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8】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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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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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속 어머니는 고요했다 |
펄펄 끓는 강을 넘나들던 나는 이국에서처럼 말라 비틀어졌고 |
꽃과 잎, 나무와 눈사람과 차례차례 헛소리를 나눴다 |
사계는 순풍을 달고 강물 위로 미끄러졌으므로 |
겨울을 벗어나려는 핑계는 언제나 통화 중이었다 |
시간을 쪼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 |
선수를 친 바람이 뜨거운 이파리를 심하게 털어냈다 |
무선이라 붙잡지 못하고 쉽게 날아갔는지 몰라 |
기상예보는 종종 틀렸다 |
통화 속 배경도 틀리기 바랐다 |
비닐하우스를 찢은 소리가 축사도 뚫고 고막도 흔들었다 |
둑을 밀고 들어오던 흙탕물에서 도망치던 흔적이 |
마지막으로 하얗게 부서졌다 |
일주일 치 예보가 한결같이 눈으로 고랑을 메웠고 |
끊어진 다리를 더는 놓아둘 수 없어 |
기대를 일으켜 세워 시트 위에 반쯤 눕혔다 |
눈에 갇힌 바퀴는 봉두난발이었고 |
차가 멈추고 통행이 멈춘 시점 |
기억도 간헐적으로 흐느끼다가 끊겼다 |
비였다가 진눈깨비였다가 다시 얼음 같은 불안한 호흡 |
수시로 바뀌는 기상의 순리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
하늘은 계속 열렸다 |
흐느낌과 통곡을 무릎까지 덮어놓은 조등 앞에 |
무거운 어깨를 털며 쓸어내고 간신히 |
바쁜 걸음 가지런히 올려놓았을 때 |
구들을 등진 할머니 머리로 눈발이 셀 수 없이 떨어졌다 |
비로소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수의를 본다 |
댓글목록
안세빈님의 댓글

제가 요즘 눈이 많이 높아졌나 봅니다. 좋은시 앞에 서성이니 말입니다
그놈의 끼적이는 것도 높아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뭉클하게 잘 봤습닌다.
다 뭉클한데, 마지막 행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위에부터 뭉클 뭉클 합니다.
좋은시 감사합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예전에 폭설로 고립되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폭설의 의미는 그리운 것과 또 그리운 이와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제설도 잘되고 교통수단도 좋지만 그래도 그 흔적은 가끔 보이는 것 같습니다
써놓고 보니 시 보다는 소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놓고 눈이 주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좋은 시는 아니지만, 걸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빈님!!!
글터님의 댓글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잘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시해를 부탁드립니다. 워낙 모자란 필맹인지라 그렇습니다.
겨울을 벗어나려는 핑계...어머니와의 통화...무선이라 붙잡지 못하고 쉽게 날아갔는지 몰라...흐느낌과
통곡을 무릎까지 덮어놓은 조등...할머니 머리로 눈발이 셀 수 없이 떨어졌다...비로소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수의를 본다...하얀 눈의 무덤...이런 정도로 시상이 정리되는데요,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송달송하네요. ㅠㅠ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마감(?)에 쫓겨 마음만 분주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모임으로 답도 달지 못하고 뒤늦게 답을 답니다
상갓집에 갔다가 지인의 아주 오래전 조모상에 겨우 닿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때마침 열병에 걸려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아픈 얘기와 폭설로 뒤늦게 닿았던 얘기가 아련하게 울려와서
이미지 시에 턱걸이로 올렸습니다
글터님의 시안이 탁월하신데, 제가 쓴 글이 모호하다면, 군더더기가 많고 연결도 매끄럽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퇴고의 시간이 주어짐을 믿기에 명징함은 뒤로 미뤄놓는 것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열병도 단절이요, 폭설도 단절이며, 그리운 할머니의 죽음도 단절이라, 단절에 촛점을 두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군데군데 필요없는 구절, 매끄럽지 못함을 수정해볼 생각입니다
어쩌면 제 경험이 아니라 더 기울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리고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터님!!!
손성태님의 댓글

할머니가 돌아가신 비보가 큰 충격으로 다가와 폭설로 휘감는군요.
언젠가는 대면해야 하는 할머니의 부재가
가끔씩 그리고 자주 듣는 기상오보이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쓰리게 다가옵니다.
흰 수의처럼 그칠 줄 모르는 폭설이
어느 단단한 마음을 찢어놓듯이
소리도 없이 맞다가
가랑이가 쩌억 찢어지는 나무의 곡소리가
메아리처럼
가슴을 적십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이종원 시인님.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죽음의 곁을 지키는 것, 편한하게 임종을 지키고 아름답게 보내드리는 일,
그 마지막 중요한 이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어떤 현실도 많이 있더군요
해외에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다거나, 연락이 지연되어 뒤늦게 알았다던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얘기지만, 그 또한 폭설과 같은 단절의 하나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약하자면, 임종이 아니더라도 작은 약속이나, 또는 삶에서도 그런 축소된 단절이 난무하기도 하지요
부족한 글에 동감 놓아주시니 고맙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그림이 아니라 시를 잘 적으셨습니다.
계속 의뭉하게 끌어가다가, 그 팽팽한 긴장으로 집중시키다가,
마음에 스미도록 마무리.
슬픔이 분산되도록, 감정이 추월하지 않도록
다독거리며 쓴 시.
그래서 독자들에게 큰 자장을 안기는 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시의 정면을 보여주셨네요.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활샘께서 너무 앞서 나가신 것 아니신지요?
좋은 말만 골라서 적어놓으신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집니다
마음은 늘 앞서지만, 머리는 부족하고 가슴만 뜨겁습니다 ㅎㅎㅎㅎ
그래도 그 뜨거운 가슴 믿고 한발자국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가끔씩 이런 격려가 또 한걸음의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고요
언젠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 더 좋은 시로 탈바꿈도 되겠지요
0詩의 바닷가를 나는 언제쯤 걸어볼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활샘!!!!
창한님의 댓글

시가 아니고 님의 가슴의 말 아닙니까
그리고
글터님은 죄송하지만
평론과 해석의 공간보다는
마음을 보듬는 더운 생각이 필요 한 것 같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창한님!!
작년에 잠깐 짤막하게 인사드리고 이렇게 답글에서 다시 인사드리게 됩니다.
시마을에 오셔서 같은 식구가 된 것을 고맙고 반갑게 생각합니다
검색해보니 시인님의 시제도 폭설이 있더군요..
짤막한 글이지만, 뉘앙스를 담은 글, 무럭무럭 크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시에서 합평은 시를 쓰는 사람에게 공부의 장이 됩니다.
닳아서 뭉뚝해진 연필을 다시 깎는 것과 같은... 고마운 일이지요
고맙습니다. 창한님!!!
誕无님의 댓글

이미지 숙제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숙제라 생각하니 하편으로는 부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길을 여는 빗자루질도 됩니다
비록 깨끗하게 쓸지 못해 군데군데 흔적도 남고, 아쉬움도 남지만
다시 쓸어낼 때는 좀더 명징해지지 않겠습니까?
다행인지 올해는 폭설의 소식이 멉니다.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하듣흰님의 댓글

눈이 오기 직전에는 늘 누군가 펑펑 울다갔더군요.
그 온도에서 아직 오지 않는 눈을 맞고 있는 감수성이 시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손에게 차가운 손을 내민 적은 없었는지 반성도 되고요.
시는 불감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숙명을 지녔나 봅니다.
가쁜한 아침 타시고 상쾌하십시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시에서 보다 댓글을 시처럼 달아주셨습니다
일단 머리로 시작한다고 하지만, 마음이 가빠져서 제대로 길을 찾는지 더듬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시를 올려주시는 분들의 글에서 길을 묻고 길을 찾기도 합니다
발음하기에 어려운 닠(?)이지만 올려주시는 글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시는 힘을 봅니다
그 속에 담긴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재미도 크고요
창작방 뿐 아니라 시의 길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로 자리매김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현탁님의 댓글

폭설로 늦게 도착했더니 이미 잔치가 끝났네요
파장이라 머 남은 거 없어요? 형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오늘은 파장이라도 내일은 또 다시 시작이 있지요.
멸치볶음이 아마 내일 시장을 여는 마수걸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시인님!! 뒤늦은 답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창한님의 댓글

누군가 올 것 같은 막연한 그리움
팔부능선 앞 산에
또
저러고 폭설이 내리네요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어딘가에는 폭설이 내리고 어딘가에는 비가, 또 다른 어딘가에는 햇볕이 내리네요
장거리를 다녀왔더니 피곤함이 내려 그저 폭설에 갇혀지내고 싶은 어제...
그렇지만 오늘은 눈에 길을 내고 걸어가야 하는 길
창한 님께서도 오늘과 내일의 길을 열어가시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