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비오는 날 우산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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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제 안에 숨은 꽃들을 한 송이씩 피워들고 물을 준다
빨간꽃, 파란꽃, 검은꽃, 보라꽃
맑은 날 서로 물들까 어깨가 닿지 않던 사람들이
울긋불긋 피워 든 꽃송이들을 맞대고 두런두런 술렁인다
종일 거리를 누비던 신발들도 걸음을 뚝 멈춰버린 신발장 구석에
말라비틀어져 있던 꽃들,
닫힌 일기장 사이에 끼여 압사 되어 가던 이름에게 물을 준다
먹고 사는데 거추장스러워 접어 두었던 양심, 의리, 정의 같은
살대가 녹슬고 부러진 단어들에게도 물을 준다
평수 좁은 마음의 틈새에 세워두기 위해 홀쪽하게 주둥이를 묶어 두었던 꽃들,
꿈, 희망, 이상, 사랑,우리, 세상, 우주
시장 좌판 비치 파라솔처럼 엄청난 꽃에도 물을 준다
비오는 날 사람들은 저마다
한 때 비를 피하게 해주던 꽃들을 다시 피워들고 물을 준다
줄줄 꽃들이 마시고 배가 불러 토한 물이 거리와 도로에 넘쳐 흘러
꽃을 닮아버린 물조차도 방긋방긋 동심원을 피운다
비오는 날 사람들은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우산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한 송이씩 꽃으로 돌아가 비를 맞기 위해 우산을 쓴다
댓글목록
허영숙님의 댓글

비와 우산과 화자의 사유가 정말 신선하게 접목된 글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접혀있는 우산이든
비오는 날은 그렇게 모두 펼쳐지는군요
참 좋은 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창작방에 좋은 시 자주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