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12】먹고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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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일
제유의 밤이 왔다. 시네도키가 아가미에 칼을 넣는다. 머리통 썰어 활짝 벌린 가랑이 밑으로 내린다. 칼끝 세우고 등뼈를 들어 발라낸다. 쓱싹쓱싹 활유가 몸통을 밀어대자 항변 이력이 역력한 비늘 밑에 희미한 생리혈 비친다.
지느러미 도려내자 흘수선 엎질러진다. 맨발로 물속을 헤집던 환유가 놂을 쳐다보며 유희적으로 버둥거린다. 마중물 부어 핏물 지운다. 신생한 알몸에서 노란 알들이 태동한다. 뜯긴 포란, 흐릿한 발길질 뭉쳐 가랑이 밑으로 내리자 활짝, 생의 입구를 본다. 스민다. 멎음,
은유 물살은 윤슬 포구를 밀고 있으므로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친다. 살점에 음성상징이 붙어 무지갯빛 반짝인다. 담벼락 곁에 도마 편 사내가 도륙 살점 면사포에 눕힌다. 직유를 짜내고 잔뼈 눌러 어슷썰기 한다. 한 줌씩 누적되는 물의 피부들.
한 번도 감은 적 없는 눈동자가 행인들 뒷목에 달라붙는다. 시니피앙 흐리고 시니피에 눈시울에 달라붙다가 언어유희 쪽으로 표절된다. 얇게 저민 마의麻衣, 일회용 관에 가득 찬 원관념들. 상추와 마늘 고추냉이와 깻잎, 시퍼런 보조관념을 데리고 목청이 붉은 시장을 빠져나간다.
밤늦도록 맨살 숫돌이 칼을 무너뜨리지만 반어로 완성할 수 있는 반역은 없다. 목을 자르면 꿈틀거리는 풍유의 외마디 모가지를 밟고 의물이 똬리를 뜬다.
먹고 사는 일,
비유와 상징 저리 제쳐 쓰레기봉투에 담고
식칼에 저항한 울음 단면을 목구멍에 떠넣어 주는 일.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만복사 저포기
송재학
異史氏*가 말한다, 모년모월 경북 영천 송생은 만복사 스님과 주사위판을 벌렸는데 노름이야 도깨비 살림이라지만 스님과 송생은 각기 종잣돈과 뒷돈을 앞장세워 시비를 가렸는데, 과연 스님을 아슬하게 이겨 목숨을 부지한 송아무개는 그날 억지로 경을 한 권 받아 유심히 살폈으니, 낡고 희미하지만 문장이 맑아 인간세상의 책이 아닌 듯 했다 두근거리며 진동걸음으로 경을 숨겨 돌아온 서생, 수백 번 읽고 외우고 찢고 태우며 공중에서 허궁의 소리가 들린 후에야 고향 땅 아무개산 츠렁바위 인근에 헛묘를 썼으니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심란했더라
하 수상한 세월 지나 누군가 만복지보를 찾아 봉분을 파헤치면 책은 먼지처럼 바서라져도 보물은 고스란히 있을지니, 파묘자는 먼저 황장목관에서 깨끗하면서도 무늬 없는 상자를 볼 수 있을 터, 허나 상자를 열어보면 다시 상자이다 또 다시 열어보면 고대로 처음 본 민무늬이니 인내심으로 다시 열어볼 일이다 또 다시 상자와 상자라면 잠깐, 찬서리 홍낭자 신세인 파묘자는 화증이 솟아도 알아야겠지, 송아무개의 일생 또한 텅 빈 것들의 악연이었다고, 그의 헛묘와 생애를 가득 채운 건 의심투성이였다고, 파묘자는 송아무개가 그 경을 수 백 번 고쳐 읽고 골몰했지만 의심을 의문으로만 바꾸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아마 만복사 저포기 이후 '宋生傳'의 이모저모도 그러했을거라, 문득 여기까지 궁리하다 다시 곰곰 앞뒤로 셈해보니 쥐뿔도 남기지 않았던 선문답 같은 송아무개가 분하여 파묘자는 기어이 서생의 주검을 찾아 해골의 눈알이라도 샅샅이 들여다보고 싶을 터, 경북 영천 낙백서생 송아무개가 읽은 경의 마지막 쪽은 죽은 뒤에도 눈 부릅뜨는 개안술에 대한 너덜너덜한 방법론이었겠다
* 포송령의 『요재지이』의 화자
달의지구님의 댓글

꽃등심/ 김륭
보증 잘못 서는 바람에 집 날리고
아내와 갈라선 후
보증금 삼백에 월 십만 원 반지하 단칸 셋방에에서
노란 냄비 하나 품고 살다
슬리퍼 질질 끌고 나서는 문 밖, 늦가을 햇살이 킬킬
꽃들에게 문병問病이나 가잔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팔장낀 거리 동해횟집 지나 사거리 정유점 앞에서
울컥, 몸이 물처럼 맑아져 토해내는
붉은 잎사귀
심장이 칼을 물었다
꽃피우지 못한 생生의 등뼈 깊숙이
음매음매 소 한 마리 살고 있다는 동영상 메세지가 떴다
병명病名없이 게워내는 선홍빛 각혈인 줄 알았더니
칼질급한 영혼의 비개덩어리인 줄 알았더니
쫄깃쫄깃하다
설움이란
혓바닥 자근자근 깨물고 맛보는
내 삶의 꽃등심!
도대체 몇 근이나 될까?
어둔 목구멍 가득 숯불 피워 놓고
히죽 웃는다/
다시 읽어보려고...
달의지구님의 댓글

식칼에 예리하게 잘린 울음을
목구멍에 떠넣어 주는 일 !
목에 걸린다...
창한님의 댓글

그리고
엎어지고 깨져도
히죽 히죽 미친 울음도 한 토막
품에 안고 살지요
활연님의 댓글

김륭은 독특한 면이 있지요.
간혹 우리는 핏물을 육즙이라 하고 그 맛을 즐길 때가 있지요. 생존은 상대적인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