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구(火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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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火口)
게눈 감추듯 화구의 혈을 목구멍 깊이 숨겼다.
감정은 마치 송곳처럼 뾰족했으며 모난 모양새였다.
입을 열고 선 굵은 감정을 감쪽같이 제 몸에 감춘다.
까칠한 입 안에서 절룩대는 값싼 언쟁의 뒷맛,
핏발선 감정은 마른 뼈다구처럼 사뭇 뻣뻣했다.
속 마저 비었다. 촉촉한 눈의 알맹이들,
감정의 골 사이로 거센 폭포수가 흘렀다.
그것도 한동안이었다.
꾸역꾸역 마그마를 토해 내는 불지옥같은 화구,
팽창하는 감정의 골에 냉수 한사발 드리붓는다.
입 안 가득 전해지는 냉혈의 극치, 살갗에 닭살처럼 가려움이 돋아난다.
살가죽이 사정없이 긁힌다. 속이 긁힌다. 부글부글 끓어넘친 감정의 끝,
발진하는 부종처럼 붉은 반점이 생겨난다.
속이 긁힐수록 불타오르는 화구의 가벼운 놀림,
결국 손톱 밑에 박힌 감정의 응어리들,
감정이 지난 살가죽으로 피가 맺힌다.
제멋대로 살가죽을 벗겨낸 응분의 댓가였다.
성 난 감정은 동시다발로 분출하는 화구였다.
덜컥, 상처 뿐인 결말이 목구멍에 긴 고드름처럼 걸렸다.
사지가 가려운 세상, 손톱 밑 구구절절 쌓인 가려움의 증좌들,
외통수에 걸린 만화경같은 세상이 목전이다.
볕 드는 날, 중심잃은 의자에 앉아 제 허물을 벗겨내듯
성난 화구를 찬찬히 부검하고 남 몰래 조작하고 있을 게다.
글쓴이 : 박 정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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