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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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川은 의구한데 人傑은 여기 있네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1)
해면을 은빛으로 물들였던 태양은, 수평선에 가까워지면서 굵고 붉은 동아줄을
늘어뜨린다2)
크르르륵 물소리가 수만 가닥 혈관을 타고 공중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손잡이가 부러진 칼처럼, 문득3)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4)
*
으즈버 태평연월일 꿈이련가 하노라5)
1) 「손톱 깎는 날」김재현.
2) 「해변의 진혼곡」신철규.
3) 「깔끝에 혀끝을 대보는 순간」신용목.
4)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이기철.
5) 「冶隱 吉再, 懷古詩歌」필마 없는 활 차용.
.............參考..................
손톱 깎는 날
김재현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 기상청은 흐림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속에는
태양이 아닌, 몇 억 광년쯤 떨어진 곳의 소식도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구름은 흩어져 있다
기상청은 거짓, 오늘
나는 천 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를 살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손톱은 단단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의 바깥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에 관해선
그것을 잘라내는 법만을 배웠다
화초를 몸처럼 기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나는 손톱에 물을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 따위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문제아거나 모범생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모범이었으며 문제였을 뿐
그러므로 손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나 또한 그것의 바깥에 불과하다
오늘, 우주의 뒷덜미가 내내 환하다
당신은 매니큐어로 손톱을 덮으려 하고 나는 손톱을 깎는다
우리는 예의를 위해 버리고, 욕망을 위해 남기지만
동시에 손가락 위에 두껍게 자라는 것들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다만 휴지 속으로 던져둔 손톱들과, 날씨
그리고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버려진 손톱들은 언제나 희미하게 웃고 있다
∂
김재현
1989년 경남 거창 출생.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해변의 진혼곡
신철규
어떤 기대도 없이 여기에 왔다
해면을 은빛으로 물들였던 태양은, 수평선에 가까워지면서 굵고 붉은 동아줄을
늘어뜨린다
구름의 조문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는 엉망으로 취했고 흐트러지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었다 다른 별에서
환생하기 위해서는 이 별에서 죽어야 한다
새파란 입술과 붉은 입술이 만난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 말이 있고 또
무덤이 있다 검은 입술이 될 때까지
입을 꾹 다문다
너의 무덤에 혀를 밀어넣는다 심장과 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주먹을 쥐고 달려오던 파도가 해변에서 손가락을 쫙, 편다
바다에게는 사막이 오아시스다
바다는 사막을 마시고 싶어서 계속 해안으로 밀려온다
내가 얼마나 메말랐기에 너는 그처럼 밀려오는가
사막 한가운데의 붉은 우체통에는 모래가 그득하다
우리를 여기에 데려다주었던 날개를 벗는다
나비는 날개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제 것이 아니었으므로,
바다는 뭍에서 흘러온 폐품들을 계속 밀어낸다
가난한 사람은 주머니가 많다 주머니가 많아서
손을 잃어버리는 때도 있었다
감옥에 갇힌 죄수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 관 속의 시신도 주머니가 필요없다
죽은 자에게는 어떤 기대도, 어떤 망설임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로의 심장을 만지작거린다
어둠의 손목이 옆구리를 휘어감는다
∂
신철규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대학원 박사과정.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깔끝에 혀끝을 대보는 순간
신용목
칼끝에 혀끝을 대보는 순간,
개수대에 물이 사라지고
크르르륵 물소리가 수만 가닥 혈관을 타고 공중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손잡이가 부러진 칼처럼, 문득
거꾸로 떨어지는 형광등빛─갈비뼈를 밟고 지나가는 시간의 하얀 발바닥,
이중새시 너머 상가 불빛이
껍을 씹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담겨 있다고 믿는다 쏟아지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잠시 구정물에 뜬 얼굴로
출렁이다 크르르륵,
소용돌이 아래부터 빠져나갈 몸은 한 바가지 몸, 사는 것의 불빛 속에 잘못 고일 때
도마의 칼자국처럼 새겨지는
정적 속으로 문자가 온다 낙엽은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함구의 현장으로 강도처럼
손잡이가 부러진 칼처럼, 문득
떨어지는 붉은 혓바닥
보십시오 고요가 순간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곳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살해를 한다,
개수대에 물이 사라질 때
먼빛이 가까운 빛에 섞이고 난도당한 순간이 제 시신을 공중에 흩어놓을 때
∂
신용목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신인상에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다. 시작문학상과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죄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
∂
이기철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문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심금의 무늬
이기철
심금의 선홍 무늬가 연애라 해도
누가 누란의 꽃을 딸 수 있는가
마취의 열락이 나를 끌고 백척간두의 절벽으로 갈 때
몸의 양식을 쪼개 그대의 오지에 독배를 붓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 꽃 피는 마음에 오늘은 낯선 해후에 닿고 싶어
치사량의 연애를 마신다
닿은 곳이 아름다워 생의 뒤켠을 돌아보고
혹사와 회한에 무릎 끓어 그의 부침浮沈을 찬탄하느니
독약의 시간에 깃들이지 않으면 생의 무료가 노도가 되리
또 염열이 흉금에 번져
화염에 맛들인 상처의 조각을 촉수로 헤느니
정염은 나를 끌고 가는 극약의 처방
한 연애가 생을 지필 때
나는 새 신 신은 유년의 발로 신성한 풀숲을 밟고 간다
절벽을 헤매던 날들이어
나는 독약처럼 무성한 시간을 꺾어
한 가지에 피어나는 이종異種의 꽃을 맞고 싶다
해금의 아침을 끌고 오는 고혹의 음악처럼
심금의 무늬는 독이毒栮로 피어
다시 오는 생을 끊기지 않는
피혁으로 포박하노니
목언통신 (木言通信)
이기철
나무에게 낙엽은 절망을 내려놓는 방식이다
거기에 후회 같은, 눈물 같은 건 없다
사람 발자국 소리 듣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나무는 발자국 소리 끊어진 밤을 어떻게 지낼까 생각느라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못했다
나는 키스하지 않고 열매 맺는 방식을 나무에게서 배우려고 나무를 쳐다보다 목병을 얻었다
가을은 잎 피는 속도로 와서 잎 지는 속도로 떠난다
식물의 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나비는 언제 나오나?
내 가장 두려운 것은 나무를 베어내고 난 뒤의 사라진 풍경이다
그것이 나무가 고독을 섬기는 까닭이다
맨드라미가 집 밖으로 나가고 나서 봉숭아가 집 안에 들어와 씨를 익혔다
조금 더 있으면 발등에 봉숭아 씨가 폭죽을 터뜨릴 것이다
저 나뭇잎 하나가 올해의 마지막 초대장이 될 때까지
나는 기다림 몇 포기를 가슴에 옮겨 심는다
숲에만 오면 늙은 새도 동요를 부르는 까닭을 알 것 같다
내가 쓰는 말들은 나의 몸속을 다 돌아나왔다
나무와 나뭇잎 안에 몇 동이의 꽃물이 고여 있다는 걸
나는 꽃이 진 뒤에야 알았다
《현대시》2013년 10월호
활연님의 댓글

아마도 낡은 루마니아 영화처럼
김재현
푸른 언덕이었어
풍차가 돌고 있었고
회전하는 십자가 위에 하얀 날개 같은 것도 펄럭거렸고
시계추처럼 꼬리를 흔들던 작은 강아지를 발견한 건 우리였어
너의 입술 사이, 탄성이 둥근 머리를 밀고 나올 때
나는 순간과 순간 사이를 잇고 싶은 사람
망설이는 말의 순형脣形에 덩치 큰 사내가 웅크리고 있었어
그 때도 풍차는 돌아갔었지, 필름을 감아가는 영사기처럼
기억할 장면도 없이 끝나가는
아마도 낡은 루마니아 영화처럼
저기서 부는 바람, 여기서 지는 계절
내가 부를 수 있는 말들이 내가 부르고 싶은 것들을 앗아가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빚어 밀주密酒를 만들었어
그 빛깔을 바라보면 슬퍼지는 게
이상하진 않니? 우린 그저 태양에 취한
지구의 서성거림을 따라온 것뿐인데
개가 된 거야, 우리의 강아지는 거대한 개가 되었고
언덕은 노란빛으로 시들어버렸어 그리고 나는 어느새
풍차지기 사내라고 불려 휘몰아치고 나면
가루처럼 가볍게 빻아지는 것들이 생겨나
간혹 풍차 위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때가 있어
그곳을 향해 우리의 개가 이유 없이 짖어대면
내게는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떠올라
내 입술을 덮고 잠든 채였어
망각의 탄성
김재현
이별 후의 오후에는 축구장의 관객이 좋지
그곳에선 바람처럼, 남의 소리를 입을 수 있지
그러니 나는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고
망설이지 않을 수 있어, 공처럼, 공은
순수하지 공에는 준비가 없지
공을 차는 근육만이 예리하게 계산하고
움직임을 눈부시게 꾸미려 하네 그 중에서 나는
좋아하는 부분이 있지 특히나
발등이 공의 뺨을 때릴 때
허공으로 날아간 공이 발과 영영 헤어지기 직전에
잠깐 일그러진 그 표정을, 내 얼굴 위에
판화하고 싶어질 때
관객들이 와, 하고 양 팔을 들어올리자
말려 있던 미래가 현재로 휘휘 풀어질 때
환호성들 속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두 개뿐인 팔로도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을 거야
아주 멀리
날아가면 좋겠지 가장 많이 일그러진 정점에서
팡! 하고 공이 순식간에 제 표정을 찾았는데
그러면 나는 환호하지, 괜찮아지는 것 같지
양 팔을 내리고 누군가는 흐느끼는데
키퍼는 쓰러져 있고 둥근 머리 같은 공은
생각을 멈춘 듯 멈춰 있지
어웨이도 홈도 아닌 채 그때의 나는 그저
공의 편이기라도 한 것처럼
홀로 손을 들고 소리를 만들지
팡! 하고 나도 모르게 돌아온
내 표정을 들고 얼굴을 뽑아내지
멀리 하늘을 향해, 손수건 같은
몇 초 전의 나를 흔들어대고 있지
《詩로 여는 세상》2013년 여름호
활연님의 댓글

눈물의 중력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너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 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창작과비평》2015년 여름호
단종斷種
신철규
태풍이 북상 중이다
더운 바람과 차가운 바람이 드잡이를 한다
다급한 수신호를 하듯 구름은 빠르게 모였다가 흩어진다
콧수염 모양의 구름이 금세 누군가 벗어놓고 간 브래지어 모양으로 바뀌어 공중에 걸려 있다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면
태풍은 꽃잎 하나 떨어트리지 못하고 시들 것이다
옥상 정원,
꽃나무 주위에 벌들이 잉잉거린다 진초록 잎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붉은 백일홍 앞에서 맴을 돈다
이제 백일도 얼마 안 남았다고
내게 더 많은 꿀을 달라고
네 몸을 더럽히겠다고
지빠귀가 날아와 벌 한 마리를 낚아챈다
철제 난간에 앉아
퍼덕거리는 벌을 딱딱한 부리 사이에 잠시 물고 있다가
꿀꺽, 삼킨다 검은 눈동자
천천히 구르며 햇살에 뿌옇게 빛난다
빨래는 북서쪽을 향해 맹렬하게 나부낀다
젖은 몸을 달라고
저 바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내 몸을 더럽히겠다고
구름의 테두리가 잿빛으로 변해간다
썩은 복숭아처럼
채찍을 기다리는 순한 짐승처럼
그러나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는다
난간을 박차고 지빠귀는 다시 어딘가로 날아간다
빨래 건조대 받침대에 눌러놓은 벽돌, 들썩거린다
《시산맥》 2015년 가을호
활연님의 댓글

무서운 슬픔
신용목
뱀은 모르겠지, 앉아서 쉬는 기분
누워서 자는 기분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 때와 팔다리가 사라진 듯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때
뱀은 모르겠지,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이 지나가듯,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시로 여는 세상》 2015년 여름호
우리 모두의 마술
신용목
삼성역을 나왔을 때
유리창은 계란 칸처럼 꼭 한 알씩 태양을 담았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아래 깨뜨린다.
그러면 차례로 앉은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싱싱해지는 것이 보인다.
그들이 스스로 높이를 메워버린 후 인간은 겨우 추락하지 않고 걷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잃어버린 날개 때문에 지하철을 만들었다고……
삼성역 4번 출구 뒷골목을 걷다가 노란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울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을 감으면,
유리창에 비친 뺨을 벽에다 갈며 지하철이 지나간다. 땅속의 터널처럼, 밤이 보이지 않는 뒷골목이라면 가로등은 끝나지 않는 창문이라고……
냉장고 문을 닫아도 불이 켜져 있어서 환하게 얼어 있는 얼굴이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문학》 2015년 봄호. (부분)
<2015년 제15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활연님의 댓글

고향생각
고향에 대한 원색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1977년인가, 서울로 전학했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 있던 조그마한 시골 학교가 있었다. 윗동네나 그 윗동네나 산속에 깃든 동네나 아랫마을 그리고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녔다. 그때는 그래도 한 학년 한두 반은 있었고 한 학년 백여 명 그러니까 사, 오백여 명은 다녔지 쉽다.(지금은 폐교가 된 지 오래고 고속도로가 집어삼키고) 지금은 그런 시골 학교를 찾기는 힘들겠다. 시골은 아이들이 드물고 다들 늙은 사람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을 테니,
우리들의 고향은 점점 폐허가 될 것인데, 아쉽다.
토속적인 삶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골 정취나 산과 들, 그리고 집에 깃들어 사는 짐승들과 계절의 변화에 반응하는 열매들, 알곡들... 그것은 우리를 키운 것들인데 점점, 먼지폭풍 이는 대륙이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입힐 것만 같다.
우리는 반도체로 한때 해먹었지만, 영원히 잘 되는 장사는 없다.
거대한 뙤놈들이 이 세상을 지배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은데
각설하고
거창은 조그마한 소읍이다. 대규모 공단도 없고 3차 산업의 기반도 약하다. 대부분 면과 리와 동이 산속에 깃들어 있는 그야말로 산촌이다. 어릴 적 고향에 가려면 열차를 타거나 직행버스를 타고 김천까지 가서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거창까지 닿아야 했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지금은 세게 밟으면 서너 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산골에 있던 아이들이 고교생이 되면 읍내로 몰려나와 공부한다. 오래전 내가 고교생일 때에도 예닐곱 학교가 있었다. 인문계는 거창고나 대성고가 그중 센 편인데 거창고는 작지만 서울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성고도 그렇다. 우리나라 유명한 지휘자가 자녀를 거창고에 입학시키려 시골 소읍에서 연주회를 했다는 소문도 있는데 진위는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이나 기타 지방 유학생들이 오니까 나름 명문인 것은 맞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도 그들의 힘 자랑은 센 편이다. 그런 말이 있다.
신용목이나 이기철이나 신달자나 최근에 등단하는 젊은 신예 등,
좋은 시인이 등장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어릴 적 그들을 먹인 산과 물, 산골 마을이 껴안을 수밖에 없는 천형 같은 가난. 넓은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간은 아니지만 대체로 봉답이고 자본을 기대할 수 없는 대다수 그들은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과밭이 많기는 하지만 대규모 비닐하우스 농법을 갖춘 것은 국지적인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면, 가난히 시인을 밀어내는 힘이었을 것이다. 폐쇄와 고립, 등이 휘도록 들에 나가 온종일 일년 내내 고생해 봐야 여전히 생계가 어렵고, 또 객지로 나가 공부하는 자식들 뒷바라지는 늘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는 심정이었으리라. 그런 것들이 시인의 마음에 누적되었다면, 그 암담함을, 깜깜한 미래를, 더는 진전이 없는 부모들의 형편을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그들은 점차 땡볕에 익는 알곡 같은 언어를 조금씩 비축해 왔으리라.
나는 십여 년 그곳에서 상주했고 부모님 계신 곳이라 방학 때면 내려가곤 했지만 성장기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 당시 서울은 더러운 도시, 숨막히는 도시, 개천과 강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 판잣집과 누더기집들, 도무지 한 국가의 수도라기에는 초라한 빈민굴 같은 곳이 많았는데 그 상황에서 급속도로 변모한 것은 맞다. 썰매나 달구지보다는 세발 네발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 그때는 3.1빌딩이 제일 높다고 구경도 가곤 했는데 지금 그 높이라면 흔해빠진 빌딩 높이가 아니겠는가.
결국 나는 고향을 잘 모른다.
모르니까 자꾸 화제가 엉뚱하게 흐르는데, 기본적으로 고향이 그곳이다. 대학 때 부모님조차 서울로 이사를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곳과의 연계를 지울 수 없다. 사과 농사하는 친구도 있고 작은 공장 하는, 굴착기 기사이거나 작은 가게를 해서 그나마 안분지족하며 사는 친구들도 있고, 또 친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어미를 떠난 송아지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지만, 고향 떠난 사람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또 시간이 되면 다녀간다. 살아계시거나 산속에 계시거나 그들의 하여지향은 그곳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이곳 출신들 시 몇 편을 정리하면서
훗날 아주 운좋게 로또 맞는 확률로 시인이 되면 가장 빛나는 프로필이 거창 출생, 이러고 싶은 마음이다. 향토색이라는 것은 어린 영혼에 칠해진 지울 수 없는 것이니까. 요즘은 학연이니 지연이니 나발이니 하는 세상이지만, 언제라도 마음이 머무는 곳, 그곳은 소중하다.
또한 이곳에서 나서 시 잘 쓰는 시인들이 자랑스럽다.
달의지구님의 댓글

댓글 쓸려고 내려오다 할딱할딱~~~
등신아, 등신아~(달에게 하는 말 같아)
지구의 달(the moon in the earth) 이 거창이
고향이 아니라 가슴을 친다,는 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