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중독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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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서로를 살찌웠고,
중독은 불태워 소모했다.
그제야 그 평온함이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술 취해 불 켜진 시장을 걸었다.
어깨 위 바람에 노란 전등이 흔들렸다.
달콤한 그녀, 취하게 했던 그녀, 황홀한 그녀는 일어서서 눈을 흘기고 떠났다.
촉촉한 얼굴의 흐린 동공과 버버리코트 속에서 풀린 하얀 블라우스.
흐트러진 정결함, 어두운 붉은색 양말과 하이힐.
어디 가냐고 술잔을 보고 얘기했다.
하얀 손이 포렴을 제치고, 눈부시게 어둔 밤으로 취한 그녀가 나갔다.
사랑은 달콤한 게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1월 초의 밤은 쌀쌀했다.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차가운 바람을 부비며 걸어갔다.
눈은 감겼지만, 정신은 맑아졌다.
정류장의 밤 막차 안은 어슴푸레했다.
우는 여자, 휴대전화를 하는 남자, 눈 감고 팔짱을 낀 남자.
우리는 모두 혼자였다.
끝자리에 올라 눈을 감고 구석진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 흔들렸고 빠땃따닥거리는 창문들이 머리와 밤 공기를 때렸다.
어슴푸레한 형광등.
누군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밀려오는 눈물을 웃음으로 흘려 넘기니 목구멍이 아팠다.
헤어진 애인 때문이 아니라 대학 시절 그녀가 떠오른 것 때문이었다.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던 사람이 벌써 사랑이었음을 돌아갈 수 없는 버스를 타고 알았다.
댓글목록
산저기 임기정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하루되세요
radio님의 댓글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