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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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가 작업복을 말리며 모닥불을 쬐고 있다. 체불임금을 공사장에 남겨두고 예수가 젖은 하루를 말리고 있다. 무른 잡초들이 날마다 자본의 창에 찔려 고꾸라지고 이름없는 풀꽃 같은 하루치의 땀이 물이 되었다가 소금이 되었다가 하는데,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찬바람을 맞으며 엊그제 5층 플랫폼에서 추락한 동료의 안전화 끈을 매만지며 울고 있다.
2.
술도 떨어진 새벽녘. 신 새벽의 그림자가 예수의 움츠린 등을 핥고 지나간다. 어젯밤 함바집에서 찬밥 한 그릇 말아먹은 예수의 뱃속에 허기진 자유의 그림자가 몸을 누인다. 헐벗은 등껍질에 새끼들에 대한 희망, 마른 땀 속에 아내의 미소는 숨어 있었을까. 동탄의 오늘과 내일, 동탄의 눈물과 설움을 태우다가 예수는 남은 꽁초를 비벼 끈다. 꿈이 꺾인 꿈꾸던 동료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시멘트 골조 위의 별들도 불면에 시달리는 밤. 칼 바람은 몰아치기 위하여 한때 동탄에 머물고, 예수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기로 한다.
3.
목이 탄다. 동탄이 일어나기 전에 부서진 꿈이 먼저 깨어 목이 탄다. 햇살을 안고 기뻐하는 얼굴은 어디 있느냐. 동탄 어디에도 양지는 보이지 않아 밤마다 술청에 기대 앉아 빈 가슴을 쥐어뜯는 이여. 동탄의 하늘은 하냥 개지 않고, 밤마다 처자식들의 눈망울에 불안이 깃들더니, 밥과 국의 거리 사이에서 가장은 앓더니, 공사장에서 손에 쥔 벽돌 하나, 그 어디 내리칠 곳이 없도다. 남루한 인생 다시 고쳐도 초라한 하루살이들은 이리 와서 이 쓴 잔을 마시라. 찬 바람 부는 동탄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쉬어갈 굴이 없나니, 시인들은 나와 함께 쓴 잔을 들라. 쓴 잔을 들고 절망 속으로 이 부조리의 창 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마다 창끝에 멍이 맺힌 그대들은 바람 잔 통탄의 고요에 옷깃을 여미라. 이 세상은 아직도 빈자에게 술을 권하고, 동탄의 새날을 꿈꾸는 가난한 노동의 삶은 탄식에 젖어, 목이 탄다. 동탄이 깨어나기 전에 부서진 꿈이 먼저 드러누워 아, 목이 탄다.
4.
사람다운 사람 세상다운 세상이 그립다. 오늘보다는 더 아름다운 동탄의 내일이 와서, 쓴 잔일지언정 달게 마시며 마른 떡 한 덩이라도 쪼개어 나누고 싶다. 눈꽃 하염없이 온 세상에 내리 붓는 십이월 끝자락에 눈꽃마다 피어나는 웃음꽃 소리를 들으며, 꽃 피는 나라보다 밥물 흘러 넘치는 나라에 살고 싶다. 날마다 골고루 햇살이 내리쬐도록 동탄 하늘아래 그늘이란 그늘은 죄다 지워내고 고른 햇살에 기댄 따듯한 너와 나, 더운 우리이고 싶다.
5.
나를 따르는 자는 애통하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애통하다. 나를 위하여 잔을 마시는 자는 애통하고, 나를 위하여 꿈을 심는 자는 더욱 애통하다. 나는 내 동료들의 눈물에 대하여 아파하지 않았고, 슬퍼하는 자들의 슬픔을 건져주지 못했나니, 내 얼굴을 애타게 보고자 하는 자들은 애처롭고, 내 얼굴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자들은 더욱 애처롭다.
댓글목록
윤희승님의 댓글

ㅎㅎ 문우님들 詩作하시다 잠시 웃으며 쉬어가시라고 장난섞인 패러디물 하나 놓고 갑니다
서울의 예수 /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람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