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의 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폐인(廢人)의 사랑
점멸등 깜박이는
먼 밖으로 눈이 내리곤 하였다
만조는 오지 않았다
황발이 집게발은 불을 껐다
*
흘수선 재던 물결 얘기 마른 목 넘긴 알약 같은 얘기
검은 만티아 두른 꽃시곌 풀었다 해바라기 진
백 년 후
어느 늦은 주막
홍안(紅顔)이 처마에 걸리었다
오래전 멀어진 하구의 날이 떠올라
손금을 들여다본다
*
말미암아 아파했고 이윽고 잃어버렸고
마침내 살아있었다……
한 발 접고 달아나는 저, 앙감질
또다시 기약하는 백 년 후,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 노트
이것은 실패와 단절로 완성된다. 해마가 이것을 지고 해저를 걸을 때 무겁게 또렷해진다. 가장 간단한 구조나 골격을 가졌으나, 그 속을 알 수 없고 그 깊이를 잴 수 없다. 다만 등을 할퀴거나 입술에 묻었나 자꾸 확인해 볼 뿐이다. 이것은 저승까지 지고 갈 때 지게 뒤에 펴진 바지게 위해서 하얗게 흩어진다. 허파꽈리를 부풀리다가 심방 심실로 흐르다가 중심에 맺힐 때 가장 격렬하다. 이 은밀한 성소는 우리가 만들어진 기관과 기억과 회귀본능과 연관이 있다. 아늑한 소도에 숨을 때 희미한 꼬리가 만져질 때가 있다. 본능이 불을 켤 때 가장 눈부시고 본능이 불을 끌 때 숨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완성되려면 'ㅈㅗㅈ 빠지게' 'ㅈㅗㅈ 나게' 달려야 하는데, 그리하여 다 빠지고 다시 달려도 자꾸 묻게 된다. 어디 매달려 있느냐고. 정체를 모르겠다고 무조건 더듬어보는 건 곤란하다. 몸에는 맥이 흐른다. 맥이 끊기는 걸 조심하시라. 말뚝은 적재적소에서 유효하다.
*
그러나, 그러나 이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 용쓰고 매진하라.
심장을 폐(廢, 閉)할 듯한데 숨쉬게 하는 게 폐(사랑할嬖)다.
시 쓰는 당신, 시 읽는 당신, 시보다 뜨거운 몸속으로.........!
n.b.
폐(嬖)를 파자하면 피할피(辟)+여자(女)가 되는데, 피하고 싶다고 여자가 머리에 지고 있는 형상이나,
이것은 옛날 조어 방식이라서 그렇다. 예전에는 밤이 길고, 일손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날마다 달라, 달라, 피곤해, 피곤해 혼자 손빨래나 해... 그런 시절이 있었겠으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嬖의 女를 지우고 男으로 해야 맞다.
마십(馬十*)은 요(凹)에 철(凸)을 박는 것. 그것이 우주가 운행되는 원리일 것인가? 우주는 팽창하지만
포개지기를 원한다. 태양계가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가고 있는 이유.
약 37억5천만 년 뒤 합궁한다. 얼마나 간절하고 짜릿하겠는가!
▶참고◁
(十: 눈, 코, 귀의 여섯 구멍과 입, 항문, 요도(尿道)의 세 구멍을 통틀어 구규(九竅)라 이른다, 그 최종이 십인데 된소리 씹을 통상 쓴다. 상대적으로 'ㅏ'처럼 달린 것이 세워지면 'ㅗ'가 되는데 이것은 자지가 좆으로 된 축약된 근거. 이것 중 제일은 흑형들의 것이 아니라 고래다. 대략 직경1m, 길이 3m, 고환 무게 1톤. 고래가 괜히 고래가 아니란 뜻. 고래 귓구멍은 2mm정도, 떨림에는 민감하지만, 안들려, 안들려 하며 집중하는 그들을 고래라 이른다. 이를테면 술고래 등등. 고상한 척하나 퇴폐적인 건 사람이고, 퇴폐적이나 고상한 포유류는 고래다. 겉으론 고상한데 속으로 속물적인 동물이 사람들이지만, 활자를 읽고 흥분하는 기이한 사람은 되지 말자고... 본능에 솔직하되 잡것은 되지 말자고... 이 연사, 외,,,에 칩니다.)
(馬十은 어의 전이되면 말씹[言十]이 되는데, 그러므로 시는 언어와 하는 거다, 어떻게, 찐하게.)
`
활연님의 댓글

인연이 아니라는 말
장만호
당신을 보내고
천 년을 살았다는 제주도 비자나무
상록의 활엽을 보네
잎잎마다 바라보는 향이 다르다지만
모두가 저렇게 푸르다면 분명 시간의 국경을 넘어온 천 년의 이파리가
저 잎들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혼자서 바라보았을 천 년의 석양과
천년의 밤하늘과
천 겹의 적막을 생각하며
나라는 나라와
당신이라는 나라의 국경을 생각하며
인연이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억울한가
우연에 기댄다는 말은
얼마나 쓸쓸한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과장없이 무너져 우는 그늘 속에서
천년의 이파리가 가만히 그 울음을 듣고 있네
`
활연님의 댓글

사랑은 코카인보다
- DJ Ultra의 리믹스 : 김소월「여자의 냄새」+ The Czar「Drug」
장석원
나는 접붙이기에 성공했다
나와 당신 드디어 들러붙었다 홀례붙었다
잡종의 시대는 아름답고 혼혈 미인은 유혹적이다
나는 껴안았어요 우리는 사랑을 나누지요 우리는 용해될 거에요 혼합될 거에요 포화용액이 되면 아무도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어요 사랑이 우리를 증발시키는 순간도 오겠지요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속에서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말만, 형제도 없이 당신의 몸이 사라지고, 바람의 입술 사이를 오가겠지요 내 욕망에 당신이 몸을 던진다면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가득한 늦은 봄의 하늘 아래에서 아기를 다루듯이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줄 거에요
당신의 쾌락은 내가 만들어요 손과 혀에 당신이 붙어 있어요 내게 모든 것을 허락한 비무장의 당신 그것이 사랑이겠지요 내가 없다면 당신의 사랑도 없어요 당신이 사라진다면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은, 내 짧은 쾌락은 끝나겠지요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혼혈 미인과 나는
비린내 번지는 뱃전에서 합체했어요
바다는 고요하고, 지켜보는 갈매기는 흥분하고
나는 통증도 없고 당신은 눈물도 모르고
도살장에 끌려간다 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좋아요 사랑이 코카인보다 좋아요
당신의 사랑의 냄새는 위험하지 않아요
정석원
1969년 충북 청주 産. 2002년《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
활연님의 댓글

이름, 너라는 이름의
이현호
누가 너 따윌 사랑하겠는가. 두 번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너라는 이름.
오늘밤도 차고, 무딘 바람은 전부 네 호주머니에 꼬리를 남긴다.
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궁리하는 세계는 네 입술로 가득하다.
조용히 너, 라고 발음해볼 때 진동하는 음원(音源)의 국경에서는
파란 목도리의 소년이 삐뚤빼뚤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빈 교실.
언젠가 만든 적 있는 나뭇잎 책갈피는 너와 선생들 사이에서
잎 꼬리를 올린다. 구만 구천 권의 경전(經典)을 넘겨온 작은 손바닥.
그리고
창밖, 검은 물 밑에서 한 소년이 홀로 구르는 시소의 높이는
모든 존재의 극점이다. 네 이름은 폐타이어처럼 반쯤의 허리를 지하에 두고.
영원히 졸업을 앞둔 신(神)들은 모래밭에 모여 두꺼비집을 짓는다.
두껍아, 두껍아, 둥글게 침묵하는 집. 집을 짓지 않는 두꺼비들의 집.
인두겁을 쓰고 결코 살아 있으려고 하지 마라. 네티, 네티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파리의(물속에서만 투명한) 낯빛으로
눈(雪)을 뭉치듯 손을 꼭 잡으며 사랑해, 라고 말할 때
오래도록 하나의 그림을 그려온 별들은 스스로 잊어가는 길.
오늘밤도 차고, 한 난폭한 손길이 별들의 가계도(家系圖)를 찢길 바라는 시간.
가늘게 떠는 마천루의 유리창들이 교감하는 세계는 빈틈으로
그들먹하다.
네가 마지막 잉크로 꾹 너, 라고 적은 노트의 뒷면에서는
천 년 전 마야 소녀가 달력을 세고 있다. 검은 고양이를 무릎에 얹고.
벙어리장갑을 낀 아이가 무심한 발길로 툭툭 굴려온 행성들을
맞수가 떠난 바둑판을 오래 내려다보는 노인처럼, 태양은 쏘아본 것이다.
밤과 낮이 부딪치는 경계에서 바둑돌같이 단단해진 구름들,
꽁초를 버리듯 던져버린 이름들. 촛불의 정수리가 가늘게 신음한다. 후,
후, 허공에 길을 내는 연기들. 왼발 다음에 오른발이 오는 슬픔.
끝내 뒷모습을 보이지 말 것. 너는 악수하는 법을 모른다, 손을 떠나서는.
여기저기 걸터앉는 지극히 사적(私的)인 그림자들의 야합.
너 따위를 누가 사랑하겠는가. 잊힌 책갈피처럼 한 페이지의 시간만을 표지(標識)하는
너라는 무게.
계간 『시작』2008년 겨울호
이현호
1983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2007년 《현대시》로 등단.
활연님의 댓글

만월, 애태타愛鮐它
이혜미
애태타, 당신의 굽은 등으로 깃드는 밤
당신은 낙타처럼 슬픈 사나이, 당신을 좇아 앞뒤면이 거울인 관 속에 누워 만월을 기다렸다 애태타, 허리가 부러져 죽은 꽃들의 영혼이 당신을 이 척박한 땅에 부려놓았는가 당신에게로 도망가는 나의 유령들이 부풀고 젖어 등이 시리다 당신을 두드리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그 굽은 등 속으로 내가 들어앉고야 만 밤 애태타, 당신을 폐허가 되도록 경애敬愛하여 이 밤을 덮은 모든 주름들이 나를 향한다
사랑하는 나의 꼽추, 당신의 슬픈 잉여를 질투하며 세상의 모서리들이 다투어 쏟아졌고 어떠한 바깥도 거느리지 않은 채 달이 제 내부를 드러내곤 했었다 한 상 가득 병病을 차려둔 밥상에서 꿈과 뼈는 깊고 또 멀어, 내가 더럽힌 종이 위로 헛것들이 길게 누웠는데 애태타, 평생 당신의 시간만을 찾아 헤매다 죽은 여인도 있었다. 당신을 위해 등의 언어를 배우고 구부러진 것들만을 사랑한 남자도 있었다 잔인한 꼽추여. 다시 어떤 따스한 궁宮이 있어 활처럼 당겨진 그대 가슴으로 새벽의 등뼈가 깃들 수 있겠는가, 찬란한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의 곤혹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하나의 거대한 물음이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비로소 오롯한 무덤이 되었던 것처럼
애태타, 당신의 무덤에 그 어떤 치요도 옮겨 심지 못해 울며 떠나간 이들은, 쏟아져 내린 시간의 주검들을 등에 인 채 오래도록 어둠 속을 망명해야 했다네 그대 창백한 이마가 무릎에 온전히 닿을 때까지, 그렇게 한없이 둥글어질 때까지
이혜미
1987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06년《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이 시에 나오는 애태타와는 한 글자가 다른 애태타(哀鮐它)가 <장자>에 나오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못 생긴 남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본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그의 첩이 되겠노라고 부모를 졸랐다고 하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공자님께서는 덕이 뛰어나면 그 형체는 잊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망각이란 잊혀질 수 있는 것을 잊지 않고, 잊혀질 수 없는 것을 잊는 일이라고. 그럼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게 참된 사람이라는 말씀인가요? 꼽추를 사랑하는 이야기, 거기에 성현만 아시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네요." 김연수(소설가)
노정혜님의 댓글

시인님의 높은 시향
감히 너무 볼 수 없습니다.
주신 글에 깊은 감사,
늘 지도 편달 부탁합니다
활연님의 댓글

(초고가 너무 산만해 대폭 생략했습니다.)
뭐 그리 높낮이가 있겠는지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