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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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년의 이야기 / 테우리
그것도 옛날이라면 굳이 옛날이겠지만 그 옛날 같잖은 어느 날
시골에 사는 삼촌의 가문잔칫날* 풍경이다
도시에서 온 철부지 소년은 친척 아저씨와 함께 이웃집 마당 가마솥 부뚜막에서 장작불을 쪼이고 있다 마침 겨울이라 덜덜 떨며 쪼그린 채 양지* 벌겋게 달구는 중이다 아이는 그 삼촌이 구워주는 갈비를 붙들고 강아지마냥 눈알에 불을 켜고 있다 잉걸불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깃덩어리 고사리 손을 씹는지 산딸기 혀를 씹는지 정신은 이미 도무지에 휩싸인 채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솥엔 돼지 한 마리 여러 토막으로 푹푹 삶아지고 있다 삼촌의 입가론 아이의 갈비 뜯는 모습에 착하다는 칭찬만 갈빗대처럼 연신이다 지나치다 이를 지켜본 아비의 불안한 안색 아니나 다를까 뜯느라 씹느라 허둥지둥하는 여린 주걱의 염불 같은 몰입에서 턱 하는 목탁소리와 함께 톡 떨어지는 사리가 스친다 설마 갈비조각이겠거니 돌아서려다 무릎이 시리고 오금이 저린다
‘야 이놈아, 적당히 뜯어라’ 툭 한마디 물수제비 뜨는 순간
‘아야’ 하더니 금세 울컥 눈물바다에 풍랑이 인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천연덕의 어리광은 공든 탑의 불안한 해탈처럼 비치는데 이윽고 터지는 동네방네 웃음보따리 큰갯물 바당*으로 휩쓸리며 밀려들고 아이는 홀로 울음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골마당이 한바탕 야단법석으로 출렁거리던, 청실홍실 잔칫집에 친척이며 이웃이며 들썩거리던, 덩달아 누런 보리가 하얀 이로 둔갑하던 그 날
의, 그 시간 그 맛이 그립다
그때 이빨 간 그 소년은 중년이 들도록 줄곧 허튼 짓거리만 일삼았단다
아득바득 갈비쪼가리나 뜯는 우거지상이었단다
허접한 나무의 아미마저 흔들리는 요즘은
공염불 도로 아미타불이란다
비록 그렇지만 마냥
허허롭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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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잔치: 제주에선 예전 결혼식을 사흘에 걸쳐 치렀는데 첫날은 돼지 잡는 날이고
둘쨋날은 가문잔칫날이라 하여 친척이나 동네사람들을 모시는 날이다
셋째날에 예식을 치렀다
* 양지: 얼굴의 제주 방언
* 큰갯물 바당: 서귀포시 대포마을 앞바다의 옛 이름
댓글목록
은영숙님의 댓글

김태운님
안녕 하십니까? 반가운 시인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습 일륜대사의
멋지고 풍요로운 결혼식을 보고 갑니다
고운 시를 자알 감상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왔습니다
건안 하시고 고운 밤 되시옵소서
아우 시인님! 벌써 제주로 취임 하셨습니까?! 축하 합니다!! ^^
김태운.님의 댓글

옛일에 대한 기억들이 하도 희미해서 큰놈의 어릴 적 모습을 빌려 그려본 옛이야기입니다
아마 예전 누님의 시대엔 육지에서도 사흘 잔치를 치렀을 테지요
잔치에 쓸 음식들을 장만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
그 한토막을 고기 토막에서 우려낸 글이랍니다
지금 여긴 제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