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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 온 돼지머리 -고사 지내는 날 / 추영탑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4회 작성일 15-10-26 15:04

본문

 

 

 

모셔 온 돼지머리 -고사 지내는 날 / 추영탑

 

 

 

 

 

고사에는 토악질 나는 근대사도 게거품 무는 현대사도

들어있지 않아 신선한데요

고사상에 초빙되어 온 몸

아직은 머릿고기로 해체 되지 않았기에

내 입에서 목까지의 한 뼘도 안 되는 거리가 평소의

그대로네요

 

 


 

내 전공은 식품공학이지만 먹고 살다

보니 공학은 사라졌고요, 주로 식품 쪽에 머리를 썼는데요,

“자귀 나도 좋으니 많이, 많이만 주세요”

이게 자립과 독립을 포기한 내 자존이었지요

집어넣기 바쁘고 삼키기 바쁘던 옛날의 입과 목이

오늘은 너무도 한가하지만 돼지 생애의 기록적인 배부른 날,

 

 


 

게다가 우리 속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너무 귀하신 여류,

신사임당 아줌마를 입에 물어도

이런 무례마저 탕감 받는 오늘 같은 날?

그러니, 안 먹어도 배부른 이런 세상을

얼마나 바랐던가?

 

 


 

돈이 될 때까지 다정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주인도 있었는데,

베푼 것 없이 큰절까지 넙죽넙죽 하는

사람들, 천상천하에 이런 황송함이?

시간아, 절대로 가지마라

이 황홀경 불시에 사라질라

고사야, 끝나지 마라, 이 몸이 고사枯死할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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