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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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 채
나 집 한 채 공짜로 얻었네
말랑 말랑한 햇살 종일 내리고
시냇물 소리 새벽이면 푸르게 퍼지고
마당가 살구나무 팔뚝이
굵어질수록 내 다리도 힘줄 도드라졌네
좁디좁은 마당이 점점 넓어져
마을을 벗어나 읍내를 지나
대도시를 배회했네 계절이 들이치던 처마에는
지나가던 산새 한 마리 둥지 틀어 날개를 쉬더니
닮은 집 두 채 지었네
공짜라고 생각했던 집 공짜가 아니었네
비바람 무서리가 고스란히 들어앉은
힘겨운 집이었네 피 같은 집이었네
훗날 알게 되지만
이복남매도 닮은꼴 집을 갖고 있었네
그리 억울할 일도 없었겠지만
부르르 눈동자가 길모퉁이를 훑어 내렸네
안채 사랑채를 한데들인
구조도 비슷한 닮은 꼴
시간은 찬란하게 흘러가고
처마 끝에 황홀한 하오
자박자박 걸어오던 계절이 폭포처럼 쏟아지네
나 이제 문 앞에 서서
낡은 캐리어를 싸야 겠네
잘 쓰다가네 작별인사도 준비하네
더러 바람에 문짝 삐걱거려도
키 큰 상수리나무 햇빛을 가려
이끼 덮인 기둥 썩어 내려앉아도
나 잘 살았네
떠나면 다시 올일 없더라도
더러 잊지 말고
어쩌다 한 번 쯤 기억이나 해 주시게
벗어 놓을 집 한 채
길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있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수련, 하면 채호기 시인이 문학적 지분권이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시 고맙습니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채호기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
수련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누추한 거실
다녀가셔서 기쁩니다.
따뜻한 차 한잔
마음으로 드립니다!
어느날 문득 수십년 깃들어 살던
집 한 채, 낡아가는 걸 느낍니다.
캐리어에 담아갈 뭔가가 있을지.....
tang님의 댓글

어둠이 일으키는 안온으로의 길에서 만나는 높음
낮아 열려 높아야 하는 고민이 성김을 만듭니다
생명의 힘이 소생점이 되어 가는 힘 축에서의 열림 만남은
늘 순수로의 길에 놓이게 합니다
암흑의 유혹은 깊기도 하건만 순결의 부름은 평안합니다
생명으로서 존재함으로 열려있는 관문은 만난 것인지 몰라도
높음으로의 부름은 항시 있음이로다 입니다
수련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어둠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지요,
어둠에서 태어나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날들입니다
시간을 가로질러 바쁘게 걸어 온 집 한 채,
앉아있는 저녁은 오히려 편안합니다
다녀 가신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