤으로 이성복 시인의 <그해 가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까지 알아보냐고 손가락은 찬바람에 얼고, 개들은 옆에서 하품만 쩍쩍하다가 이런 식의 소풍이면 안 따라오겠다고 하는 걸 겨우 달래서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순수서정주의를 버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입니다. ㅎㅎ 두 분과 위의 모든 분들 즐거운 휴일을 보내시기...아, 내 글이 아니구나...바이바이 할롱~~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실비아 플라스는 전혀 몰랐던 시인이지요. 어젯밤 이런저런 내용을 읽고
아, 그렇구나 했는데. 올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천국의 문"에 마지막 연이
등장하는데,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지.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이 시가 소설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녀의 생과 몇 편의
시를 접했는데, 예사롭지 않다, 뭐 그런. 외국 시인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뭔가 극적인 요소들이 많더군요. 시와 생 모두.
이성복 시인은 젊은 시절 시가, 아주 파격적이고 전위적이었는데
지금은 뭐 별로, 그냥저냥 쓰는 축이고 마는 걸 보면, 시인은 자고로 젊어야 한다,
뭐 그런 생각도 들지요. 시는 세상을 흔들 힘이 있다,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도 드는데,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이나 시나, 연관된 것을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활'은 장차 이 나라의 계관시인이 될 것이므로 와카카....
맨 정신인데 오버를. 두 분 부재중을 잘 지켜주시니 감사.
한주 여물게 맺으시고 삼월 맞으시길.
두저문님의 댓글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를 저도 좋아했는데 활샘의 간에 대한 기술도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의 끝에 오는 고통과 다시 고통, 벗어날 수 없는
까뮈 작 중에서 추방과 왕국이나 전락도 좋아했었습니다. 이방인으로 유명했지만.
철학은 늙는 법이 없다, 사람도 시도 문학도 시들 수 있지만
모태는 끊임없는 고통처럼 태어나고 태어나며 지속된다, 는 말이 되남유?
그래도 카프카가 가장 위대하게 모셔져 있지만
협소한 다락에 하루키를 담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인지도 모르겠고.
안녕히 계세요.(__)
활연님의 댓글

저도 늙으면, 이미 좀 늙었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철학적 궤적을 따라가 보면, 재미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읽기에 편식이 심했는데, 언젠가는 책을 읽고 또 쓰고, 당대의 정신과
또 미래의 정신을 고민하며 사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요.
문화나 예술의 메커니즘도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회한 의식은 세상을 퇴행으로 몰아가고, 미래를 주저앉히는 역행도
자주 일어나니까, 젊은 철학자, 젊은 시인, 젊은 작가 등이 문화와 예술의
선두를 지휘해야 미래도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하지요.
늙으면 염불이나 노래나 하면 제격인데, 그래도 젊어지려는 노력은,
의식은 녹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나른하게 의식주만 고민하고 산다면, 어느 때는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시는 다양성이고 각자의 몫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관습적인 틀에 넣어, 주문 제작할 것이 아니라면
시인은 개성적인 인물이고, 독립적인 무한대로 특이한 단독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움 속에서 의식의 혁명도 일어나고, 정신의 지평도
넓어지겠지요. 이 공간에서 '특이성'이 두드러지니까, 활약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