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6> 구멍에 사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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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 사는 달팽이
1.
그래 그렇게, 채움보다 먼저 가진 것을 비워야 했지, 그렇게 쉽게, 빈 자리에 사랑을 채워야 했어. 그래야 했어, 손 끝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 버려야 하는 일처럼 어려운 결정 또한 없을거야
2.
전설 속 달팽이가 기름 낀 살가죽을 뚫고
23.5도 기운 고립된 섬에서 산다
덥수룩한 머리에 거짓말처럼 자라는 자작나무 숲
숲의 풀과 나무도 우리처럼 생긴대로 모여 산다
눈알 빼먹는 날짐승처럼 잎새를 갉고 줄기를 발라먹는다
23.5도 기운 태양계에서 중심 잡고 사는 일이
목에 술 넘기듯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구멍이란 습성은 힘줘 조일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달팽이가 갉아낸 구멍 너머로 환히 신천지가 열리고
23.5도 기운 섬에서 안녕이란 연통이 두절된다
살가죽에 기생하는 달팽이는 다시 꺼내지 못할 자화상인 양
깊고 어두운 구멍에서 한그루 자작나무를 키우고 있다.
글쓴이 : 박 정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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