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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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2
세상을 단맛으로 적시는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떫은맛부터 맛보아야 했다.
평생을 떫은 맛 보며 살았다.
광풍에 수도 없이 떨어지는 설익은 감 꼭지의 서러운 떫음
칠월 땡볕에 그을린 바람이 몰아오는
만신창이가 된 귀의 떫은 소문들
뿌리박을 곳을 찾지 못해
허공에 그물질해대는
젊은 별들의 떫은 한숨
경회루 석주와 무량수전 배흘림 양식을 본뜬 24개의 기둥과
한 개의 서양식 돔이라는 떫은 궁합
“통일을 기원하는 민족의 전망대요, 번영을 약속하는 역사의 증언탑”이라는
거창하게 떫은 구호의 극장에서
망나니들이 철면피로 만든 가빠를 걸치고 연출하는 떫은 코미디
어머니의 허리에 찬 떫은 철조망에서 벌어지는
형제간의 떫은 난투극
지붕 없는 거리를 떫은 비 맞으며 배회하다
저녁이 없는 떫은 삶의 지하도에서 모락모락 퍼지는 떫은 한숨
부패로 녹슨 떫은 창칼과 방패
떫은 혓바닥은 떫은 역사로
혓바닥이 달아 단 역사로
배 속 역사가 떫어지는 줄 모르고 떫게 싸우는 혓바닥들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지구의 떫은 항문
인류가 쏟아낸 떫은 배설물로 점점 뜨거워지는
웜풀(Warm pool)이 태풍의 눈이 되어 내리는 떫은 눈물
무엇보다 떫은 제 속이 속 떫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떨떠름한 떫은 상념들
세상 떫다는 것은 모두 순명으로 받아들여 참으로 떫게 수행했다.
떫은맛을 운명처럼 먹고
천명처럼 소화해야 비로소
참 단맛이 나온다는 떫은 진리를 깨달았다.
터질 듯 아른아른한 저 홍색의 만삭.
햇빛마저 단맛에 취해 투명한 광채로 단잠에 빠졌다.
태양 빛을 마시고 싶은 자, 저 홍시를 빨아드려라.
입속 가득 빛과 함께 달게 퍼지는
저 수도자의 속 떫었던 정체를
속이 떫은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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