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정(訥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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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정(訥情)
시 / 김인수
아침 유리창을 긴 혓바닥으로 핥고 있는 햇살을 읽고 아파트를 나선다.
밤새 바람을 번식한 겨울이 각을 잡아놓은
날 선 동백나무 이파리에 눈을 베이고
무의식은 셈법이 느린 의식보다 속도가 빨라
가끔 손이 먼저 나갈 때가 있다
주로 주먹이 나가기도 했는데 오늘은 꽃모가지를 꺾어 버렸다
의식을 바르지 않은 손은 분명 부드러운듯하면서도
칼날보다 날카로울 때가 있다.
꺾어버린 상처 부위는 지혈을 시키고
물컵에 꽂아놓고 책상 위에서 논개의 절명을 연출하고 있다.
몇 겹의 초병들을 세운 꽃몽오리는
날을 세운 바람과 격전 중이다.
이 겨울내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꼭꼭 누루고 참다
깨물린 입술에서 선홍빛 핏자국이 감돈다
언젠가 그해도 겨울이였다.
객차처럼 달려들던 푸른 시간들이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여 있었다
메스가 깊게 들어 오던 날
미란다 원칙도 없이 나를 질질 끌고
출입금지 푯말 너머로 가고 있었다.
등 뒤에 시퍼런 날들 세워놓고 생의 낭떠러지에 서면
겨울밤 시린 별빛 하나에도 가슴을 긁힌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어떤 장면들이 서늘하게 환기됩니다.
세필로 긁은 시에 핏물에 베어 있는 듯하군요.
낭떠러지는 돌아서면 또 너른 들녘일 것입니다.
생으로의 귀환,
칼날 선득선득 느껴지는 시. 잘 감상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시로 자주 봬요.
양철붕어님의 댓글의 댓글

그러니까
움푹 패인자리는 오래도록 상처가 남아서 울신 거린답니다 풍경 껍데기라도 베껴 써볼려면
과거가 현재를 끌어 당기고
그 힘에서 늘상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네요
이제 무슨 글에 탐이 있겠습니까 고작저작 쓰면서 무료한 시간을 넘어가는 게지요
고운자락 내려 주심 고맙습니다
채송화님의 댓글

좋네요. 이제 어색한 비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양철붕어님의 댓글의 댓글

그런가요
제가 아무리 눈을 뜨고 보아도 볼수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늘 흔들어 깨워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객차처럼 달려들던 푸른 시간들이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여 있었다
메스가 깊게 들어 오던 날
미란다 원칙도 없이 나를 질질 끌고
출입금지 푯말 너머로 가고 있었다///
시인들 세계는 특히 이런 경험들이 많은 듯
섬뜩하네요
겨울이 빨리 물러가길 빌어봅니다
따뜻한 날만 맞으시길...
양철붕어님의 댓글의 댓글

세상이 다들 그렇게 무너지고 있겠지요
말못할 언어들
가슴속에 묻은 이전이 글에 배어 나오나 봅니다 가끔 그 상처자리가 시큰둥 하여
문장속으로 유영을 했겠습니다
가녀가심 감사합니다
은영숙님의 댓글

양철붕어님
안녕 하십니까? 반가운 시인님!
가슴 아픈 시심을 뵙는듯 합니다
건강이 최 우선이네요 하지만 맘대로 안 되는것 ......
상처같은 마음으로 읽고 또 읽고 갑니다
건안 하시고 고운 밤 되시옵소서! ^^
양철붕어님의 댓글의 댓글

그냥 너머가셔도 되는데
꼭 발자국 놓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섭게 조여오던 겨울도 이제 꼬리를 접어야 할것 같습니다
문밖에 봄이 스멀거려요요
늘 건강하십시요
고운자락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