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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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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2건 조회 1,290회 작성일 16-01-24 03:00

본문

아수라(असुर)



  종루에서 떨어진 무딘 촉
  평활에 걸어 흰 마당이네

  파란 숭어리 무른 햇발 노적하고 지나가네
  벽에 핀 꽃에 눌려 눈썹이 휘네

  
  금동은 이역만리 굽어보고
  은화는 수행

  금화는 불가촉이네

  세 얼굴 여섯 팔 
넌출진 몇 송이 꺾어 챙기네 

  나의 정토는 얼룩무늬

  얼룩덜룩 울렁증이 사자후하듯이
  계단을 헤아리면 발이 줄어들어
  
  아미타 손바닥에 떨궈진 초승

  망토 두른 여자 반쪽 남자
반쪽 

  한 얼굴이 억장 계단을 되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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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시인에게 미안하지만, 퇴고 요령을 생각함.

【ⓐ】

밀레니엄 송가
  - 분노 조절법 고급반

    서효인



  그로부터

  네 시간 전, 우리는 음습한 중국집에 모였다 바닥에는 불구가 된 젓가락이 나뒹굴었다 젖은 테이블 위에는 누군가 흘린 국물이 굳은 채로 흘렀다 우리는 모두 굳어 있었지만, 어쨌든 흘렀다 친구는 묵시록처럼 탕수육을 씹으며 죽은 엄마에 관하여 쉽사리 떠들었다 다른 친구의 아빠는 행방불명, 곧 아빠가 죽을 거라 소리 낮춰 웃었다 가서 죽은 엄마와 나눌 금칙에 대해 끌끌거렸다 사랑과 전쟁이던 여러 개의 세기가 한꺼번에 지나가고, 우리는 배갈을 삼키며 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여덟 시간 전, 수화기 너머 합격과 불합격의 갈림길에서 격렬하게 폰 섹스를 했다 낮은 포복으로 우리는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격렬한 포옹도 포복도 추억으로 남겠지만 우리에겐 세월이랄 게 없었으므로 남아 있을 추문이 없었다 합격입니다 기쁘지 않았다

  세 시간 전, 곧이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참 심심하겠지 밀레니엄이라고 발음하면 아이돌 그룹처럼 명징한 새로움이 도래할 것만 같았다 심심한 건 죄악, 턱 아래로 떨어지는 국물의 무료한 낙하, 아무도 닦아 주지 않을 시간들이 틀어 놓은 TV처럼 지나갔다

  열 시간 전, 성당을 다니던 우리는 수녀를 지망하는 누나의 고운 종아리에게 열심히 연애를 걸었다 애 밴 고양이 같던 그녀의 종아리, 욕망과 희망의 난잡한 솜털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섯 시간 전, 누나가 희디흰 허벅지 위로 치마를 걷어 올리자 무수한 솜털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산산이 벗겨져 교리실 바닥에 뒹굴었다 친구는 밀가루만 튀겨진 싸구려 탕수육처럼 갈라진 울음을 뱉었다 교리실의 십자가가 비틀어졌다 감추어진 모든 것이 무참히 드러나던 날

  그로부터 안녕, 누나의 천년 묵은 체위를 생각하며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놓아주었다 안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빌어먹을, 일어나지 않을 밀레니엄, 안녕, 이라 말할 때의 경계로, 그로부터




【ⓑ】
밀레니엄 송가
 - 분노 조절법 고급반

  서효인


  그로부터

  4시간 전, 우리는 음습한 중국집에 모였다. 바닥에는 잘린 나무젓가락이 불구로 나뒹굴었다. 젖은 테이블 위에는 누군가 흘린 국물 자국이 굳은 채로 흘렀다. 우리는 모두 굳어있었지만, 어쨌든 흘렀다.
  친구는 묵시록처럼 탕수육을 씹으며 죽은 엄마에 관하여 쉽사리 떠들었다. 다른 친구의 아빠는 행방불명이었다. 곧 아빠가 죽을 거라 소리 낮춰 웃었다. 가서 죽은 엄마와 나눌 금칙에 대해 끌끌거렸다.
  사랑과 전쟁이던 여러 개의 세기가 한꺼번에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빼갈을 삼키며 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5시간 전, 수화기 너머 합격과 불합격의 갈림길을 들으며 조용히 폰 섹스를 했다. 낮은 포복으로 우리는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격렬한 포옹도 포복도 추억으로 남겠지만 우리에겐 세월이랄 게 없었으므로 남아있을 추문이 없었다.

 2시간 전, 곧이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참 심심하겠지. 밀레니엄이라고 발음하면 아이돌 그룹처럼 명징한 새로움이 도래할 것만 같았다. 심심한 건 죄악, 턱 아래로 떨어지는 국물의 심심한 낙하, 아무도 닦아 주지 않을 시간들이 죄악처럼 지나갔다.

  10시간 전, 성당을 다니던 친구는 수녀를 지망하는 누나의 고운 종아리에게 열심히 연애를 걸었다. 애 밴 고양이 같던 그녀의 종아리, 욕망과 희망의 난잡한 솜털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6시간 전, 누나가 희디흰 허벅지 위로 치마를 걷어 올리자 무수한 솜털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산산이 벗겨져 성당 교리실 바닥에 뒹굴었다. 친구는 밀가루만 튀겨진 싸구려 탕수육처럼 갈라진 신음을 뱉었다. 교리실의 십자가가 비틀었다. 감추어진 모든 것이 무참히 드러나던 날, 그로부터

  안녕, 바닥은 영원히 바닥이라 했던 누나의 천년 묵은 체위를 생각하며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놓아주었다. 안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빌어먹을, 일어나지 않을 밀레니엄, 안녕, 이라 해두었다.

    계간 『시와 사상』2009년 봄호


  서효인
  1981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2006년『시인세계』로 등단.

활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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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손진은

 

  세상 가장 맑은 눈을 가진 생물은
  파리라지
  수천 홑눈으로 짜 올린 겹눈
  흰 천보다 순금보다 거울보다 맑게 빛나게
  두 손으로 두 팔로
  밤이고 낮이고 깎아낸다지
  그렇게 깎인 눈 칠흑의 어둠도 탄환처럼 뚫을 수 있다지
  꿀이 있는 꽃의 중심색이 더 짙어지는 걸 아는 것도
  단숨에 그 깊고 가는 통로로 빨려드는
  격렬한 정사情事도
  다 그 눈 탓이라더군
  공중을 날면서도 제자리 균형 잡아주는
  불붙는 저 볼록거울!
  세상에 절여진 눈 단내가 나도록 깎고 깎아야
  자신이든 적이든 먹잇감이든 제대로 보이는 법
  같은 태생이면서도 짐짓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손 비빈다고
  날마다 닦아야 할 죄가 무어 그리 많으냐는 뾰르퉁한 입들에게
  폐일언하고
  눈알부터 깎으라고
  부신 햇살 떠받치며 용맹정진하는
  파리 대왕, 파리 마마들
  소리들이
  천둥같이 쏟아진다



`

활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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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조유리

 

 
 #1)

 빈 백지를 마주하고 앉으면, 나를 벗어 내보여야 한다는 울렁증이 인다. 울렁증을 재우기 위해 손가락 닿는 대로 잉크를 찍어 발라본다. 음지에 엎질러지는 입자들이 불그죽죽하다. 이것은 겨드랑이에 돋는 지느러미에 관한 이야기, 라며 잉크 한 줄 엎지르는 사이 먼 데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곱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다. 지문이 삭아 읽을 수 없는 행간 속에 엎드려 있는 꽃들. 사각의 문장 밖으로 한 번도 문을 밀고 나간 적 없어 하나의 장르만이 잠식한 저 비밀스런 영토에서 가끔은 꽃잎 같은 은유들이 쏟아지기도 하였으리라. 우격다짐으로 꽃 피운 몸엔 그러나, 헐겁게 구겨진 활자들 뿐. 나는 바람이 밑줄 쳐 준 문맥들을 어쩔 도리 없이 받아 적는다. 한 때의 꿈 같기도 바람의 주술 같기도 한 씨앗들은 어디로 이식되어 갔을까? 꽃대가 주저앉은 산당화, 붉은 무늬 짜던 문장들이 화기를 못 견뎌 확확 피어오르는 살 냄새를 삼키고 있다. 붉은 낱알 몇 개 구르는 어느 어귀, 제 상처를 육필 할 수 없어 잡풀 숲으로나 늙어가고 있는,

  여기는, 바람이 色을 쓸어가 버린 꽃의 정원이다.


  #2)

  닫힌 창틈 새로 예의 불그죽죽한 바람이 함부로 새어 들어오는 밤이 있다. 그 밤은 손톱 길이나 발 문수를 재어보거나, 개불과 산낙지를 즐겨 먹는 생식성에 관해서 중얼거리기에 제격이다. 백 년이나 한 이 백년 쯤 전 전생에, 가슴팍을 뚫고 들어온 총구멍 속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마음 가 닿는 자리마다 통금이 해지된 꽃밭을 노니는 기분을 슬게 해 준다. 때가 익어 까무러칠 것 같은 화기가 살기의 다른 키워드임을 죽었다 다시 태어났을 즈음에나 깨달은 일이긴 하지만, 꽃밭은 내 몸에 칠해진 색의 사유방식일 뿐 트라우마의 대안요법이 아니란 걸 안다. 그저 가끔 울적하다, 직직 갈겨쓰고는 내가 나 자신을 아는 체 하는 짓 따위를 통해 천일야화쯤 되는 꽃대들을 길들여 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패턴의 취향이 오자나 탈자 없이 온전히 나를 변론해 줄 것인가, 따져보는 순간 또다시 울렁증이 도진다. 옆구리라도 터서 우겨넣고 싶은 전망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닦고 나면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얼룩들. 저 얼룩 속에 끓고 있는 기미가 철마다 신었다 벗은, 즐겨 입맛 다신, 쉼 없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 꽃의 색기라 단정할 수 있을까? 

  이것은, 목젖을 빨다 간 바람을 향한 질문이다.

  #3)

  이제, 꽃밭을 뭉갠 무늬들에 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발음도 불분명한 뱃가죽을 밀어 꽃술을 살처분 한 인플루엔자에 관해서, 의미도 익기 전 몸을 따먹은 열매들에 관해서, 소낙비에 젖지 않는 당신을 수천 번 모른다 하였는데도 독을 쏘아붙인 느낌표에 관해서, 난간에 관해서, 편두통에 관해서, 푸르딩딩한 불그죽죽한 마려움에 관해서, 지금이라도 따지고 덤벼들어 볼까 한다. 하지만 내게 있는 연장은 지느러미 두 장과 찢어진 목젖과 진물 뚝뚝 흘리고 있는 분절음들뿐. 소요하는 상처란 제 살갗을 벗겨 거죽째 울어보지 못한 자들의 엄살에 불과하다, 라고 썼다가 북북 찢어버린 밤이 있다. 이후로 내 정원엔 날개가 참혹하게 찢겨진 좀벌레나 잠자리들이 뭘 모르고 찾아왔다가 칼집 난 상처에 화들짝 놀라 도망질쳐 갔다. 관계의 폭력성이란 꺾거나 꺾이기 이전, 동물성 농담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이것은, 찢어진 볼기짝과 그리움과의 관계다.

  #4)

  불그죽죽, 푸르딩딩한, 이라 쓰고 잠시 쉼표를 눌러 놓고 들여다본다. 이쪽에서 보면 위독하고 저쪽에서 보면 발화하는 컬러다. 손목을 긋기 위해 풀어놓았던 시계 시침에 불려나간 밤은 위독했으나,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대신 울어준 꽃들이 있었으므로 상처란 단지, 저 꽃들이 살다 간 자국일 뿐이다. 꽃잎 한 장에 묻어 있는 얼룩을 추억하느라 내 손목은 여린 순들만 골라 모가지를 똑똑 분질러 창가에 걸쳐두었다.
  칼집 난 목줄기마다 송글 거리며 맺힌 꽃 멍울들!
  이상은, 비등점을 관통한 화농에 관한 소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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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나무의 계절

        조유리




 부러진 손톱 끝에서 기침이 터져 나온다
 여기는 내부를 다 후벼 파낸
 바람의 허파 속
 드나드는 숨소리 거칠어 산목숨도
 제 혼을 알아볼 수 없는 시간이다
 붉다거나 푸르다거나 하는 것은
 나를 아주 놓아버리기 이전의 자기최면

 밭은기침처럼 참혹하지, 사랑은
 흉부에 몇 마리 새들이 놀다가는 동안

 헛것처럼 알을 품고
 뜨개옷 짓고
 된장국을 끓이고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동안

 나무가 뱉어 낸 꽃들이
 사지에 비릿한 체온을 바른다

 이 계절 발열하는 소름 시퍼런 3월의 부적이다,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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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사나(Shavasana)

    조유리

 

 
죽음을
개었다 다시 펼 수 있나
깔았다 다시 개어 윗목에 쌓아두고

목숨을 되새김질해 보는 체위
숨골이 열리고 닫히는 허구렁에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나로부터 나 조금 한가해지네

감은 눈꺼풀을 디디며
천장이 없는 사다리가 공중을 빗어 올리고

목덜미로 받아낸 악장의 형식으로
죽음을 게송해도 되는 건가
백 개의 현을 건너 걸어나간
먼 저녁이 되어

이 세상 계절을 다 물리고 나면
어느 사지에 맺혀 돌아오나 다시
누구의 숨을 떠돌다
바라나시 강가(Ganga)에 뛰어드는 바람이 되나
뜬 듯 감은 듯 어룽어룽 펄럭이는
눈꺼풀이 산투르 가락을 연주하는 동안

어제 아침 갠 이부자리가 내 숨자락을 깔고
기웃기웃 순환하는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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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 위에 단애(斷崖)를 세워 두고

    조유리

 

 
 
씻김굿 하는, 저 꽃
죽은 꽃잎들이 산 이름을 부르는구나
우리 오래전 태어나
살빛을 익혔지
핏내 빚어 화전을 부쳤지
 
너에게서 흘러나온 표정이 나의 입술로 피어날 때
두근거리는 맥박이 허공에도 맺혔지
바람 부는 방향대로 무작정 휘었지
입꼬리의 흰빛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낮밤 없이
분분할 때
 
네 입술 끝에서 넘어온 죽은 사향나비의 체액
입김을 후 불 때마다
세상 모든 꽃에서 사람의 냄새가 풍겼지
사람도 꽃으로 살다 간다며 피고 지는 때
 
쇄골 위에 단애(斷崖)를 세워두고
 
초사흘 달을 지르는 작둣날이 붉구나
붉어, 구만리 병풍 너머가 어찔하구나
 
여기서부터 우리 다른 세상 얼굴이 되자
눈 코 입 벗어버리고
가장 연한 살로만
수의를 입은 눈으로 만져보면 부드럽게
천지 깜깜해도 무섭거나 흉하지 않게
성성한 죽음의 안감이 되어
 
몸 바꾸는 피 조용해진다, 저 산딸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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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의 거울
 
  조유리

 
 
막이 오르기 전 태어났지
흰 발목에 검은 토슈즈를 신은 낮과 밤
열 발톱 끝에 송곳날을 박자
무도회가 시작되네

어디서 불려 나왔나, 나를 안무하는
춤을 피해 어디로 도망치는 중인가
 
깃털을 나부껴 바람을 호숫가로 나르며
포물선을 그리는 새의 기낭 속에서
무한히 피었다 파열되는 거울,
뒤꿈치를 든 채 종종걸음치며

나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점프를 하네
거울의 파동에 스텝을 맞추며
거울의 관절로
 
적막과 소음
두려움과 욕망이
공중에서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네
날개를 스칠 때마다
우아하게 태어나 칠흑 속에 부서지네
 
여긴, 내가 태어나기 전 무대
검은 피아노 건반들 군무가
탯줄을 베러 몰려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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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야 나마스카라

  조유리

 
 
열두 폭 심지에 태양이 지펴지네
마음의 북쪽으로 구름떼를 흘려보내며
 
나를 대신하여 먼 곳의 나를 불러들이지
 
발자국 수를 헤며
모르는 나와 눈인사 나누네, 한때
내 몸을 에워싼
검고 희고 푸른 인연들
 
그것들을 돌보는 건 사람의 일이 아니어서
 
몸이 흘러내리는 동안 마음이 여며져
흰 깃과 푸른 깃이 검은 깃털들 사이에서
먹 가루처럼 흩어지네
다시 모여들어 허방을 메우네
 
들여다보면
내 것이 아닌 입술로 삼켜버린 무수한,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또 다른 입구가 되어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먼 사바가 되어
 
푸르고 흰 깃들이 검게 타오르는 동안


 
* 수리야 나마스카라 : 요가의 〈태양경배자세〉라고 불리며, 모든 생명의 근원적 힘인 태양을 경배하는 의미로 열두 가지 요가 동작이 물 흐르듯 깊고 고요하게 연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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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 속, 검은 잠

      조유리

 

 

한 삽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고

눈발들이 언 손 부비며 사람의 걸음걸이로 몰려온다
다시 겨울이군, 살았던 날 중
아무것도 더 뜯겨나갈 것 없던 파지破紙처럼
나를 집필하던 페이지마다 새하얗게 세어

먼 타지에 땔감으로 묶여 있는 나무처럼 뱃속이 차구나
타인들 문장 속에 사는 생生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뺨을 오해하고 후려쳤던 날들이

흑黑빛으로 얼어붙는구나
어디쯤인가,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감정으로 꽃들이 만발한데

죽어서도 곡哭이 되지 못한 눈바람이 검붉게 휘몰아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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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종루에서 흰 발바닥이 흘러내릴 때

        조유리   
 
 
 
저만큼인가, 흰 나비와
나와의 거리
 
삼베 보자기를 풀면
저쪽 세상이 한 보따리 펼쳐진다
 
상여를 메고 꽃놀이 가신 큰아버지
암 병동에서 성냥불을 쬐던 외사촌
까맣게 탄 망막 저편에
태를 놓아버린 첫아이
 
어느 먼 생이
 
쇠종에 수의를 입혀 저녁의 무덤가로 끌고 가는 걸까
무수한 밤을 살아온
한 편의 이야기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태어나 첫 울음이 한 약속을 믿었지만
생은 결국 나에게 불효했다
눈물이 마르는 동안
얼굴은
 
식은 찻물로 돌아가고
누가 묽은 나날을 마흔 번 넘게 우려 건져내 버리는가
 
웃고 울다 쓸쓸해져 올려다보면
허공을 흘러다니는 나비의
흰 발바닥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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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네리스

    조유리

 
 
 
나는 화성의 협곡에서 태어났다
마른 강줄기를 따라 척추가 생겨났고
어둠이 뼈를 드러낼 때마다 은하수가 붉게 흘렀다
 
별들은 눈을 감고 태어나 제 안의 어둠이 캄캄해서 허공을 떠돈다는데
 
밤하늘을 우연히 올려다볼 때 반짝 켜졌다 다물어지는 것은
누군가의 젖은 암흑이 흘러내린 찰나다
홀로 떠돌다 박힌 별의 눈물로 인간의 두 눈은
서로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공에 무덤을 판다
이동하는 별자리를 따라 무덤들이 떠다닌다
 
수많은 별자리의 신화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빛나던 성운(星雲)
 
우주 바깥의 생애는 제 고독 속으로 푸르게 흩어진 별빛처럼 찬란할까
 
열두 번쯤 물렸던 젖 맛을 기억하지 못하고 죽은
눈먼 별들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눈동자에 갇혀 출렁인다
반짝, 푸른 살빛을 떨며



  * 마리네리스(Valles Marineris) : 화성에 있는 태양계 최대의 협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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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위의 누드들

      조유리

 

 
턱을 괴기엔 올라가야 할 계단이 너무 많고
눈을 맞추려니 난간이 가파른데

모자를 벗고 구두를 벗고
살을 다 벗어버리고
팔다리를 활짝 벌려 선 자세로
허리를 접어 내려다보는 자세로

내가 들이킨 치맛속 바람
바짓단에 물든 얼룩
겉과 속을 까뒤집은 채 나를 벗어놓은 알몸에
꼭 맞는 고독

색상별로 성분별로 분류해도 새살이 되지 않는
찌든 색 너머 모든 색깔로
다르게 말하고 싶은데 상상은 왜 진부해질까
벌거벗은 시간들이 달아오른 집게에 물려

축축하게 젖어 한나절 해를 마주보는 자세로
해의 붉은 혀에 온몸이 휘감기는 자세로

인간이라는 슬픔이 바짝 말라가는 동안


           


  조유리
  1967년 서울 출생. 2008년 《문학. 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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