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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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할 용기가 있다면.../심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인지 헤아리지 않는다
다만,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위해 목놓아 울지 못했다
애증의 그림자가 너무 길었다든지하는 푸념따윈없다
그저 일상에 떠밀려, 넋 나간 놈처럼 살지도 못했다
자괴감도 사라지고 무지렁이 마냥 살아온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그냥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낮술을 먹고 있었다 순대집에서 시작한 술이 포장마차에 이어
다시 맥주촌까지 이어지는 꽤 위험한 술 행보였다
어느 순간에 필름이 끊어졌는지 모르겠다
가게 거래처에 나도 모르게 들렸었나보다
며칠 후, 괜찮으냐는 물음에 뜬금없이 왜요? 하니
여사장이 저한테 뭐 할 말이 없느냐는 거엿다
글쎄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하니 고개를 모로 꼰다
실인즉, 그 날 만취한 내가 가게에 진입해서
“사장님! 저 죽고 싶어요!”하고는 대성통곡을 하며
족히 한 삼십분을 울다가 그만 끝내고 싶다며
지갑에서 계좌번호를 주며 아내와 아들 둘에게
공평히 나눈 내 마지막 재산이니 전해주라 했단다
단박에 거절했단다 받으면 정말 사라질 것 같아서...
그 날 쓰고 갔던 우산을 내밀면서 하는 말이었다
하여튼 나는 그 날, 싸구려 여인숙에서 새벽 네 시에
아들의 전화를 받고 “아버지 죽은 것 아니죠?”
하는 말에 “그래! 죽지 못했구나!”했다
실종신고 소동이 일어나고 담당경찰관의 전화도 왔었다
하얗게 지워진 부분에 말 못할 그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되는...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살다보면 한번쯤은 그런 일들이 있더군요
물론, 제 경우지만
그 선택은 주어진 운명이라는
하늘의 몫이겠지만
온전한 사람은 누구나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겠지요
아무리 취했어도 마음 한 구석엔 더 살아야겠다는 심기가 남아있어야겠지요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을 하직한 자는 더없이 편안하겠지요
남은 자들의 슬픔 또한 잠시
그러다 곧 잊혀지는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싶습니다
괜한 소리로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혜량하여주시고
오랜만에 문안 여쭙습니다
힘 내시고요
심월님의 댓글의 댓글

자기존재의 부재를 느낍니다. 그래도 시를 써야하나?
시도 못쓰는 사람이 죽어봤자지 하는 생각에 머뭅니다.
이제는 그런 생각 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고현로님의 댓글

뭐라고 위로를 드리려다 비장한 마음에 누가 될까 문득 떠오른 김사인 시인의 시를 대신해서 옮겨 봅니다. 봄날도 환한 봄날 되세요.
허공장경(虛空藏經) /김사인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힘들어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털어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이라 했다.
삼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자
두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라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 둘.
심월님의 댓글

고현로님 감사합니다. 시를 쓰기 이전에 인간적인 따뜻한 마음에 매료됩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 되곤 합니다.
살아잇다는 것에 무한한 위무를 느껴야 하는 데, 희망이 없으면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게
인지성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삶도 죽음도 숙명인 것 같습니다.
한드기님의 댓글

오랜 닉에
오랜 만에 인사드립니다.
마음 추스리
심월님의 댓글

한드기님, 반갑습니다. 사는게 지난한 줄 알았지만, 얼마나 더 살아야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두다 산다고 열심히 살아봐야 고작 거기가 거긴 것 같은 데...아둥바둥 우기고 버티면서 즐겁지 않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건지 자문해봅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아 그간 심혈을 기울였던 문학단체도 탈퇴했건만 허탈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유체이탈이라도 해서 다른 세상을 맛보고 싶지만 죽지못해 사는 삶이 무에 그리 무지개색이겟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