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0> 흡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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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석
꽁초만 남은 육신을 전기의자에
필사적으로 얹어놓고 끝까지 태운다
소각장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빗살무늬 중독증후군의 일그러진 문인화文人畵는
후손後孫의 눈물을 자아낼 것이다
한 시대의 울분과 한숨이 그렇게 버무려져서
화랑담배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장인匠人의 솜씨로 집요하게 빨아 당기는
마지막 한 모금의 자학自虐을
어떤 문화인류학자가 판독해 내려는지
냉동설한의 구름은 그 흔적을 파묻는 일로 분주하다
객석은 금연구역이어서
문상객들 중의 누군가는 그가 점유한 오아시스를
은밀히 탐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흡연석이 없다면 시간을 어디에서 배출할 것인가
알코올과 니코틴 이외에도 예를 들자면
꽃들의 목을 분질러서 병에 꽂는다든가
물고기를 바늘로 꿰어 올렸다가 풀어주게 하는 것 같은
기이한 문화적 탈출구가 필요하다
폐암환자인 그가 그렇게 구름에 섞이는 시간에
복도 바깥 벌판에는 유채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댓글목록
조경희님의 댓글

흡연석에 몸을 앉히는 일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니...
붓끝이 예리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石木님의 댓글의 댓글

어느 자리인들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흡연석은 그 중에서도 직행노선의 출발역에 해당하는
위태로운 곳이겠지요.
저는 20년 전에 담배를 끊었습니다.
방문하여 댓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담재와 인연은 없지만 화랑담배...먼 옛것을 담습니다
알고도 못 버리는 중독이 무섭습니다.
石木님의 댓글

군가의 가사로 등장했었던 화랑담배의 이미지가 주는
'비장한 결의'의 분위기를 원용하고 싶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효과를 거두었을까요?
아무튼 저는 군복무 시절에 화랑담배를 실제로 피웠던 사람이므로
그 담배를 시에 끌고 들어올 자격요건은 갖추었다고 봐 주셔야 합니다.
댓글을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