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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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엔 / 안희선
너무, 멀리 왔나 봅니다
세상이 날 밀어낸 만큼,
나는 나로 부터도
아주 많이 멀어진 것 같습니다
부끄럽게도 남의 땅에 사는 처지라,
늘 영혼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뿌리 없는 몸도 따라,
시름하니 아픈가 봅니다
한 때는
꿈을 노래하는 마음이 이정표(里程表)였는데,
지금은 희미한 윤곽만 남긴 채
그저 알량하니, 밥 먹고 살아가는 일만이
제일 거룩한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라도 한 편 쓰려고 하면
가슴 깊은 곳에 또아리 튼, 심한 현기증만
모락 모락 하얗게 솟아 오릅니다
아득히 흘러간 건 세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였던 모양입니다
차가운 계절에 문득, 되돌아 보니
걸어온 길은 비록 나를 닮아 황량했지만,
베풀어 주신 정(情)으로 이따금 환했던 흔적도
절망의 아팠던 길 모퉁이마다 눈물겹게 비추입니다
오랜 세월, 빈 가슴에 그리도 많이 찢겨져
허공에 펄럭이는 그리움 하나,
바람에 실려 띄워 봅니다
혹여 바람이 전하는 소식, 받으시거든
포근한 햇살이나 한 줌 보내주소서
세월의 막차에 실린
까마득한 외로운 잠 속에서나마,
그대처럼 따뜻하고 싶습니다
이 겨울엔,
댓글목록
최승화님의 댓글

안희선시인님! 저도 이제 오학년이 되어서 몇 차 지나면 막차될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차가 몇 대 더 남았으니 절망 보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꾸~벅!(새뱃돈은 언제 주시남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세뱃돈.. 카드로 긁어도 되나요 (할부 3개월로 - 웃음)
시인님도 새해, 복 이따만큼 받으시길요
감사합니다
誕无님의 댓글

근기 예리하고 정 많으신 분이
타국에서 너무 오래 생활하셔서
지독하게 그리운,(조국만이 아닌 다른 그리움을 포함한)
이 그리움으로 말미암아
병이 빨리 진행되었고, 악화되었다 봅니다.
모든 병은 처음에는 몸으로 오지 않고
반드시 칠정(심칠정지부침)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칠정에는 '그리움(사랑할 애, 그리워할 사)'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은 보여지는 육체의 질병으로 나타나니까요./
진짜 사람 살리는 의술을 펼치는 명의들은
병이 잘 안 낫을 때는
"평소 안 먹던 음식을 먹어보고 환경(터)을 바꾸어 보라" 했지요.
誕无님의 댓글의 댓글

시인님께 가장 적합한 이 터라는 것이 고국이잖아요.
고국으로 돌아오실 여건이 되시면 꼭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죽어서는 못 볼 거 같은데, 우리 살아서 봅시다. ㅠㅠㅠ
1급수 흐르는 곳에서 전원생활하셨으면 합니다.
공기 좋은 곳에 살면 건강에 굉장한 도움이 됨을 잘 아실 것입니다.
성철 선사는 자신의 근기가 예리함을 알고
/ 나는 근기가 예리해서 속세에 내려가서 살면
/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다/고 말했지요.
자신은 / 속세에 내려가서는 못 산다/고 했지요.
근기 예리한 분은 똑같은 병이라도
몸이 빨리 상하고 몸에 그 병명이 진하게 나타납니다.
== 몇 해 전부터 이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
안희선님의 댓글

16년 전.. 몸만 달랑 캘거리 공항에 떨구어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날씨는 눈 시리도록 얼마나 청명했던지
(도합 16시간 비행 끝에 육신은 너무 피곤하고,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웠는데 말이죠)
가슴은 늘 고국에 살고, 기억도 늘 고국에 머물러 있지만,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은 불빛 없는 항구의 처연凄然한 모습이어서
차라리 따스한 궁기窮氣가 흐르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남의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괴이쩍은 조화調和로 말미암아,
더욱 괴이쩍게 늙어버린 심경心境 하나 풀어내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에 머물러 주신 최승화 시인님,
탄무 시인님..
감사합니다
예시인님의 댓글

애잔합니다.
그래도 요즈음 인터넷이 있어, 고국 소식을 이웃집처럼 들을 수 있어서,,,,좀 덜하긴 하지만,,
공기도 다르고 물도 다른 것은 확실 하지요.
하지만 지금 내가 고국에 가면 또, 그 곳에서 적응 할 수 있을런지ㅠ.ㅠ.
어디가나, 이제는 이방인 같더라고요....
한국 위상도 높고 이제는 한국 문화도 인터넷으로 쉬이 접혀서, K-Pop 이니 드라마니,,
아이들은 오히려 한국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터...
저는 그런 아이들 보며..에구..! 하면 지나가기도 하고......사람 사는 것 어디나 똑같고.....
내가 있는 곳에서 그날 그날 가꾸어 나가는 것만이...최상이라는 생각...그래도 언젠가 돌아가야겠지요^^
텃밭 가꾸어서,,싱싱한 채소를 바삭바삭 씹어 먹으면서..헤헤..
즐거운 생각, 마음이 되시길 바랄께요.^^
안희선님의 댓글

그래요,
이젠 정말, 어디서나 이방인이 되었단 느낌
귀한 걸음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정숙 시인님,
이방(異邦)의 나그네 / 안희선
그는 언제나, 혼자이다
그가 사랑을 이름짓기 위해,
힘겹게 애쓴 자취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다
어떠한 사람도 그를 보지 못하고,
또 그를 찾는 사람도 없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조차 서먹해지는 순간,
불현듯 과거도 사라지고 미래도 없어진다
오직 현재로서만 존재했어라,
그의 길고 지루한 여로(旅路)는
현재로서만 존재했어라.
그는 이미 여러 번 여행을 떠났었지만,
갈 곳을 정해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단한 세월 끝에서 이제는 그도
삶의 종착역(終着驛)을 꿈꾸며,
조용한 눈물을 흘린다
그의 가슴에서 솟아난
피를 닮은 그리움은
각혈(咯血)하는 꽃이 되어,
미칠듯이 사방에 피어 오른다
정(情) 없는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던
어리석은 한 감정에 의해,
따뜻해지는 그 비현실적인 것을
아프게 꿈꾸면서...
그러나, 오늘도
그는 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